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와 통제사회 1968년 1월 21일, 북한 공작원 31명이 고령산과 북한산을 넘어 청와대를 향했다. 이것을 '1·21 무장 공비 사태'라고 부른다. 31명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김신조는 "박정희의 목을 따러 왔다"고 말해 온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이 사건 이후 한국에는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대표적인 것이 주민등록증의 탄생이다. 효과적인 간첩 색출을 위해 전 국민에게 '식별번호'를 부여한 것이다. 남북 관계 특수성 때문에 한국은 세계 최고 효력을 갖는 신분증 제도를 갖추게 됐다. 미국에는 주민등록증 같은 범국가적 신분증이 없다. 주별 운전면허증으로 신원을 확인하는 정도다. 정부가 공권력을 함부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국민 개개인 정보 수집에 제한을 두기 때문이다. 종이로 된 사회보장 카드가 있지만 이 카드 번호로는 연령, 성별, 거주지 등 구체적인 신상 정보를 알 수 없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일본 등 웬만한 선진국에는 국가 차원의 신분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기류에 거대한 변화가 일고 있어 주목된다. 현재 유엔에서는 신분증 관련 초대형 프로젝트(ID 2020)가 진행 중이다. 목표는 지구촌 모든 사람에게 디지털 신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로드맵은 '2020년 기술적 토대 마련, 2030년 목표 달성'이다. 기술적 토대는 이미 확보된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주도해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ID 네트워크' 개발을 완료했다고 한다. 조만간 디지털 ID로 전 세계 어디서나 출생, 국적, 거주, 신용 조회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아마도 향후 디지털 ID는 '스마트폰 속 ID' 방식으로 구현될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반면 식별번호는 모든 사람에게 부여돼야 한다. 따라서 디지털 ID의 궁극적 지향점은 다름 아닌 '인간의 신체'가 될 것이다. 실제로 인도 국민의 90%(12억 명) 이상이 생체 기반 디지털 ID(아드하르)를 갖고 있다. 인도 국민들은 상점과 병원에서 현금을 거의 쓰지 않는다. 대신 카운터에 설치된 스캐너로 지문이나 홍채를 스캔한다. 이를 통해 신원이 확인되면 고객 은행 계좌에서 해당 상점 계좌로 사용 금액이 이체된다. 디지털 ID와 함께 주목받는 것이 디지털화폐(CBDC)다. 국제결제은행(BIS)과 각국 중앙은행들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안정적 통화정책을 교란할 수 있다고 보고 CBDC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CBDC가 도입되면 원, 엔, 달러 등 각국 법정 화폐가 디지털로 바뀐다. 정부는 편리성과 효율성, 완벽한 알리바이 입증과 완전범죄 퇴치, 물 샐 틈 없는 사회보장 등 각종 장점을 앞세워 생체 ID와 CBDC 도입을 홍보할 것이다. 문제는 치명적 부작용이다. 디지털 ID, CBDC에 인공지능이 결합하면 개개인의 동선, 각종 상거래 행위가 실시간 체크된다. 전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투명하게 벌거벗기는 것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투명사회'다. 사람들은 늘 투명한 세상을 꿈꿔왔다. 투명성이 신뢰 사회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투명사회는 신뢰 사회가 아니라 새로운 통제사회, 감시 사회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모든 것이 벌거벗겨진 투명사회에서 권력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특정 개인의 삶을 옥죄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비슷한 일을 목격했다.(출처 : 매경) 잘 알다시피 요한계시록 13장에는 모든 사람에게 이마나 오른손에 표를 받게 하고, 이 표 없이는 매매를 할 수 없게 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디지털 ID와 CBDC 도입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들의 오른 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수를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더라."(요한계시록 13장 16~17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