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내에게, 당신을 처음 만난 게 벌써 50년 전입니다. 햇살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고 있던 예쁜 여대생 누나의 모습을 난 아직도 기억합니다. 손을 번쩍 들고 나를 바래다주겠다고 나서던 당돌한 여대생, 당신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날개 없는 천사였습니다. 앞으로 함께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순간에 나의 가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당신을 향한 감사함과 미안함입니다. 시각장애인의 아내로 살아온 그 세월이 어찌 편했겠습니까. 항상 주기만 한 당신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해서좀 더 배려하지 못해서 너무 많이 고생시킨 것 같아서 미안합니다. 지난 40년 간 늘 나를 위로해주던 당신에게 난 오늘도 이렇게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아직도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당신을 가슴 한 가득 품고 떠납니다. 더 오래 함께 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내가 떠난 후 당신의 외로움과 슬픔을 함께 해주지 못할 것이라서.
나의 어둠을 밝혀주는 촛불,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위의 글은 지난 24일 68세의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나간 강영우 박사가 마지막으로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중학교 때 축구를 하다가 눈을 다친 것이 원인이 되어 시력을 잃은 강영우씨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부모님도 어린 나이에 돌아가시게 됩니다. 암흑 속에서 절망 가운데 자살의 유혹과 맞서 싸우다가 교회에서 눈물의 기도 가운데 새로운 소망을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점자를 배우며 친구들이 대학생이 될 나이에 중1 과정부터 뒤늦게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시각장애인프로그램에서 당시 숙명여대 1학년생으로 자원 봉사를 나왔던 석경숙씨를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강영우씨 보다는 2살 더 나이가 많았던 석경숙씨는 온갖 편견과 싸우며 강영우씨를 친동생처럼 돌보아 주게 됩니다. 틈틈이 책을 읽어주었고 소풍 때에는 도시락까지 싸주는 ‘천사 누나’의 헌신어린 도움에 힘입어 강영우씨는 연세대에 진학을 합니다.
대학교에 들어 간 첫 해에 강영우씨는 자신을 돌봐주던 석경숙씨에게 “이제 우리가 오누이가 아니라 연인으로 태어나자”며 사랑을 고백하기에 이릅니다. 그때 강영우씨는 “돌밭을 걷는 ‘석(石)’의 시기 10년이 지나면, 돌보다 귀한 ‘은(銀)’의 시기 10년이 오고, 그 시간이 지나면 은보다 귀한 ‘옥(玉)’의 시기 10년이 올 것”이라며 석경숙씨에게 ‘석은옥’이라는 이름을 새로이 선물합니다. 결국 강영우씨의 ‘천사’는 자신의 이름을 ‘석은옥’으로 바꾸고, 프로포즈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강영우씨는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얻게 되고,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백악관 장애인위원회 정책차관보, UN세계장애인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세계적으로 장애인들의 큰 귀감이 되었고 평생 장애인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슬하에 두 아들 또한 사회적으로 촉망 받는 위치에 설 수 있도록 키워 내어 큰 아들은 미국에서 유명한 안과의사가 되어 있으며 둘째 아들은 백악관 선임법률고문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제 강영우 박사는 2월 24일 미국 버지니아의 자택에서 췌장암으로 투병하던 중 68세를 일기로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집안은 물론이고 주변의 친구들도 “맹인과 결혼하다니 창피하다”며 결혼식에 조차 오지 않았다던 석은옥 여사는 비록 지금은 남편을 보내고 혼자 남았지만, 강영우 박사와 함께 한 지난 50년의 세월이 있기에 오히려 지금의 그녀를 전혀 외롭게 보이게 하지 않습니다.
강영우 박사의 마지막 편지에 적혀 있듯이 그녀는 진정 한 사람의 “어둠을 밝혀주는 촛불”이었습니다. 나 또한 한 번도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전하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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