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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 혼 육, 성도의 가치관조회수 : 2490
    • 작성자 : 이명석
    • 작성일 : 2019년 2월 9일 13시 29분 38초
  • 얼마전 몇 분과 교제를 나누며 우리의 영(spirit)이 신약시대에 다시 태어난 성도에겐 무엇인가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말씀을 나눴지만 글로 좀 써 달라는 부탁도 있으셨고, 또 조금 부족한 면이 있는것 같아 영 혼 육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아닌, 실질적으로 자세하고 알기 쉽게 말씀안에서 되짚어 보려 합니다. 우리는 다 부족하고 완벽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안에서는 완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우리는 위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혼과 영과 육을 나눌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지식으로는 알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현실에서는 가늠하지조차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쁜 환경속에서 자신을 주의깊게 살피지 못하는 것도 있겠지만, 주 된 요인은 성령님께서 영과 혼과 육을 나눌수 있다고 말씀으로 기록하신 것을 우리의 생각의 기준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위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에서 보시다시피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 것이지, 우리가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깊이있게 더듬다보면 다시 태어난 성도라 불리는 우리가 이 세상의 시간속에 어디쯤 와 있는가를 투명하게 보게 되며 곧 끝나는 시간을 넘어 그분의 속성속에 있는 영원(Eternity)을 바라보게 됩니다. 영원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소망을 품는 것은 이 세상 육신에 있을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다시 태어난 성도의 또 하나의 특권입니다. 

     

    위 히브리서 4장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 것이지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아래 성경 구절들을 보시면 어느정도 이해가 되실겁니다. 

     

    (창 2:7)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

    (창 2:7)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욥 27:3~4) 내 숨이 내 속에 있고 하나님의 영이 내 콧구멍에 있을 동안에는 내 입술이 결코 사악한 것을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속이는 것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욥 33:4) 하나님의 영께서 나를 만드시고 전능자의 호흡이 내게 생명을 주었느니라.

     

    처음에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 그분의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살아있는 혼(living soul)이 되었지만, 아담의 범죄로 인해 에덴 동산에 있던, 계시록에서 보여주신 새하늘과 새땅의 생명나무의 길은 막히게 됩니다. 이것을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대속하신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이 찢어지며 다시 그분의 숨을 받아 살리는 영(quickening spirit)에 속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무엇으로입니까? 

     

    (롬 8:11) 그러나 만일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분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자신의 영을 통해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하나님의 '숨'은 곧 '하나님의 영'이시며, '성령하나님'이시며, 그분의 '말씀'입니다. 

     

    (살후 2:8) 그 뒤에 저 사악한 자가 드러나리니 주께서 자신의 입의 영으로 그를 소멸시키시고 친히 오실 때의 광채로 그를 멸하시리라.

    (살후 2:8) And then shall that Wicked be revealed, whom the Lord shall consume with the spirit of his mouth, and shall destroy with the brightness of his coming: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입의 영'은 다름 아닌 주님께서 직접하시는 말씀을 뜻하고 있습니다. 이걸 다른 뜻으로 해석하실 분은 없으실겁니다. 다음의 요한복음 6장 말씀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며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 It is the spirit that quickeneth; the flesh profiteth nothing: the words that I speak unto you, they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다른 성경에서는 입의 기운, 입김, 입에서 나오는 영, 등으로 번역하여 말씀이 아닌 다른 쪽으로 해석을 하게 만들고, 은사주의나 신비주의, 체험주의 등을 양산하며 원래의 뜻을 희석하고 있습니다. 

    위의 요한복음 6장 63절 말씀처럼 살아 있는 그 무엇이 다른 죽어 있는 것을 살릴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죽은 것이 무엇을 살릴 수는 없습니다. 살리는 것이 바로 영(the spirit)인데 그것이 곧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르는 말씀들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지 우리가 아니라는 의견이었고, 다시 태어난 성도들만이 하나님의 숨 안으로 침례되어 성령님과 한 영(one spirit)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절대 대체되어 할 수 없는 일이며 오직 그분의 숨이신 말씀을 통한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가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이상으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나크시고 무소부재하신 그분안으로 깊이 잠겨 들어가며 성령침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영은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람의 영(spirit), 하나님의 영(Spirit)

     

    우리 사람은 숨을 내쉴때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이고, 그 내 뱉는 말이 곧 영(spirit)입니다. 동시에 영은 교통(Communion)과 직감(intuition), 그리고 영이 있기 때문에 영감(Inspiration)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성경적으로 영은 형상(image)을 말하며 실체적으로 존재합니다. 

     

    (욥 4:15~16) 그때에 내 얼굴 앞으로 한 영이 지나가므로 내 몸의 털이 곤두섰느니라. 그 영이 가만히 서 있었으되 나는 그 형체를 분간하지 못하였느니라. 한 형상이 내 눈앞에 있었고 거기에 고요함이 있었으며 내가 한 음성을 들었는데 이르기를,

     

    민수기 22장에서도 보듯이 발람의 나귀의 입을 여신 것도 나귀에게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소멸될 영일지라도 그분께서 입을 여시면 말을 할 수가 있게 됩니다. 이 세상안에 지으신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모든 자연 생태계의 숨을 쉬는 생명체는 하나님의 숨과 연결되어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 3:21) 누가 위로 올라가는 사람의 영과 땅으로 내려가는 짐승의 영을 아느냐?

     

    물론 하나님께서는 길위에 있는 생명이 없는 돌들에게도 소리를 지르게 할 수 있습니다.(눅 19:40)

    하지만, 지금 현 시대에선 기록된 성경 말씀, 즉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해야 할 모든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할 기적을 우리가 알 수 있게 보이시진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성령하나님께서는 일을 하고 계시는데 가장 뚜렷이 알 수 있는 그분의 일은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입니다. 가장 큰 miracle이지만 보이지가 않습니다. 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을 하는 존재가 바로 다시 태어난 성도들입니다. 무엇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가 있을까요? 보이지 않는 성령하나님을 어떻게 보여줄 수가 있을까요? 

     

    (레 10:3) 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 이러하니라. 이르시기를, 내게 가까이 오는 자들 가운데서 내가 거룩히 구별되며 온 백성 앞에서 영광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아론이 잠잠하니라.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 않은 자기들의 향로와 이상한 불을 드리므로 그 즉시로 죽고나서 모세를 통해 기록하신 말씀입니다. 이들이 이상한 불을 드린곳은 성소입니다. 

    성막에는 뜰과 성소, 그리고 지성소가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육과 혼과 영이 있습니다. 성소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바로 혼에 해당됩니다. 혼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 의지를 담고 있으며 뜰인 육신적인 생각을 따를 수도 있고, 지성소인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도 있습니다. 로마서 7장 말씀에 기록된 사도바울의 심정처럼, 우리는 우리의 지체들 안에서 한 다른 법이 하나님께서 주신 법과 싸워 각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우리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너무 자주 보게 됩니다. 하지만, 주님을 직접 만났고 신약의 거의 모든 교리들을 바로 세우고 생명이 다 할 동안 주님의 영광과 복음을 위해 자신을 바쳤던 사도바울조차도 속사람인 혼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며 따르기를 원하는 마음과는 달리 원치않는 악을 행하는 자신을 발견하고선 마침내 한 법을 깨닫게 되니 그것이 곧 성령의 법,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정죄함에서 벗어난 율법의 의의 성취, 육신의 연약함이라는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는 영혼의 자유를 증거하는 것을 성령님께서 사도바울을 통해 보여주고 계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

     

    이 말씀을 좀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기를 원합니다. 성령을 따라 걷는다는게 무슨 뜻일까요? 

    그냥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따르면 되는걸까요? 아니면 좋은 느낌을 따라가면 성령을 따라 걷는 걸까요?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위가 있으니 네 행위가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내 행위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는 야고보서 2장 18절 말씀을 행위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처럼 열심을 내서 교회를 위해 충성 봉사하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걸까요? 

    위에서 저는 성령님안으로 침례되어 다시 태어난 성도는 주님과 한 영(one spirit)을 이루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또, 하나님의 숨을 '하나님의 영', '성령님', '말씀' 이라고 했습니다. 영은 그리스어로 프뉴마(pneuma), 히브리어로는 루아흐(ruwach)이며 숨, 바람, 호흡을 말하고 기본어가 '숨쉬다'이며 '흐름'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지금 현 세상 사람들의 사상(思想)의 이데올로기적(Ideologie)흐름이 영적인 존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듯이 말입니다.

     

    (요 20:22) 그분께서 이것을 말씀하시고 그들 위에 숨을 내쉬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령을 받으라.

     

    단도직입적으로 먼저 말한다면, 성령님을 따른다는 말씀의 의미는 바로 기록된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죽어있던(단절되어 있던)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의 혼의 의지와 생각과 감정이 믿음과 섞이면서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듯 거듭나는, 다시 태어나는 출생의 신비를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과 한 영을 이루게 됩니다. 이것이 실체적으로 눈으로 보이질 않으니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 본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갓난 아기가 엄마의 뱃속에서 세상에 나오게 되면 젖을 찾듯이 성령님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도 마찬가지로 말씀의 젖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이 갈급하게 말씀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육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니 혹시 이런 것이 없다면 본인의 출생을 꼭 다시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다시 태어난 성도의 영은 하나님의 영과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과 셋째 하늘까지도 충만하신 그분안에 푹 잠겨 있다고 말을 할 수도 있고, 육신안에 있으나 다시 태어난 그 순간부터 영원토록 그분과 함께 있다고 말을 할 수도 있으며, 같은 숨을 쉬고 있다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무엇으로 그렇게 될 수가 있습니까? 무엇으로 같은 숨을 쉴 수가 있겠습니까? 다른 세상적인 것, 그 어떤 능력이 뛰어난 것, 모든 부와 명예도 아닌 오직 올바른 성경의 모든 기록된 말씀으로만 됩니다. 이것외에 성령하나님과 숨을 쉴 수 있는 것이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뒤져도 없습니다. 

     

    바로 기록된 그 말씀들에 성령 하나님의 숨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위대한 신분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나님과 한 영, 한 숨을 이루고 있다니요? 이것을 사실적이고 올바르게 깨닫고 기록된 말씀에 따라 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믿음이 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faith of the Son of God,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 즉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믿음이라는 겁니다. 모든 인류의 죄를 제거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변할 수 없고 강력한 믿음, 바로 이 믿음에서 행위가 나와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아닌 바로 이 믿음에서 나오는 행위가 야고보서에 말하는 "믿음이 그의 행위와 함께 일하고 행위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지 아니하였느냐?"라는 말씀에 따른 바른 행위를 나타낼 수가 있고, 이것이 곧 올바른 믿음의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중심에 가득 차게 되면 예레미야처럼 "그분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 같아서 내 뼈 속에 사무치니 내가 참기에 지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도다." 라고 하는 것처럼 저절로 말씀에 따른 행위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기록된 말씀에 따라 행할때 자신의 생각과 감정, 의지를 가지고 있는 혼을, 순종 또는 복종을 시켜야 하는데 여기에는 항상 우리의 자존심이 도사리고 벽을 세우기 때문에 자기부인이 꼭 필요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님을 따라 걷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얼마나 말씀들을 마음판에 새기려고 노력해야 할까요? 

     

    (잠 7:1) 내 아들아, 내 말들을 지키며 내 명령들을 네게 쌓아 두라.

    (잠 7:2) 내 명령들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잠 7:3) 그것들을 네 손가락에 묶으며 네 마음 판에 기록하라.

     

    뒤집어서 다시 말한다면, 올바른 성경기록의 모든 말씀들은 하나님의 숨이며, 성령하나님이시며, 그분의 영이 되십니다. 다시 태어난 성도들이 주님과 한 영이 되어 숨을 쉴 수 있는 것은 그 말씀들을 읽고 묵상하며 마음판에 새겨 놓았을 때입니다. 우리가 첫 사람 아담을 따라 본성에 속한 몸으로 이 땅에서 심을 때 하나님께서는 둘째 아담인 예수님을 통해 영에 속한 각자 고유의 몸을 주시기 위해 그 무게를 달고 계신다는 것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첫째 아담인 프쉬케(psuche, 히:네페쉬(nephesh))라는 살아 있는 혼(living soul)으로 심어, 둘째 아담인 프뉴마(pneuma)라는 되살리는 영(quickening spirit)이신 성령 하나님을 통해 우리의 죽을 몸도 부활하신 주님의 영화로운 몸처럼 영에 속한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우리의 영(spirit)입니다.

     

    (잠 16:2) 사람의 모든 길이 자기 눈에는 깨끗하나 주께서는 영(靈)들을 다시느니라.

    (고전 15:45)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느니라.

    (고전 15:45) And 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was made a living soul; the last Adam was made a quickening spirit.

     

    신약시대 다시 태어난 성도의 가치관

     

    이제 신약시대 다시 태어난 성도의 바른 가치관은 무엇으로 나타낼 수가 있을까? 어떻게 나타내야 하는가? 를 짚어보려 합니다. 일단 구약시대 spirit 가 사람의 정신으로 나타내는 구절들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수 5:1) 요르단 서쪽 아모리 족속의 모든 왕과 바닷가의 가나안 족속의 모든 왕이 주께서 요르단의 물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마르게 하사 우리를 건너가게 하셨음을 들을 때에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으로 인하여 더 이상 정신이 없었더라.

    (수 5:1) And it came to pass, when all the kings of the Amorites, which were on the side of Jordan westward, and all the kings of the Canaanites, which were by the sea, heard that the LORD had dried up the waters of Jordan from before the children of Israel, until we were passed over, that their heart melted, neither was there spirit in them any more, because of the children of Israel.

    (삿 15:19)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턱의 우묵한 곳을 쪼개시니 거기서 물이 나오더라. 삼손이 그 물을 마시매 그의 정신이 돌아와 그가 회복되었으므로 그곳의 이름을 엔학고레라 하였더라. 그것이 이 날까지 레히에 있느니라.

    (삿 15:19) But God clave an hollow place that was in the jaw, and there came water thereout; and when he had drunk, his spirit came again, and he revived: wherefore he called the name thereof Enhakkore, which is in Lehi unto this day.

    (삼상 30:12) 또 무화과 덩이에서 뗀 덩이 하나와 건포도 두 송이를 주었더라. 그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빵도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하였으므로 먹은 뒤에 그의 정신이 다시 그에게 돌아왔더라.

    (삼상 30:12) And they gave him a piece of a cake of figs, and two clusters of raisins: and when he had eaten, his spirit came again to him: for he had eaten no bread, nor drunk any water, three days and three nights.

     

    몇 구절 더 있지만 너무 길어질거 같아 이 세 구절만 인용하겠습니다. 성경에서 영(spirit)은 정신(spirit)과 같은 의미를 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와서는 유독 맑은 정신(mind,sober, himself)을 강조하며 23구절에서나 기록된 것을 보게 됩니다. 몇 구절만 보여 드리면, 

     

    (벧전 5:8)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8) Be sober, be vigilant; because your adversary the devil, as a roaring lion, walketh about, seeking whom he may devour:

    (막 5:15) 예수님께 이르러 마귀 들려 군단을 지녔던 사람이 바른 정신으로 옷을 입고 앉은 것을 보고는 두려워하더라.

    (막 5:15) And they come to Jesus, and see him that was possessed with the devil, and had the legion, sitting, and clothed, and in his right mind: and they were afraid.

    (눅 15:17) 그제야 그가 정신을 차리고 이르되, 내 아버지께는 빵이 풍족하여 나누어 줄 수 있는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나는 굶어 죽는구나.

    (눅 15:17) And when he came to himself, he said, How many hired servants of my father's have bread enough and to spare, and I perish with hunger!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크신 긍휼안에 용서라는 작은 단어가 포함되어 있듯이 모든 곳에 충만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바람과 숨쉬는 흐름을 가지고 있는 성령님(Holy Ghost)안에 이미 우리의 작은 spirit가 침례되어져 숨을 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 그분께 경배를 드리기 위해선 맑은 정신을 가지고 세상에서 분리된 자신을 내어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예배가 이루어지는데,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판에 가득 채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성도는 굳이 영과 진리로 경배를 드리려고 노력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그렇게 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하나님앞에서 맑은 정신, 그 정신을 감싸고 있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행위만이 그분께서 받으실만한 예배가 된다고 생각이 되며 해석이 됩니다. 이미 우리는 주님과 한 영으로 대체되어 있고 존귀하신 그분의 말씀들이 마음판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요 13:10)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미 씻은 자는 모든 곳이 깨끗하므로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다시 태어난 자도, 불신자도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나, 하는 육하원칙 아래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으로 봤을때는 똑같지만, 제일 상위에 있는 꼭지점의 영성이 다른데, 이것을 가치관이라고도 합니다. 사람은 마음에 들어있는 것을 나타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이면 하나님의 것으로, 카이사르의 것들은 카이사르의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면 하나님의 말씀들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고 싶으면 세상 것들로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단지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 것을 말하지 않고 살 수는 없으나, 그것이 요점(要點)이 되는지 듣는 사람은 알게 됩니다. 

     

    (눅 6:45) 선한 사람은 자기 마음의 선한 보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자기 마음의 악한 보고에서 악한 것을 내나니 그의 입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느니라.

     

    마음(heart)은 영과는 다르지만, 양심을 통해 영과 교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음이란 육신적으로는 심장을 이야기하며, 영적으로는 사람의 가장 깊은 속중심(지성소)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모든 문제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 교만과 불만, 순종과 불순종이 마음안에 모두 들어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마음은 사람의 중심인데, 이 중심을 바른 가치관으로 이끄는 것이 성도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성경으로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바른 교리를 가지며,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를 주의깊게 살피고, 그 말씀들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주야로 묵상하고 연구하며,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에 기꺼이 내 자신(정신)을 내어 주고, 성경의 모든 기록들에서 본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의 속 중심에 세우며, 자든지 깨든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마음속에 바른 가치관을 세우는 것, 이것이 곧 맑은 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경건이며 유익이 된다고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못하는 때가 너무 많습니다. 저부터도 마음은 원이나 육신의 연약함으로 잘하지를 못합니다. 

    다만, 이렇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는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런줄 알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바른 가치관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 또 올바른 성도로 살며 우리의 시간이 다 하고 주님앞에 섰을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잠 4:20~27) 내 아들아, 내 말들에 주의를 기울이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들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한가운데 간직하라.

    그것들은 그것들을 찾는 자들에게 생명이 되며 그들 모두의 육체에 건강이 되느니라.

    열심을 다하여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나오느니라.

    비뚤어진 입을 네게서 버리며 뒤틀어진 입술을 네게서 멀리 하라.

    네 눈은 바로 보고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볼지어다.

    네 발의 행로를 곰곰이 생각하며 네 모든 길을 굳게 세우라.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할지어다.

     

    [요점 정리 fact]

     

    "성경적으로 우리의 영(spirit)은 하나님의 숨(창 2:7)이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전까진 하나님께서 보실 때 우리의 영(spirit)이요 정신(mind,sober,spirit, himself)이 성령 하나님을 통해 살리는 영(quickening spirit)에 속하질 못했지만, 성령 침례를 받고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의 영은 하나님의 숨(Spirit) 안으로 잠기면서 하나님의 숨이신 성령님으로 다시 출생을 하며, 그 숨(Spirit)으로 인해 되살리는 영(quickening spirit)에 속하게 된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숨이신 올바른 말씀이 우리 마음판에 새겨질 때마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과 양심을 통해 하나님의 영(숨)과 소통을 이루며 바른 가치관을 가지게 되고, 올바른 말씀에서 나오는 그 가치관으로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믿음의 행위가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선한 일을 하시는 이는 우리가 아니라, 우리 안에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의 숨이시요, 말씀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고 계시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롬 3:4)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잠 8:9) 깨닫는 자에게는 그것들이 다 명백하며 지식을 얻는 자들에게는 올바르도다.

     

    하나님의 말씀은 위와같이 쉬운거 같으면서도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을 구하며 이 혼잡한 세상에서 교리의 바람에 휘둘리지 않고 올바로 분별하기 위해선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연구해서 바른 행위를 나타내며, 그날에 주님앞에 섰을 때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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