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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짐>중에서- 제럴드 싯처조회수 : 8727
    • 작성자 : 김경민
    • 작성일 : 2013년 8월 24일 23시 52분 42초
  • 다음은 제럴드 싯처 <사랑의 짐>중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을 몇 가지 요약 발췌한 글입니다. 우리 사랑교회 성도들과도 함께 깊이 생각하며 고민 해 볼 내용인 것 같아 올려봅니다.  

    교회가 변하려면 슬픔의 골짜기를 지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변화는 반드시 상실로 상실은 슬픔으로 슬픔은 고뇌로 고뇌는 불안으로

    불안은 마침내 적대감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슬픔을 인정해야합니다.

    슬픔을 이해하고 나란히 걷기로 작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변화를 요구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진리를 높이 받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거실에 자리 잡고 앉은 정착민이 아니라 쉬지 않고 움직이는 순례자들입니다.

    돌아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나눌 때마다 교회의 기둥과도 같은 교인들조차도

    두려움으로 반응하곤 했습니다. 어느 목사의 고백...

    <중략>  

    권면하기를 망설이는 여러 가지 이유

    1. 스스로 훈계할 자격이 없으며 그럴 만큼 훌륭한 인물이 아니라는 자의식의 문제.

    2.비슷한 약점을 가진 이들에게 안도감과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

    3.융통성.  

    인간은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상대에게 적응하고 거슬리는 행동을 참아주며

    설령 최악의 상태에 이른다 할지라도 그냥 받아 주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보통은 사랑하기에 참는 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권면의 대가가 너무 크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부자연스러운 관계가

    상한 감정 오해와 분노를 해결하기보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그저 잠자코 견디는 편을

    선택한다.

    무책임하고 무례하며 이기적인 남편을 마냥 받아주는 아내 .

    제대로 사역하지 않는 목회자를 끝까지 끼고 도는 교회.

    이웃의 불쾌한 행동을 묵과하고 한 술 떠서 얼렁뚱땅 웃어 넘기는 친구가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권면하기를 주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인간의 사악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적잖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이들 특히 불편한 관계에 있는 교인들의 약점을 찾아내서

    친구들과 쑥덕거리는 것을 즐긴다. 권면하기보다는 뒷말하기를 좋아하는 꼴이다.

    이른바 신앙이 좋다는 이들 일수록 경건한 언어로 험담하는데 능숙한 법인지라

    그리스도인 사회에서는 이런 풍조가 만연되어 있다.

    옮겨서는 안 될 말들을 잔뜩 늘어놓고 나서 "그 분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라고

    덧붙이는 식이다.

    권면은 잘못된 길에 들어섰지만 아직 그 결과가 나타나지 않은 초기에 바람직하다.

    다들 궁금해 하고 유쾌한 가십거리로 삼고 싶어 할 만큼 크고 흥미롭고 자극적인

    죄에 대해서는 훈계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교제하다 여성이 임신을 했는데 온 교인 앞에 끌어내어서

    간음죄를 고백하게 했다는 끔찍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죄를 지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망신을 주어서 얻을 게 무어란 말인가?

    권면하기에 적합한 시점은 여성이 임신하기전이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사태가 진전된

    뒤가 아니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렀다면 낄낄거리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가며 거기 앉아 있던

    교회식구 전체가 도리어 권면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폭로해야할 죄는 이제

    간음이 아니라 위선과 정죄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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