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던 이스라엘의 치욕
블레셋 사람들은 120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힌다. 다윗 때에 가서 비로소 섬멸된다. 사사기 13장 1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주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므로 주께서 그들을 40년 동안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준다는 내용이 나온다.
사무엘상 4장에는 이스라엘의 슬프고도 치욕스러운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기 위해 에벤에셀에 진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을 친다. 이 싸움에서 이스라엘 군대는 4천 명이 죽는다.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4천 명이 죽게 되자, 장로들이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치셨느냐?”고 물은 후, 그 대책으로 하나님의 궤를 전쟁터에 가지고 가자고 한다. 실로에 있는 주의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온다.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 이스라엘이 큰소리로 외치는데, 이 외침이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정신무장을 하고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된다. 이어서 벌어진 싸움에서 보병 3만 명이 죽고,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고, 언약궤를 빼앗기는 치욕을 당한다. 승전보를 기다리던 엘리는 군대 3만 명이 죽었고, 두 아들이 죽었고, 언약궤도 빼앗겼다는 비보를 듣고 의자에서 넘어져 죽는다.
비느하스의 아내가 이러한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조산하게 된다. 아들을 낳았음에도 즐거움이나 기쁨이 없었다. 여자의 가장 축복인 아들을 낳았지만, 하나도 즐겁지도 아니하고 기쁘지 않았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며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고 곧바로 세상을 떠난다. 너무나 슬픈 이야기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없는 악을 행함으로 블레셋 사람들을 써서 이스라엘을 회개하려 하시는데, 회개는커녕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언약궤를 활용하려다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치욕을 당하게 된 것이다. 언약궤는 나무로 만든 상자이다. 이 상자가 무슨 신통력이 있다는 것인가? 그 안에 있는 말씀을 보지 않고 외양만을 중시하는 종교적 열심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언약궤를 빼앗기는 사건은 하나님의 뜻을 어길 때 어떤 수치를 당하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었던 이스라엘이 어쩌다가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움에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패한 것이나, 오늘날 교회가 무참히 조롱당하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일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세상에 나가서 말씀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가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그리스도인이면서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뜻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킹제임스성경만 손에 들면 만사가 잘 된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신학원만 나오면 만사가 잘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빼앗긴 언약궤가 신앙생활을 되돌아 보게 한다.
무엇이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은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한일서 5장 4절)
몸은 죽여도 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혼과 몸을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10장 28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