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것의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 심지어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그 희락의 끝은 근심이니라. (잠14:12-13절) 사람이 보기에 옳은 것처럼 보이는 길이 있습니다. 옳은 길에 대한 바른 분별은 그 종말/끝을 보라는 것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긍정적 사고의 힘, 웃으면 복이와요, 등과 같이 그럴듯한 말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너무 고지식하게 살면 안된다, 세상은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 등과 같이 타협을 제의해 오기도 합니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상대적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 문화나 시대는 끊임없이 변화하므로 능동적으로 적응해 나가야 한다. 등과 같이 다원주의, 상황윤리와 같이 교묘한 말로 현혹을 시키기도 합니다. 어쨌든 사람에게 기원을 둔 말이나 이론들은 겉으로 보기에 그럴 듯하게 보이고 무언가 힘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결과는 사람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예전에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영역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재계에서, 정치계에서, 문화계에서 탁월한 성공을 이루면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더 효율적으로 복음이 전파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은 사람이 보기에 옳은 것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분명 그리스도인들이 빈궁하게 살아야만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믿는 사람들이 지혜롭게 부지런히 맡은 바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의 어떤 성과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하등의 이유가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시오, 소유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면 필요한 자리에 나를 앉히실 수도 있으시고, 또 영향력있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실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앞에서 어떤 존재가 되느냐가 더 중요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잠언서의 글을 읽다보면 의로운 자에 대한 언급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의로운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자이고, 마음이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바른 말과 바른 행동이 나오며, 바른 열매를 맺게 되며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반면에 마음이 하나님께 합당치 않은 사람은 사악한 말과 사악한 행동이 나오고, 사악한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으며 하나님의 재앙가운데 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외적인 것, 환경적 요인을 바꾼다고 마음의 상태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웃는다고 해서 마음이 즐거울 수는 없으며, 아무리 긍정적인 생각과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긍정적 결과를 야기할 수 없습니다. 칭찬과 위로를 한다고 해서 헌신과 봉사를 유도할 수 없습니다. 칭찬과 위로가 소홀해지는 순간 그 헌신의 열의는 사그러들고 말 것입니다. 나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를 높이고 존중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