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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짐승의 표’는 언제부터 사용되게 될까요?조회수 : 8639
    • 작성자 : 김정훈
    • 작성일 : 2012년 3월 16일 23시 19분 1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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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말의 시대에 우리가 알아야 할 ‘짐승의 표’의 사용 시점에 대하여 제가 깨닫고 이해한 것을 정리하여 올립니다. 다소 무거운 내용이 될 수 있으나, 결국은 언젠가는 피해 갈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에 성도님들과도 같이 나누고자 글을 올립니다.

     

    참고로 KeepBible 사이트 <자유게시판> #1536에도 같은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만, 아무래도 내 집 같은 분위기의 우리 교회 홈페이지는 다가오는 그 느낌이 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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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그 유명한 ‘짐승의 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나옵니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들의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 그 표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수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더라. (계 13:16-17)”

     

    여기서 모든 사람들에게 ‘표’를 받게 하는 ‘그’는 큰 이적들을 행하며 (계 13:13), 짐승을 위하여 형상을 만들고 (13:14), 그 형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들을 다 죽이게 하는 자로서 (13:15), 결국 그의 정체는 ‘거짓 대언자’인 것으로 밝혀지게 됩니다 (19:20).

     

    그런데 그 거짓 대언자가 사람들로 하여금 짐승의 형상을 향하여 경배하도록 옭아매는 수단으로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짐승의 표’인데, 이것을 받지 않으면 매매를 할 수 없게 됨으로 (13:17), 사람들은 생존을 위하여 표 받는 것을 쉽게 거부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렇다면, 짐승의 표는 언제 이 땅에 출현하고, 거짓 대언자에 의하여 사용되어 지게 되는 것일까요?

     

    우선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짐승의 표는 어느 날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짐승의 표가 상징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기술'을 요구하는 하나의 발명품이고,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지 기술의 발전과 함께 미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시 앞에서 기술한 요한계시록의 말씀으로 돌아가 봅시다.

     

    “그가 모든 자 ... 에게 그들의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 (계 13:16)”

     

    잘 읽어 보면 이 말씀은 단지 짐승이 나타난 이후에 그가 - 즉, 거짓 대언자가 - 짐승의 표를 받게 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가 받게 하는 그 표가 언제 만들어 졌는지 혹은 그 이전에라도 사용되고 있었는지 등에 대하여는 딱히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것처럼 이 ‘표’라는 것이 어떤 '기술'을 요구하는 하나의 발명품이라고 본다면, 짐승이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활동하기 이전일지라도, 그의 길을 예비하는 다른 악의 세력들에 의하여 장차 짐승의 표의 기능을 하게 될 어떤 ‘표’를 미리 기술적으로 완성 시켜 놓고, 이것을 사람들에게 미리 받게 함으로 (가령 표를 받으면 얻게 될 각종 건강 및 보안 등의 편리성 등을 강조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표’에 친숙하도록 해 놓은 뒤에, 어느 날 비로소 ‘때’가 이르렀을 때에 거짓 대언자가 이제 그 동일한 표를 성경이 말하는 '짐승의 표'로서의 의미로 사람들에게 받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이 딱히 그렇다 안 그렇다고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만일 누군가가 위의 성경 구절을 읽고 짐승의 표는 아무래도 짐승 혹은 거짓 대언자의 출현 이후에 나오는 것일 뿐이라고 여기고, 따라서 환난 전 휴거를 이룰 성도들에게는 전혀 표를 받을 일도 없는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면, 그것은 잘못하면 큰 오해를 낳을 수도 있기에 주의가 요망 됩니다. 이 부분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성경에 보니 빌라도가 다음과 같이 행함이 나옵니다.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주고, 예수님은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주니라.” (마 27:26)

     

    자, 십자가는 도대체 언제부터 사형 도구로 사용되게 되었을까요? 누군가가 이 말씀을 읽고, “저는 십자가가 빌라도의 출현 이전에도 이미 사람들이 지고 가도록 사용되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빌라도가 죄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십자가를 미리 지고 다니게 하다가, 예수님을 처형하려는 그 때에 가서 예수님도 그것을 지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하지 않고, 단지 빌라도가 나타난 이후에야 비로소 예수님께 십자가를 지게 한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면, 누구라도 그것이 사실과는 다른 설명이라는 것을 쉽게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역사적 지식을 통해 십자가 형벌이 언제부터 출현하였는지를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십자가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가정하여 봅시다. 그러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성경에 보니까, 빌라도의 출현이후부터 십자가가 나오게 되니, 따라서 그 이전에는 십자가에 달려 사형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오해를 낳을 수도 있게 되겠지요. 바로 이와 같습니다. 빌라도가 이미 존재하는 보편적인 의미로서의 십자가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사형시키는 도구로 사용함으로, 그 십자가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가 될 수 있듯이, 거짓 대언자 또한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널리 퍼져 있는 ‘표’를 짐승을 경배하도록 하는데 필요한 수단으로 쓰게 됨으로 그것이 ‘짐승의 표’라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 받도록 할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계시록으로 가서 13장 16-17절 말씀을 한 번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합시다. 16절의 표를 받게 한다는 말씀은 곧 바로 17절의 표 없는 자는 곧 매매를 못하게 된다는 말씀과 이어지면서 결국 이 뜻은, “짐승의 표란 그것 없이는 매매를 못하게 하는 표”라는 의미로 강조되어 나타납니다. 더욱이 영문 KJV 성경에는 16절과 17절 사이에 콜론 (:) 문장부호를 둠으로써, 이 두 구절의 의미가 떨어지지 않고 서로 연속적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음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주목해 봐야 할 점은, 결국 거짓 대언자에 의해서 주어지는 이 16절의 표는 매매통제 수단으로 이용되기 위하여 특별히 그가 권력을 행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받게 하도록 한다는 뜻을 의미할 뿐, 이 표가 그 전에도 유사한 목적 혹은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었던지 안 되었던 지의 여부에 대하여는 성경이 따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은 단지 거짓 대언자가 짐승의 표를 받게 하여 매매를 못하게 하는 통제 수단으로 사용할 것임을 말해 줄 뿐, 그 표가 반드시 짐승 혹은 거짓 대언자의 출현 이후에만 나오고 사용된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다시 말해 표의 출현과 그 표가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사용되는 시점은 (비록 그것이 다른 목적일지라도) 짐승 혹은 거짓 대언자의 출현 보다 더 이전일 수도 있음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표’와 연결된 구원의 문제를 떠나서라도, 장차 ‘때’가 이르렀을 때에 짐승의 표로 사용될 어떤 형태의 ‘표’를, 휴거가 일어나기 이전일지라도 휴거로 들림 받을 성도들 또한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음을 유념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때는 경배를 요구하기 전이므로 ‘표’를 받아도 믿음을 통해 이루게 될 구원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않을 수 있고, 경배를 요구하기 이전에 휴거가 먼저 일어난다면 결국 그 표는 구원과는 상관없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생활 침해와 개인의 자유의사를 통제 또는 간섭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알고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생각해야 할 일은, 우리 가운데는 환난을 겪고 늦게 구원 받을 성도들이 또한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일지 모르는 그들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가슴에 품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일 것이며, 그렇지 않고 환난 전에 휴거될 성도라 할지라도, 깨어 준비하며 더욱 자신을 돌아보아 여분의 기름을 채워 준비된 신부로 기다리고 있으려면, 이런 시대를 정확히 읽는 지식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이 종말의 시대에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우리가 늘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함은 성도라면 너무나도 당연하고 필요한 태도이겠지만, 요한 계시록 같은 말씀을 통해 사탄이 말세에 행할 일을 미리 알고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는 일은 매우 유익하고 또 중요합니다. 지금은 거센 배도의 물결이 일고 있는 때입니다! 적이 얼마나 간교한지 그 움직임을 알고 있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어도 뱀의 간교함 앞에 여지없이 무너진 이브와 아담이 결코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모든 성경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 또한 비록 심판주로 다시 오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우리의 주목을 끌도록 강조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성경의 그 어느 책보다도 사탄의 마지막 될 일과, 짐승의 표, 환난 등에 대하여도 자세히 기록하고 있음 또한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말세에 되어 질 일들을 우리에게 소상히 알림으로 성도들로 하여금 깨어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따라서 특별히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에는 그동안 감추어져 있던 짐승의 모습이 확연히 눈앞에 드러남을 주목하여, 시대의 물결을 따라 미혹되지 않고 굳건하게 믿음 승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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