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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구적 상품과 사회의 역할조회수 : 63
    • 작성자 : 이규환
    • 작성일 : 2026년 10월 9일 9시 51분 19초
  • 허구적 상품과 사회의 역할

    "시장의 지배를 막으려다 국가의 지배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1. 시장은 사회를 지배해서는 안 되는가?

     

    시장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 중요한 제도다. 시장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이 생산한 상품을 교환하고, 기업은 경쟁을 통해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며, 소비자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시장경제가 인류의 물질적 풍요와 경제적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시장이 언제나 바람직한 결과만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개별적인 선택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결과가 사회 전체에 반드시 유익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학자가 칼 폴라니(Karl Polanyi)이다.

     

    폴라니는 1944년에 출간한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에서 근대 시장경제가 형성되는 과정과 그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변화를 분석했다. 특히 그는 시장이 사회적 관계와 제도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모든 것을 조정할 수 있다는 자기조정적 시장(Self-regulating Market)의 이상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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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라니의 문제의식은 시장 자체를 부정하는 데 있지 않았다. 경제활동이 인간의 삶을 뒷받침하는 수단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인간의 삶과 사회제도가 시장의 요구에 맞추어 재편되는 현상을 경계한 것이다. 그는 경제가 본래 사회적 관계 속에 존재했지만, 근대 시장경제의 발달과 함께 이러한 관계가 역전되었다고 설명했다. 경제가 사회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경제체제의 요구에 종속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시장이 사회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장을 통제하고 사회를 보호할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국가인가, 정치지도자인가, 아니면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폴라니가 제시한 상품과 허구적 상품의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2. 상품과 허구적 상품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상품이란 시장에서 판매하거나 교환하기 위해 생산한 재화나 서비스를 의미한다. 기업이 자동차를 생산하는 이유는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위해서이다. 농장에서 생산한 농산물, 공장에서 만든 가전제품, 기업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도 시장에서 판매하거나 제공할 목적으로 생산된다. 이러한 상품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고, 생산자는 그 가격을 고려하여 생산량을 조절한다. 그러나 폴라니는 모든 것을 이러한 상품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가 대표적인 허구적 상품(Fictitious Commodities)으로 제시한 것은 노동, 토지, 화폐이다. 허구적 상품이라는 말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짜 상품이라는 뜻이 아니다. 본래 판매를 목적으로 생산된 것이 아닌데도 시장에서 일반 상품처럼 취급되는 대상을 의미한다.

     

    노동은 인간과 분리할 수 없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노동은 인간이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능력을 사용하여 수행하는 활동이다. 노동시장에서 기업은 노동력을 구매하고 노동자는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그러나 노동은 자동차나 기계와 같은 상품이 아니다. 노동을 제공하는 인간의 삶과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이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인력을 감축한다고 가정해 보자. 기업의 관점에서 인건비 절감은 합리적인 경영 판단일 수 있다. 그러나 해고된 노동자는 생계의 어려움을 겪고, 가족의 생활이 불안정해지며, 지역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노동을 비용이라는 관점에서만 판단하면 인간의 존엄과 삶의 안정이라는 중요한 가치가 소홀해질 수 있다. 폴라니가 노동을 허구적 상품이라고 규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토지는 인간이 생산한 상품이 아니다. 토지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생활 기반이다. 인간은 토지를 소유하거나 이용할 수 있지만 토지 자체를 생산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시장경제에서는 토지에 가격을 매기고 거래한다. 토지는 생산활동의 기반이면서 동시에 투자와 투기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농지는 식량을 생산하는 기반이다. 그러나 농지가 농업생산보다 가격 상승에 따른 차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은 높은 농지가격 때문에 농지를 확보하기 어려워지고, 농업생산과 농촌공동체의 유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도시의 주택용 토지도 마찬가지이다. 주거공간이 거주보다 투자수익을 위한 수단으로만 취급된다면 주거비 상승과 주거 불안정이 심화될 수 있다. 폴라니는 이러한 문제를 통해 토지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과 자연환경을 유지하는 기반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화폐는 사회적 제도와 분리할 수 없다. 화폐 역시 일반 상품과는 성격이 다르다. 화폐는 재화와 서비스를 교환하고 가치를 표시하며 채무를 결제하는 수단이다. 특히 근대 경제에서 구매력과 신용은 은행과 금융제도, 국가의 통화제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폴라니는 이러한 화폐를 일반 상품처럼 자기조정적 시장에 맡길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지적했다. 예를 들어 금융시장에서 신용이 급격히 위축되면 기업은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진다. 기업의 도산이 증가하고 실업이 확대되면서 사회 전체가 경제적 위기에 빠질 수 있다. 특히 폴라니는 국제 금본위제 아래에서 통화가치와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국내의 고용과 생산, 국민의 생활이 희생되는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었다. 따라서 화폐 역시 단순한 거래 대상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경제활동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기반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 토지, 화폐는 시장에서 거래되지만, 일반 상품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노동이 파괴되면 인간의 삶이 무너질 수 있고, 토지가 파괴되면 자연환경과 생활 기반이 훼손되며, 화폐제도가 불안정해지면 경제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이것이 폴라니가 허구적 상품이라는 개념을 통해 전달하려 했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구분해야 한다.

     

    노동, 토지, 화폐가 허구적 상품이라는 사실이 곧바로 노동시장의 폐지, 토지의 국유화, 화폐에 대한 국가의 전면적인 통제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대상이 일반 상품과 다르다는 사실과 그 대상을 국가가 어느 정도까지 통제해야 하는가는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3. 폴라니가 말하는 사회는 무엇인가?

     

    폴라니의 사상을 이해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개념이 바로 사회(Society)이다. 우리는 흔히 사회와 국가를 비슷한 의미로 사용한다. 그러나 폴라니가 말하는 사회는 국가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다. 사회는 개인과 가족, 기업과 노동조합, 지역공동체와 종교단체, 시민단체와 국가, 그리고 이들 사이에 형성된 제도와 관계의 총체이다. 시장 역시 이러한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제도이다. 따라서 폴라니가 시장을 사회 속에 위치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시장을 국가에 종속시켜야 한다는 뜻과 동일하지 않다. 그가 강조한 것은 경제활동이 사회적 관계와 제도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방법은 국가의 노동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기업의 자율적인 근로조건 개선, 직업훈련, 사회보험 등 다양한 제도가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다. 농지를 보호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이다. 국가의 토지이용 규제뿐 아니라 농민의 자율적인 협력, 지역공동체의 농지관리, 합리적인 농업지원 정책 등이 함께 작동할 수 있다.

     

    폴라니는 시장경제의 확대에 대응하여 사회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을 '사회의 자기보호'라고 설명했다. 이것이 그가 제시한 이중운동(Double Movement)의 중요한 내용이다. 한편에서는 시장의 자유로운 확대가 진행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로 인한 사회적 피해를 줄이기 위한 보호운동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문제가 남는다.

     

    사회는 하나의 통일된 의지를 가진 존재가 아니다. 노동자와 기업가의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고, 농민과 소비자의 요구가 충돌할 수 있으며, 주택 소유자와 무주택자의 이해관계도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 전체의 이익은 누가 결정하는가? 특정 집단의 요구를 사회 전체의 요구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국가가 내린 결정은 언제나 사회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가? 이 질문은 폴라니의 사상을 현실 정책에 적용할 때 반드시 검토해야 할 문제이다.

     

    4. 국가가 사회를 오해할 때 발생하는 위험

     

    폴라니의 사상은 시장의 한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그러나 사회의 자기보호라는 개념을 국가나 정치지도자가 잘못 해석하면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은 국가와 사회를 동일시하는 오류이다. 

    국가는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제도이지만 사회 그 자체는 아니다. 국가는 법률을 제정하고 정책을 집행하며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국가의 판단이 언제나 국민 전체의 이익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정책에는 수혜자가 있는 동시에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런데 국가가 자신의 정책을 사회 전체의 이익이라고 규정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사회적 이익에 반하는 존재로 취급한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강력한 규제를 시행한다고 가정해 보자. 투기를 억제하고 주거 안정을 도모하는 목적은 정당할 수 있다. 그러나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실거주자의 정당한 재산권이나 이동의 자유까지 과도하게 제한한다면 사회적 보호라는 목적과 충돌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농지 정책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농지를 농업생산의 기반으로 보호하려는 국가의 정책에는 헌법적 근거가 존재한다. 따라서 농지의 불법적인 취득이나 투기를 적발하기 위한 실태조사는 정당한 행정활동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농지 전수조사를 시행한다고 가정할 때, 모든 농지 소유자를 잠재적인 투기세력으로 간주하거나 법률이 인정하는 예외를 무시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부모로부터 농지를 상속받은 사람, 고령이나 질병으로 직접 경작하기 어려운 농민, 법률이 허용하는 방식으로 농지를 임대하는 사람은 각각 법적 지위가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실제 경작 여부만을 기준으로 일률적인 처분을 요구한다면 정당한 권리까지 침해할 위험이 있다. 물론 농지 전수조사 자체가 이러한 권리침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정책의 정당성은 조사 범위와 방법, 법적 근거, 예외 인정, 불복 절차 등을 확인하여 판단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농지의 공공성을 보호한다는 목적이 국가의 무제한적인 통제권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로 경계해야 할 것은 정치지도자가 자신의 의지를 사회 전체의 의지로 착각하는 오류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지도자는 선거를 통해 권력을 위임받는다. 그러나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이 모든 정책에 대해 국민 전체의 동의를 얻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를 들어 국민 다수가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표에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조세와 복지 확대를 강조하고, 어떤 사람은 기업의 투자와 고용 확대를 강조하며, 또 다른 사람은 교육과 직업훈련을 통한 기회 확대를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지도자가 자신이 선택한 정책만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실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면 민주적 토론과 비판의 공간은 축소될 수 있다.

     

    세 번째는 사회적 보호와 국가의 직접 통제를 동일시하는 오류이다.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모든 고용관계를 국가가 결정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토지의 공공성을 인정한다는 주장이 모든 토지를 국가가 소유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금융시장의 안정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가가 모든 자금의 흐름과 투자 결정을 직접 통제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사회적 보호의 필요성과 국가 통제의 범위는 구분해서 판단해야 한다. 특히 국가의 개입은 법률에 근거해야 하며, 목적의 정당성뿐 아니라 수단의 적합성과 필요성, 침해의 최소성까지 검토해야 한다. 사회적 보호를 내세운 정책이라도 이러한 원칙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5. 사회주의와 전체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은 없는가?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에 도달한다. 폴라니가 주장한 사회적 보호의 논리가 국가의 경제적 통제를 확대하고, 궁극적으로 사회주의나 전체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은 없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사회주의와 전체주의를 구분해야 한다.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소유와 경제적 자원의 배분을 사회적으로 조직하려는 다양한 사상과 제도를 포괄한다. 그 안에는 민주적 사회주의부터 강한 국가소유와 계획경제를 강조하는 체제까지 여러 형태가 존재한다. 반면 전체주의는 국가나 지배세력이 정치권력뿐 아니라 사회생활과 개인의 사상, 표현, 결사 등의 영역까지 광범위하게 통제하려는 정치체제를 의미한다. 따라서 국가가 경제에 개입한다는 사실만으로 사회주의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사회주의가 반드시 전체주의로 이어진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 오늘날 많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시장경제를 유지하면서도 노동법, 사회보험, 금융규제, 환경보호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가 사회 전체의 이익을 독점적으로 정의하고, 이를 근거로 경제활동과 개인의 자유를 지속적으로 제한한다면 권위주의적 통치로 발전할 위험은 존재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폴라니와 대비되는 사상가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이다.

    하이에크는 1944년에 출간한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에서 경제적 의사결정이 국가의 중앙집중적인 계획에 종속될 때 개인의 자유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장경제에서 가격은 수많은 개인이 가진 정보와 선택을 조정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국가가 이러한 결정을 광범위하게 대신하려 하면 경제적 권한이 정치권력에 집중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국가는 자신이 설정한 경제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개인의 선택을 제한하려는 유인을 갖게 될 수 있다.

     

    하이에크의 경고는 모든 정부 개입이 곧 독재로 이어진다는 단순한 주장이 아니다. 중앙집중적 경제계획이 확대될수록 권력의 집중과 자유의 침해가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는 문제의식이다. 반면 폴라니는 자기조정적 시장의 확대가 사회적 불안정을 심화시키고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고 보았다. 두 학자는 서로 다른 위험을 강조했다. 폴라니는 시장권력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위험을 경고했고, 하이에크는 국가권력이 경제와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위험을 경고했다. 어느 한쪽의 경고만을 받아들여서는 충분하지 않다. 시장에는 실패의 가능성이 있고 국가에도 실패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폴라니 자신이 전체주의를 옹호한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는 파시즘을 자유와 민주주의를 파괴한 정치적 대응으로 분석했으며, 사회적 보호와 자유의 양립을 중요한 문제로 다루었다. 따라서 폴라니의 사상이 필연적으로 전체주의를 낳는다고 단정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다만 그의 사상에서 사회적 보호라는 명분만을 강조하고 민주적 통제와 개인의 자유라는 조건을 소홀히 한다면, 국가권력의 확대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오용될 가능성은 있다. 특히 정치지도자가 자신을 사회 전체의 유일한 대변자로 여기기 시작할 때 그 위험은 더욱 커진다.

     

    국가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을 공동체의 이익을 해치는 존재로 규정하고, 개인의 정당한 권리보다 국가가 설정한 목표를 우선하며, 비판과 견제를 사회적 발전의 장애물로 취급한다면 사회적 보호라는 명분은 권력 집중의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전체주의 체제는 종종 공동체의 안전, 국가적 위기 극복, 집단적 목표의 실현을 강조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다원성을 억압했다. 

     

    그러나 사회는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사회는 정치지도자가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수단도 아니다. 오히려 국가는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법과 제도 안에서 조정될 수 있도록 봉사해야 한다.

     

    6. 시장의 실패를 바로잡다가 국가의 실패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시장경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노동을 단순한 비용으로만 취급할 수 없고, 토지를 투자상품으로만 바라볼 수 없으며, 화폐와 금융을 사회적 제도와 분리하여 이해할 수 없다는 그의 지적은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다. 특히 노동의 불안정, 부동산 투기, 금융위기, 환경 파괴와 같은 문제를 생각하면 허구적 상품이라는 개념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폴라니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국가의 모든 개입을 정당화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국가의 판단은 언제나 옳다는 증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 역시 불완전한 정보와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지도자와 관료들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더욱이 국가권력은 강제력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시장의 실패와는 다른 위험을 가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소비자가 구매를 거부하거나 기업이 거래를 중단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국가의 법률과 행정명령은 개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시장에서도 독점이나 필수재에 대한 의존 등으로 개인의 선택권이 크게 제한될 수 있다. 따라서 시장의 자유를 무조건적인 자유로 이상화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시장과 국가 어느 쪽에도 무제한적인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시장은 경쟁과 혁신을 통해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국가는 법치주의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고 사회적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시민사회와 공동체는 국가와 시장을 감시하고 견제하면서 자율적인 협력의 공간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은 국가나 시장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유와 존엄을 가진 독립적인 주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결국 건강한 사회란 시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도 아니고, 국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도 아니다. 시장과 국가, 공동체와 개인이 서로의 역할과 한계를 인정하면서 균형을 유지하는 사회이다.

     

    7. 결론: 사회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사회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폴라니는 시장이 사회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의 주장은 시장경제의 발전이 가져온 물질적 풍요의 이면에 인간의 삶과 공동체의 안정이 훼손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시장이 사회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국가가 사회를 지배해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보호라는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모든 수단까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는 사회의 일부이지 사회 전체가 아니다. 정치지도자는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이지 국민의 삶과 재산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더욱이 사회의 이익은 하나의 정치적 구호나 지도자의 신념으로 결정될 수 없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하고, 합의하며, 법과 제도를 통해 조정해 나가야 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노동과 토지와 화폐가 허구적 상품이라는 폴라니의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곧 국가의 무제한적인 개입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사회적 보호는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 법치주의, 민주적 통제라는 원칙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가 사회를 보호하려면 먼저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시장경제의 폐해를 시정하려는 정책이 또 다른 권력의 남용을 만들어 낸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보호라고 할 수 없다.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오늘날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시장 비판을 무조건 수용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역할과 국가의 역할을 함께 성찰해야 한다. 시장의 실패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국가의 실패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시장의 전횡을 막으려다가 국가의 전횡을 허용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이 있다. 국가가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회가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비판적으로 읽으면서 오늘날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할 자유와 사회적 보호의 관계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자꾸 기시감(데자뷔)이 드는 이유는 뭘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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