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다짐 : 몸에 힘을 빼자 우리 교회 성도들을 보면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헌신하고 섬기는 성도들이 있다. 자기가 드러나거나 박수를 받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나의 섬김으로 인해 성도들이 편안하고 교회가 발전할 수만 있다면 모든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성도들이 있다. 한편 어떤 성도들은 외부 자극에 너무나 빨리 반응한다. 사람들이 나를 빨리 인정해주길 바라고 인정받지 못하면 화를 내고 심지어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내가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공격적이 된다. 세상은 너무 급하고, 빠르고, 화가 나 분노가 차오르고 있다. 내 권리가 침해받는다고 생각하면 견디질 못한다. 온유함과는 거리가 멀다. 온유함을 가지고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써야지만 무시 받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힘을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가려고 하고 자격을 갖추려고 한다. 가져야만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 세상이다. 온유란 통제된 힘을 말한다. 온유는 온순하고 부드럽고 나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런 것이 온유가 아니다. 온유가 약함과 항의, 저항이 없는 모습, 활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자랄 때는 밖에서 얻어맞고 집에 돌아오면 가서 두 대 때리고 오라고 했다. 양육강식의 세상에서는 약함은 생존이 보장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어쨌든 강해야 한다고들 생각한다. 온유함이 교회에 안에서는 환영받지만 세상에서는 나약하고 생존하지 못함의 상징이다. 온유는 성령의 열매 중의 하나다. 하나님의 성품의 일부이다. 온유는 겸손함, 신사적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온유는 주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데 사용하는데 온유라는 단어를 적용하는 것이 신약에 1번, 구약에 1번 나온다. 민수기 12장 1-2절을 보면, 모세가 에티오피아 여인과 결혼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그가 결혼한 에티오피아 여인으로 인해 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참으로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셨느냐?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며 지도자인 모세를 시기하고 질투하며 권위에 도전한다. 이어서 3절에는 (그런데 그 사람 모세는 매우 온유하여 지면의 모든 사람들보다 온유하였더라.)(민수기 12장 3절)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집트에서 혈기로 사람을 죽였다. 시내산에서는 화가 치밀어 하나님이 주신 돌판을 집어 던졌다. 또 반석에게 말하라고 할 때, 반석을 내리쳤다. 결코 온유한 사람이 아니었다. 광야에서 생활을 하면서 점점 깎이면서 온유하게 되었다. 온유는 통제된 힘을 말한다. 온유를 설명할 때 야생마 이야기를 한다. 야생마가 깃들여지면 순하게 된다. 온유는 자기의 힘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는 통제된 강력한 힘을 말한다. 주인에게 깃들여져서 주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힘을 쓰는 것이 온유다. 하나님은 잘 길들여진 모세를 지도자로 삼으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 그러나 미리암과 아론은 자신의 힘을 사용하고 자신을 높이는데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를 일으켜 벌을 받았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1장 29-30절) 예수님은 온유한 분이셨다. 힘이 있었지만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으셨다. 침례자 요한을 힘으로 밀어내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힘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지 않으셨다. 오히려 사회의 약자들 즉, 버림받은 어린이, 고아, 과부, 나병환자들을 찾아 다니셨다. 이들을 만나는 것이 무슨 득이 되었을까? 악한 자들의 악함을 악으로 갚지 않으시고 피하셨다.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도 정복자의 백말이 아니라 나귀를 타셨고, 마지막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겸손함의 절정을 보이셨다.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 안에 짓는 자야. 너 자신을 구원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그와 같이 수제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그분을 조롱하며 이르되, 그가 남들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으리라.(마태복음 27장 40-42절) 수제자장, 서기관, 장로들이 예수님께 “너나 구원해보라”고 조롱하였다. 우리 같으면 본때는 보여주었을 것이 틀림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이렇게 조롱할 때 싹 쓸어버릴 수도 있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는 순간까지 조롱을 당하면서도 힘을 절제하셨다. 하나님(예수님)이 온유함을 보이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성령님도 마찬가지다.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능력 면에서나 성품 면에서 성부, 성자 하나님과 동일하시다. 그러나 성령님은 자신을 드러내시지 않으신다,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성령님은 가장 온유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다. 겸손함 그 자체이시다. 성령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자신을 증언하려 하지도 않으시고 주목받으려고 하지 않으신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드러내고 깨닫게 하고 적용시키려 하신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위로자 곧 아버지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서 나에 대해 증언하실 것이요.(요한복음 15장 26절)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분은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자기가 듣는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내게서 받아 그것을 너희에게 보이실 것이기 때문이라.(요한복음 16장 13-14절) 새해를 맞이하면서 2024년 화두는 “몸에 힘을 빼자.”이다. 모든 운동은 몸에 힘이 들어가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좋은 성도가 되기 위해서도 반드시 몸에 힘이 빠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몸에 힘을 빼는 것이 신앙생활의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새해에 다짐한다.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을 것이다. 몸은 지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자. 눈에 힘을 빼자,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자. 입에 힘을 빼고 말을 더디 하자. 항상 위로가 되는 말을 하자. 목에도 힘을 빼야 한다. 뻣뻣한 목은 거만하게 보이고 교만을 나타낸다. 그리고 제발 성내지 말자. 나를 드러내지 말고 남을 드러내도록 하자. 내 안에 뛰노는 야생마를 다스려 잠재우자. 세상은 힘을 추구하라고 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성도들이 힘이 빠져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몸에 힘을 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말 땅을 상속받고 싶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상속받을 것이기 때문이요.(마태복음 5장 5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