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창조론(간극이론)에 관하여
성경신자들 가운데도 간극이론 또는 재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화론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던 시기에 간극이론은 진화론자들에 맞서서 성경의 신빙성을 옹호하고 당시의 많은 신자들에게 보호장치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이 이론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생각되어 함께 나눕니다. 아래 글은 저의 개인적인 견해임을 밝힙니다. ***************************************************************************************** < 재창조론의 주요 주장 내용 > 재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창세기1장 1절과 2절 사이에 아담 이전의 다른 인류가 존재하였고, 그 세상이 노아홍수와는 다른 종류의 물 심판으로 멸망했다고 보고있다. 이 기간에 천사들의 창조와 사탄의 타락이 있었고, 매우 길고 긴 어쩌면 수십억 년의 기간이 존재했다고 보고 있는데, 그 주장의 근거 중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창1:1에서 창조된 땅이 창1:2에서 형태가 없어지고 비어지게 되었다는 점. (결국 창세기 1:3 빛의 창조 시점부터 첫째 날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둘째, 창1:28(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replenish).)에서 replenish의 의미를 ‘다시채우라’로 해석해야 한다. 즉 아담 이전에 살던 사람들이 다 없어졌기 때문에 다시 아담부터 시작하여 지구를 채우라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셋째, 벧후3:5~7에는‘그때 있던 세상의 멸망’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점. 넷째, 사14:20(네 백성), 21(그들) 등 사탄으로 인하여 망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
이 외에도 몇 가지 설명들이 있지만 위 내용들에서 파생되거나 이것들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여기서는 이것들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 재창조론에 대한 반론 > 1. 창1:2에 대하여 ① 땅이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다는 것의 성경적 의미 먼저 재창조론에서는 형태가 없어지고, 비어졌다고 보고 있으나, 성경은 (그냥 단순하게)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다'고만 기록되어 있으며, 정확하게 동일한 표현이 예레미야 4:23에 나온다. 예레미야 4장도 재창조 이전의 세상에 대하여 기술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예레미야 4장 3절과 16절은 이 내용이 예루살렘 거주민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9절에서 예레미야의 애가 끓는 이유도 ‘이전세상’의 멸망 때문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멸망 때문이다. 29절에서 이 멸망 때에 사람들이 수풀로 피해 달아나고 바위들로 기어오르는 장면을 보아도 이것은 재창조론에서 말하는 물의 넘침으로 인한 멸망 장면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형태가 없고 비어있었다’를 다음과 같이 볼 수 밖에 없다. (렘4:23) 형태가 없다. (☞ 땅의 생김새(모양)가 일정하지 않다.) (렘4:27~29) 비어 있다 (☞ 생명체를 기준으로 그 황폐한 상태) (창1:2) 땅은 물로 덮여 있어서, 그 생김새(모양)를 일정하게 갖추고 있지 않으며, 아직 살아있는 어떤 것도 없었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님.
② 하루의 구성에 대한 성경기록 첫째 날이 재창조론 주장과 같이 창세기 1:3(빛의 창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면, 첫째 날은 성경기록과 같은‘그 저녁과 아침’이 되지 못하고 ‘그 아침과 저녁’이 되어버린다. 1절과 2절이 첫째 날 창조에 포함되어야 어둠이 먼저 위치하고 빛이 창조됨으로써 '그 아침과 그 저녁'이 성립하는 것이다.
2. replenish에 대하여 20세기 초반 들어서면서 re를 '다시'나 '강조' 접두어로 보는 일부 사전도 있으나, 그 이전에는 re가 '다시'의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고, 특히 가장 권위있는 사전 중 하나인 Oxford English 사전은 replenish의 're'가 '다시'의 의미가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
3. 벧후 3:5~7에 대하여 벧후3:6에는‘그 때 있었던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며 ’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7절에는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13절에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어서, 이 대목만 보면 3종류의 세상으로 세팅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맥 전체를 보면 벧후 3장에서 다루는 '그 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해 진다.
① 이 내용을 기록한 이유와 베드로 사도가 말하고 있는 ‘그 때’의 의미 (벧후3:3,4) 먼저 이것을 알라. 곧 마지막 날들에 비웃는 자들이 와서 자기들의 정욕을 따라 걸으며 이르되, 그분께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모든 것이 창조의 시작 이후부터 있었던 것 같이 그대로 계속되느니라, 하리니 벧후3장에서 베드로 사도는‘조상들이 잠든 이래로’모든 것이 그대로라는 의견에 대한 반박을 하고 있다. 즉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아담 이후) 있었던 세상의 격변의 예를 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베드로 또는 마지막 때에 비웃는 자들이 말하는 조상들은 누구일까? 아담 이전의 인류가 있었더라도 그들은 현생인류의 조상들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물의 넘침으로 인한 세상의 멸망은 아담 이후에 즉 노아 때 일어난 홍수를 말한다. 벧후 3장에서의 '비웃는 자들'이 부정하고 싶은 것은 자기 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아무 상관도 없는 '이전 세상의 격변'이 아니다. 자기들이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영원히 격변 없이 그대로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며, 베드로 사도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세상의 '격변'으로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② ‘땅이 물 가운데서 나와 물 가운데 서 있는 것’의 의미 - 이 장면을 재 진술하는 다른 구절들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자. 이 내용과 동일하게 땅이 물에서부터 그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을 시편 104:6~9에서 기록하고 있다. 전 우주적 물이 아니라 지구를 감싸고 있는 바다를 의미한다.‘땅이 물에서 나왔다는 것’은 바다와 땅의 분리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시24:2)
③ ‘(벧후3:6) 물의 넘침(overflowed)으로 그때 있던 세상의 멸망(perished)’의 의미 - 여기서 멸망은 물의 넘침으로 인한 것이다. 미래에 있을 10~12절과 같은 원소들이 녹고 해체되는 소멸은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는 것은 창세기 7:23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면 위에 있던 모든 생명체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하늘의 날짐승에게만 해당된다. 따라서 창1장처럼 별들이나 바다생물들이나 식물들을 재창조할 이유가 없다. ④ 참고로 동일한 베드로사도가 기록한 벧전3:20에는 ‘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그들은 여덟 혼이라고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4. 이사야 14:20의‘네 땅, 네 백성’에 대하여 - 사탄으로 인하여 망한 사람들 : 사14:20(네 백성), 21(그들) ⇒ 시21:10 이사야 14:20의 ‘네 백성’은 재창조 이전의 사람들이 아니라 타락한 현생인류다. 그들(네 백성)에 대한 언급이 21~25까지 뒷부분에서도 계속되는데, 특히 25절에서는 앗시리아 사람의 징벌 때에 그들 가운데 일부가 구출된다는 점을 언급한 것을 보면 이들은 재창조론자들이 주장하는 완전히 멸망했다는 그 이전 인류가 아니다.
5. 기타 재창조론이 설명 할 수 없는 것들 ① 전 우주적, 원초적 빛 자체가 창세기 1:3에서 비로소 창조되었다. 따라서 창1:2 이전에 ‘이전 세상’이 있었다면 그것은 암흑 공간과 암흑 지구 외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원초적 빛도, 해도, 달도, 별들도 없었으며, 이것은 어떤 생물(동․식물)도 생존할 수 없는 상태다. 이 지적에 대하여 재창조론자들은 이 때는 계시록 21:23에 나오는 빛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빛이 되실 수 있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극도의 사악함 때문에 한 명도 남김없이 멸망당한 존재들이 하나님의 영광스런 빛 가운데 거했었다고 인정해야 하는데, 계21:27에 보면 더럽게 하는 것, 가증한 것, 거짓된 것은 이 빛(하나님 자신)가운데 들어올 수 없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을 굳이 물의 넘침으로 멸망시킬 필요가 없다. 바로 죽게 되기 때문이다.(출19:21) 상식적으로도 이런 극도로 사악한 사람들과 계21:23의 하나님의 본성을 입게 되어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처럼 천사와 같이 변화된 - 요일3:2,3) 영원에 들어간 하나님의 아들들(최종 구원된 사람들)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하나님의 영광이 지금 인류(구원의 기회를 부여받음)보다 더 극심하게 멸망당해야 하는 사악한 존재들과 뒤섞여 빛으로 기능하는 세계가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가?
② 성경은 한 번 땅의 기초가 놓인 후 땅의 기초 자체가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시104:5)
③ 창조와 안식을 기술한 구절과 맞지 않는다. ○ 창1:1 처음에 하나님께서‘하늘과 땅’(the heaven and the earth)을 창조하셨다. ○ 출20:11 엿새 동안에 주가‘하늘과 땅’(heaven and earth)과 바다와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였느니라. ** 출20:11에서 정관사 the가 heaven에도 earth가 빠져 있지만 벧후 3:7에서는 ‘지금의 하늘과 땅(the heavens and the earth)’을 지칭할 때 다시 정관사를 사용 하고 있기 때문에 정관사 유․무는 1611년 당시 혼용되었다고 봐야한다.
④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재 진술하는 많은 구절들에서 재창조는 한 번도 언급 되지 않았다. (시136편, 욥38장, 시24장, 사14장, 시104장)
⑤ 성경 전체의 계시 맥락에서도 재창조(지구의 reset)는 전혀 엉뚱한 내용이다. 구속사역을 거쳐 모든 존재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가족공동체(엡3:15, 계21:22)를 완성하는 것이 성경 속 하나님 계획의 개요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완전히 실패하여 갈아 업고 다시 reset하는 불완전한 분이 아니다. 처음부터 그분의 완전하신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한 단 하나의 완전한 과정이 있을 뿐이다. 인류의 타락까지 포함하여….
******************************************************************************************* 이 문제는 우리 신앙의 결정적인 논점이 되지는 못합니다. 즉 이것과 다른 내용을 믿는 형제들과도 믿음의 교제를 나누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는 모든 초자연적이고 우리 이해를 뛰어넘는 성경기록들에 대한 우리 신앙의 출발점이 되므로 기록된 대로 단순하게 믿는 명확한 입장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 내용이 저와는 다른 방향에서 재창조 교리를 바라보는 형제들에게도 진리 조명에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