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나다 잊고 있었던 친구. 며칠 전 나는 삶이 곤고한 친구를 만났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역시나 그 친구는 소주도 1병을 먹었다. 내가 보기에 전혀 변함이 없는 일상의 모습이었다. 간단히 요즘의 근황을 물어보니 알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내가 알기로 먼저 다니던 직장이 여의치 않아서 수개월을 쉬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는 있었는데 다행이도 어딘가에 취직을 했다고 하는데 그것 역시 녹녹치 않은 상황인 것 같았다. 나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우리나이에는 일자리가 있어서 내가 근무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복 받은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이전의 생활이 얼마나 화려했고 얼마나 좋았었던가는 지금 중요하지 않다. 현 시간에 내가 무엇을 할 수가 있고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말이다. 잠깐 잊고 있는 사이. 그 친구가 식사가 끝나갈 즈음에 조용히 입을 연다. 아까 이야기 하려고 했는데 ‘나 얼마 전부터 성당을 다니고 있다.’라고 한다. 순간 내가 멍해진다.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이 친구는 그동안 수 없이 나와 시간을 같이 보냈고 내가 지금 교회에 다니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조금은 실망이다. 배신감도 들었다. 내가 이야기 한다. 친구야! 믿음생활을 하고자 하는 것에는 내가 참 잘했다고 말해 줄 수는 있으나 선택은 매우 잘못 한 것 같다. 성당에서 무엇을 가르쳐 주던? 성경은 읽어 보았냐? 등등 을 물어 보았으나 그저 성당을 다니니 마음이 편해지더란다. 기독교는 뭔가 세뇌를 당할 것 같아서 싫다고 한다. 친구는 종교인이 되었다. 내가 말했다. 친구야 너는 그냥 종교인이 된 것이야. 그리고 하나님이 혹 너에게 지혜를 주신다면 네가 가서 곧 배우게 될 천주교의 교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위에 교만히 올려놓은 거푸집인데 그것이 집인 줄 알고 거하게 하려 한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될 터인데 그 시간이 너무 안타까워’ 라고 했다. 친구가 이야기 한다. 너는 천주교에 대해서도 배웠냐고 물어본다. 네가 어떻게 아느냐고 한다. 종교에는 자유가 있지 않느냐? 고도 한다. 그래, 분명 종교에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가 있는 곳은 하나님의 품속인 것을 수많은 종교인들이 그 자유라는 잘못된 개념으로 자신을 가두려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구나. 세상 사람들은 실생활과 종교생활은 분리가 된 것으로 생각하는가 보다. 열심히 하던 대로 살다가 주일에 한번 아니면 어쩌다 한 번 교회, 성당, 절, 사원 뭐 이런 곳에 가서 나름 어떤 의식을 행하고 오면 그 것이 곳 믿음 생활인 줄로 아는 것 같다. 천주교(天主敎)라고 하고 믿는 것이 하느님이라던데 내가 생각하기에 이름부터가 문제가 있구먼.. 하늘의 주인?을 믿는 것인가? 아니면 주인이 하늘에 있다? 그래서 땅의 생활은 별개고 의식은 따로 행하는 것인가? 아뭏튼 천주교는 기독교와 완전히 다르니 혹여 착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어느 곳에든 계셔서 나와 함께도 계시지. 그래서 나는 늘 두렵기도 하고 또 행복하기도 해. 너는 그걸 아직은 모르리... 친구 눈에 비쳤던 내 모습. 친구가 나에게 말한다. 너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공부를 열심?히 하느냐고, (사실 난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잘 아는 것도 아닌데도), 혹시 그 길(목회)을 염두에 두고 쭉 갈려고 그러느냐고 한다. 그리고 친구는 교회에 다니면서 공부를 - 무엇을 공부 하는 지는 그들이 모르지만 - 열심히 한다는 것은 곧 목사나 전도사나 어떤 목적이 있어야만 하는 것으로 통념적으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 좋아하던 것들을 다 정리? 하고 교회에 다니는 내 모습이 그에겐 내가 목회에 뜻이 있어서 그런 것처럼 보여 졌던 것이다. 하긴 처음 교회를 다니면서 나도 잘 모를 때에 기성교회들의 문제에 대하여 그들과 공론할 때가 있었으니 그 친구가 그렇게 생각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싶다. 소위 교회에 미친 사람처럼 보여 졌는지도 모른다. 당연히 알면 미쳐야 하지만... 친구 눈에 비쳤던 다른 친구들의 모습인 기독교인. 그 친구가 말했다. 자기의 다른 친구들도 교회를 다니는 친구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할 짓 못할 짓 다하면서도 교회에 대한 일은 또 극성으로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올바른 이야기를 한다. 어디서 주워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기독교인들은 마치 예수님과 결혼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말한 취지는 기독교인들의 열심-가정을 내팽개치고 교회에만 적극적인 것들-을 비유한 것처럼 보여 지는데, 참으로 그 말은 옳도다! 나도 한 동안은 그런 사람들을 보아왔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나와 무엇이 다른가 하고 생각해본 때도 있었다. 대한민국엔 천만 명 정도의 기독교인이 있다는데 아직도 나에게 참기독교인 이라고 하면서 전도가 오지 않은 것을 보면 올바른 믿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 그리 많은 것 같지가 않다. 너무 비약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기독교인이라 하면 신앙이라는 틀을 메고 가는 종교인의 한 종류라고만 생각하는 부류가 대다수 이고 똑 같은 그렇고 그런 한통속의 사람들로 여기는 듯하다. 내가 생각해본 나의 잘못. 사람들의 일상이 모두 다르듯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동기와 시간과 장소가 다 다르다. 또 예수님을 알고 나서 소개하는 방법도 전부 다르다. 나도 처음엔 교회를 다니면 만사형통이 되는 줄로 알았다. 최소한 목사님의 말씀만 들으면 다 되는 줄로 알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다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은 깨닫고 있다. 내가 말씀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잘 준비 되어 있다면 말이다. 친구들을 만날 때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 하고 돌이켜보았다. 나도 교회를 다니면서 그동안 취했던 것들 즐겼던 것들을 나름 정리 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했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보인 내 모습은 교회를 나가려면 먼저 하던 짓? 을 하지 말아야 되는구나 하는 인식을 먼저 심어 줬었나 보다. 먼저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알아 가는 가운데 내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자연스럽게 변화가 되는 것인데 말이다. 내가 약속의 이유를 댈 때 나는 성경공부를 해야 되기 때문에 시간이 안 맞는다. 라고 했었는데 물론 나는 필요한 조치였지만 친구들은 나는 별종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야 라는 인식을 또한 심어 줬는가 보다. 이 또한 하나님을 알고 나면 더욱 가깝게 다가서려면 더욱 열심을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는데 말이다. 좋은 모양이라도 잘못 보일수가 있구나... 친구는 하던 짓을 계속하기를 바랬고, 나는 그것이 안타까웠지만. 나는 내게 기회가 많을 줄로 생각하고. 아주 잠시 기다렸는데, 친구는 위로 받기를 원했고, 나는 시간이 기다려줄 줄로 알았는데, 친구에게 나를 보여 주면 친구도 욕심으로 도전을 할 줄 알았는데, 나는 결국 헛것, 내 겉모습만 보이고 말았습니다. 내가 무어라고. 열심히 올바르게 하나님을 찾는 성도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을 나와 같은 별종으로만 생각케 했으니 오늘 또한 죄를 지었습니다. 친구는 내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다른 길로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 어렵지만 바른길로 들어서기를 고대하고 계시다는 것을 꼭 말해 주어야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