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의 복음서, 세상이 보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
늘 복음을 전하고 싶은 지인이 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찾아갔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에 다니자고 했다. 내 말을 들은 지인은 조목조목 그리스도인들의 언행에 대해서 말했다. 거친 표현도 했다. 낯이 뜨거울 정도였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그러나 실제로 전도를 시도해 보면 말처럼 쉽지 않다. 전하려는 사람은 말문이 막히고, 듣는 사람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성경을 아무리 권해도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볼게.”라는 말만 되돌아온다. 설득력 있는 논리나 감동적인 간증도 때로는 통하지 않는다. 왜일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은 성경책보다 먼저, 성경을 믿는 사람의 삶을 보기 때문이다. 복음의 내용을 듣기 전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인격과 태도에서 메시지를 느낀다. 그 사람이 진짜로 믿는 것을 삶에서 확인하려 한다. 결국 복음을 향한 불신은, 성경이 아니라 성경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즉, 복음 전도의 가장 큰 어려움은 복음을 전하려는 그리스도인의 삶 그 자체에 있을 수 있다. 성경에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등 네 복음서가 있다. 그러나 세상은 오늘도 다섯 번째 복음서, 곧 그리스도인의 삶을 읽고 있다. 아래 사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히고 있는지를 그 지인이 지적한 내용을 다듬은 것이다. 1. 말과 삶이 불일치한 모습 직장이나 가정에서 신앙을 말하는 이가 오히려 비신자보다 더 거칠고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겉으로는 기도와 말씀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남을 무시하거나 쉽게 화를 내고, 다른 이의 뒷말을 하는 일도 적지 않다. 이처럼 말과 삶이 다를 때, 복음은 설득력을 잃는다. 예수는 바리새인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너희에게 지키라고 명하는 모든 것은 지키고 행하되 너희는 그들의 행위대로 하지는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아니하며"(마태복음 23장 3절) 말로는 복음을 전하지만 삶으로는 복음을 부정하는 경우이다. 삶이 따라오지 않으면 진리가 왜곡된다.
2. 물질적 축복을 신앙의 열매로 여기는 모습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믿음이 좋으니 복을 받았다”는 식의 평가가 흔히 들려온다. 직장을 잘 구하고, 사업이 번창하며, 자녀가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을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으로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물론 축복은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복음을 물질의 풍요와 동일시하는 순간, 십자가의 본질은 흐려진다.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혼을 잃으면 그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나?” (마가복음 8장 36절) 복음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이다. 무엇을 가졌는가보다, 누구로 살아가는가가 중요하다.
3. 교회 밖 사람들과 거리 두고 정죄하는 태도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담 속에서, 때로는 세상 사람들과 벽을 쌓는다. 신앙의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에게는 쉽게 비판과 정죄의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예수님의 태도는 달랐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들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장 17절) 복음은 담을 쌓기보다 다리를 놓는 일이다. 정죄는 사람을 멀어지게 하지만, 이해는 다가오게 만든다. 교회 바깥의 사람들도,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다.
4. 신앙 고백은 있으나 삶의 열매가 없는 모습 예배는 드리지만, 일상에서는 성경과 무관한 태도가 지속될 때 복음은 의심받는다. 기도는 하지만 변덕이 심하고, 말씀은 외우지만 정직하지 않다면, 누가 그 믿음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야고보는 분명히 말한다. “이와 같이 믿음도 행위가 없으면 그것만으로는 죽은 것이니라"(야고보서 2장 17절) 복음은 들려지는 것만이 아니라 보여지는 것이다. 삶에서 드러나지 않는 믿음은 말로만 남게 된다.
5.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랑이 드러나지 않는 모습이다 세상은 교회를 향해 “너희끼리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무슨 사랑을 말하느냐”고 묻는다. 교회 안에서 다툼과 분열, 소문과 험담이 이어질 때, 공동체는 복음의 향기를 잃는다. 사랑 없는 진리는 차갑고, 분열된 공동체는 외면당한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것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3장 35절) 사랑은 교회의 가장 강력한 복음 증거이다. 세상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예수를 떠올리게 되어 있다.
결론: 우리는 어떤 복음서를 써 내려가고 있는가 세상은 성경책을 펼치기 전에, 그리스도인을 먼저 읽는다. 복음서를 공부하기 전에, 그 복음을 믿는 사람의 태도를 관찰한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나는 지금 어떤 복음서를 쓰고 있는가?” “나를 통해 복음이 선명하게 전해지고 있는가?” 완벽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직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는 있다. 복음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날 때, 가장 깊이 전해진다.
오늘도 세상의 누군가는 ‘내 삶이라는 복음서’를 읽고 있다. 그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진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날마다 삶을 다듬고, 겸손히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그 지인은 당분간 믿기 힘들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