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래 예배당에서 명실상부한 지역교회로서의 첫발을 내딛었다. 지역 주민들로부터 교회가 하나 들어왔구나! 에서 우리 교회가 갖고 있는 특성과 목회철학에 대한 특별한 이해로 접근되었으면 한다. 기존과는 다른 또 다른 방법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처음 들어왔을 때 가나안 거주민들의 주목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의 행동 하나, 말 하나가 조심스러워 진다. 우리는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접할 때 개괄적인 이해를 한다. 접하는 빈도가 잦아 질수록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구체적으로 세밀한 이해를 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 소유 또는 관계 형성을 통해 특별한 이해를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본연의 가치나 중요성이 더욱 증대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는 과정도 비슷한 것 같다. 처음에는 크신 분, 신뢰할만한 분정도로 이해를 하다가 성경에 계시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알아가게 된다. 나를 위해 특별한 창조와 대속의 희생을 하신 것을 발견할 때 하나님을 전능자 하나님, 구원자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성경에 기록된 한 말씀 한 말씀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이 나에게 전해져 오는 것을 느낀다. 나를 하나님앞으로 인도하시는 섭리의 손길과 현재 나를 빚어가시며, 앞으로 나를 위해 어떠한 일들을 계획해 놓으셨는지를 발견할 때 큰 기쁨과 관심이 증폭된다. 왜냐하면 나와 믿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기록을 통해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발견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크신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하나님앞에 엎드렸으며, 자신의 흉악한 죄를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므로 그분의 깊이와 너비와 높이를 헤아릴 수 없는 분이시다. 다음은 특별한 이해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만났던 분들에 대한 기록이다.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하시니라. 모세가 [하나님] 뵙기를 두려워하였으므로 자기 얼굴을 숨기니라.” (모세, 출3:6절), “이에 그가 내가 서 있는 곳으로 가까이 나아오더라. 그가 나올 때에 내가 두려워서 얼굴을 대고 엎드렸으나 그가 내게 이르되, 오 사람의 아들아, 깨달으라. 그 환상은 끝이 임하는 때에 있을 일이니라.”(다니엘, 단8:17절), “¶ 그때에 내가 이르기를, 내게 화가 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의 한가운데 거하므로 망하게 되었나니 내 눈이 [왕] 곧 만군의 {주}를 보았도다, 하였더라”(이사야, 사6:5절), “내가 귀로 듣는 것을 통해 주께 대하여 들었사오나 이제는 내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내 자신을 몹시 싫어하고 티끌과 재 속에서 회개하나이다, 하니라.”(욥, 욥42:5-6절),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베드로, 눅5:8절), “내가 그분을 볼 때에 죽은 자같이 그분의 발 앞에 쓰러지니 그분께서 오른손을 내 위에 얹으시며 내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요한, 계1:7절) 성경을 처음 접할 때 성경은 시간내서 읽으면 유익한 책 정도로 생각한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은 후 성경은 빡빡한 영의 양식으로 생각한다. 그 다음에는 호기심을 갖고 이 내용 저 내용을 탐독해 나가기 시작한다. 조금 더 성장하면서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이 나온다 (저의 경우임), “오직 은혜 안에서 자라고 우리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서 자라라” (벧후3:18절)에서와 같이 세상의 분주한 일들에 휩쓸리지 말고, 예수님을 아는 것에서 배우고 성장해 나가는 일에 더욱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