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쯤 전이었던가, 어떤 장로교 목사님 설교 영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완전 본의 아니게, 그야말로 우연히 마주친 유튜브 영상이었다 보니, 중간중간 정지시켜 잠깐잠깐 보는 식으로 하여 불과 5 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시청을 마쳤습니다. 그런데...훑어보듯 지나친 그 영상 속 한 장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있답니다. 너무나 감명 깊은 말씀이라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사람'이란 존재, 그 '속성'에 관한 서글픔 자아내는 그런 장면이었답니다. 이하, 그 장면부터 찬찬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왕상19:12(이세벨을 피해 굴속에 숨은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대목) 관련 상황 설명하면서 그 목사님이 그러시더군요.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서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중략)...여기서, 세~미한 소리란 어떤 소리냐? 바늘 하나 떨어질 때 나는 소리, 그런 미~세한 소리를 말합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바늘 하나 떨어질 때 나는 작~~은 소리를 엄청 비중 있게 강조하시더군요. 안 봐도 비디오라고, 50년 넘게 목회 활동 하신 목사님의 자못 엄숙한 표정, 그러니까, 미~세한 하나님 목소리 못 들을까 봐 무척 긴장한 듯한 그 표정과, 그리고 그보다 더한 긴장감 느껴질 정도의 엄숙함 속에서 조용히 숨죽여 아멘...!...역시 우리 목사님...!...하고 있는 성도들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그런 모습들 떠 올려본 다음...엥? 웬 바늘? 뜨개질용 대바늘도 아니고 바느질용 바늘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거기서 왜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나오지? 그리고 세~미는 또 뭐지? 수세미는 당연히 아닐 테고...라는 생각에 즉시 영상 시청을 멈추고 NIV 성경(비교 목적으로 곁에 두고 있는) 영어 원문을 찾아봤습니다.
A gentle whisper...라고 적혀 있더군요. 그러니까, gentle whisper, 그 두 단어를 ‘세미한 소리’라고 번역한 거죠. 글쎄요...아무리 소리의 톤을 낮춰 표현한다손 치더라도, 부드러운 속삭임...정도라면 모를까, 세미한 소리...를 넘어 바늘 하나 떨어질 때 나는 소리, 그러니까, 들릴락 말락 한(거의 안 들리는) 그런 소리는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저는 지금 번역 문제를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뜻은 제대로 못 전하고, 대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어떤 말씀 선포자와, 그 선포자의 말과 분위기에 취해 있는 성도들...이 연출하는 허울뿐인 예배 현장, 경배 현장의 서글픔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렇잖습니까, 도망하느라 지칠 대로 지쳤음은 물론 곧 잡혀 죽을 절박한 상황에 놓인 엘리야한테 하나님께서 바늘 하나 떨어질 때 나는 그런 미~세한 소리로 말씀하실 이유가 없잖습니까. 생사의 갈림길 아니라 죽음 직전의 엘리야 청력 테스트 하실 일 있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 이제는 죽었다 하고 있던 엘리야의 마음 어루만져 주시듯, 하나님께서는 그냥 보통의 부드러운 음성으로 부르셨을 뿐인데...미~세한 소리는 뭐고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는 또 뭐냐, 그 말씀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상식적인 차원을 벗어난 황당한 일...그러니까, 별다른 의미 없는 목소리(하나님 목소리를 두고 이런 표현 하자니 좀 그렇습니다만 ^^) 하나를 대단한 의미 있는 듯 꾸며놓고선 그에 감동하는 일...너무 황당한 그 일을, 결국은 자신을 포장하여 우매한 대중 앞에 드러낼 뿐인 그런 일을 저분은 감히 하나님 팔아서 하고 있잖아...?...라는 생각에서 답답~해지더군요.
그분이나 그 사람들이나 모두 그런 생각은커녕 오히려 거룩하신 하나님 향한 경배의 일념으로 그러고 있음 생각하매...그 답답함이 참으로 큰 서글픔으로 느껴졌답니다. 이어서, 위와 같은 서글픈 장면이 발생하는, 아니, 발생할 수밖에 없는 근원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더군요. 생각해 본 결과, 사람...그러니까, 죄성을 지닌 ‘사람’이란 존재의 어떤 속성 때문이라는 결론 내려지더군요. 그렇다면 그 속성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봤답니다. 바로 떠 오르는 ‘속성’이 뭔고 하니...‘대책 없음’ 이었답니다. 그러니까, ‘대책 없음’이 사람이란 존재의 속성이다...사람은 좌우지간 대책 없는 존재, 그 자체다...!...라는 결론에 이르더라는 말씀입니다. ^^ 원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법인지라...대책 없음, 그 속성의 근원은 또 뭘까...?...그러니까, 어떤 근원적 속성, 즉 진짜 속성으로 인해 사람은 대책 없는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까...?...라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자아도취, 헛똑똑이, 자기만족, 인생의 자랑, 기타 등등...수~없이 많은 단어, 표현들이 제법 한참 동안 뇌리를 스쳐간 끝에 한 단어가 결론처럼 드러났답니다. 교만,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결국은 그것, ‘교만’을 속성으로 지닌 사람이란 존재는 유튜브 영상 속 그런 서글픈, 일종의 가증한 장면 연출할 수밖에 없는 거다...라는 결론 내려지더군요.
바꿔말씀드리면, 그런 장면이 결국은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 말씀입니다. 꼬리를 물고 이는 다른 생각 하나가 있었답니다. 그렇다면...사람은 정녕 대책 없는 존재로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곱 가지(잠6:16-19) 중 첫 번째로 명시된 ‘교만’을 숙명적 속성으로 지닌 채 살아갈 수밖에 없을까...?...라는 궁금증이 그것이었습니다. 역시 한참 동안 머리 굴린 끝에...결론...제법 그럴 듯한 결론 하나를 찾았답니다. 교만...그것이 사람이란 존재의 숙명적 속성인 만큼 그 지배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라...그러나 거의 그 속성 없는 듯한 사람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는 있다...그곳에 가면...이라는 결론 말입니다. 그곳이 어디냐구요? ... 하나님 말씀 온전히 보존된 바른 성경, 성경 속 하나님 말씀 온전히 전하는 말씀 선포자, 그리고 하나님 뜻에 따른 사랑으로 서로 권면하는 성도들로 구성된 지역교회, 거기가 바로 그곳...아니겠는가...라는 결론 내려봤습니다.
늦가을로 접어들 11월 둘째 날 찾아갈 사랑침례교회, 그곳을 그려봅니다, 시월의 마지막 밤에.
(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