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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두막에서 있었던 일조회수 : 8486
    • 작성자 : 조양교
    • 작성일 : 2012년 7월 12일 11시 8분 3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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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때 방학이면 할아버지 할머니 댁으로 갔읍니다. 60년대 후반기였으므로 모든 것이 낙후된 환경이었구요, 도심에서 살다가 친할아버지 집에 간다고 하면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버선 발로 뛰어 나오실 정도로 반가이 맞아 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당시 앞서가는 농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시골 사람들이 호롱불을 사용하던 시절에 전기를 가장 먼저 끌어서 사용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천정에 사기로 된 애자를 감고 전기줄이 쳐있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젖소를 4-5마리정도 키우셨고, 과수원을 갖고 계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과수원을 날라 가듯이 뛰어갑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참외와 수박을 원껏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죠. 고모와 삼촌이 든든한 보디가드가 되었기에 무서울 것이 없었습니다. 과수원은 그야말로 땡볕이었습니다. 우마차길 옆으로는 아카시야 덤불이 우거져 있었지만 그늘로 쓰기에는 적당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과수원 한 복판에는 원두막이 있어서 그늘도 만들어 주고, 갑자기 소나기가 올 때면 비를 피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2층으로 된 원두막은 사방으로 뚫려 있고 그늘 창이 있어서 그야말로 놀이터로는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이 원두막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 하나 있습니다. 하루는 원두막위에서 놀고 있는데 고모가 식칼을 가지고 마루 틈 사이로 찔러대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나는 무서워 가지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밑에서 올라오는 칼을 피하려고 온 힘을 다하였습니다. 고모들은 나의 행동이 재미있었는지 계속해서 칼을 찔러 대었습니다. 칼이 위에서 올라 올 때 마다 펄적 펄적 뛰어 다녔고, 급기야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는데 그 칼에 발을 찔리고 만 것입니다. 지금까지 발목에 당시 칼에 찔린 흉터가 남아있는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마루 틈으로 칼을 찌른다고 한들 그 틈을 피해서 서있기만 하면 아무 염려가 없었을 텐데 괜히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칼에 찔리고 만 것이죠, 고모들도 칼에 찔리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그냥 장난삼아 한 것일 뿐인데 장손이 칼에 찔렸으니 크게 당황을 했을 것입니다. 당시 찔린 것만 기억이 날 뿐 다음 상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청 울었던 것 같고 이일로 고모들은 할아버지에게 혼 줄이 났을 것이 분명합니다. 다른 기억은 흐릿해도 당시 초등학교 1-2학년 때쯤 일어난 이 사건은 지금까지 상처와 함께 두고 두고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도 믿음의 자리에서 벗어 나도록 울부짖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는데(벧전5:8) 사실 믿음의 자리에 굳게 서 있으면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널빤지의 틈을 피해서 널빤지 위에만 그냥 있으면 되는 것이었죠,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마귀는 믿는 자들을 해할 권세가 없는 것인데 말입니다. 괜히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바람에 위험을 자초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위험했던 순간들을 돌이켜 보면 조급한 마음에 성급한 결정을 하거나 믿음의 자리에 이탈된 상태에서 많이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느니라.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5:7-8)

     장마의 소식도 있지만 더운 여름 날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심겨진 생명의 말씀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말씀과 가까이 하며, 주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시는 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좋은 글에서 발췌한 내용을 겸하여 올립니다.

     

     

    사람들은 저 마다 마음속에 벽이 있다 

    직언은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는 동시에 자신에게도 상처를 주는 양면의 칼날과도 같다.

    그래서 직언은 홀로 가시덤불을 헤치고 새로운 길을 여는 개척자로서의 당연한 착각하기 쉬운데 그래서는 안된다.

    이는 직언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다.

    사람을 대하면서 일일이 지적하고 성격상 결점을 바로 잡으려 하는 것은 애정과 관심의 표현이 아니라 상대에게 부담감만 안겨주는 것이다.

    당신은 직언을 하면서 그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열쇠가 아님을 깨달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저 마다 마음속에 벽이 있다. 그 벽안에 자존심을 숨기고 있는데 당신이 직언을 통해 그것을 깨뜨리려 한다면 어느 누가 좋아 하겠는가?

    말은 아낄 수 있을 때 최대한 아껴야 한다. 반드시 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원만하게 말하는 법을 배워라 이것도 기술이다.

    진정 변화를 시도하고 싶거든 변화로 인해 잠시 일어나는 문제들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제자리로 되돌려 놓을 자신이 있을 때 그렇게 하라.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 좋은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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