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이한 사람도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학식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성경기록을 읽고 이해하고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을 모세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성경기록은 점진적으로 계시해주고 있으므로 구약의 내용을 가지고 신약교리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창세기 1장은 각론보다는 개론차원의 큰 틀의 구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큰 비율로 창조를 하셨지만 제 수준의 적은 비율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얼마 전 손녀 딸을 낳았습니다.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는 정신이 없었는데 손녀의 경우 새로운 것을 많이 느낍니다. 좀 여유있어 졌다고 할까요? 내가 이미 겪었었던 일이기에 몇 마디의 전해들은 소식으로도 딸아이 가정을 망원경으로 보는 것처럼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딸아이가 작년에 결혼을 했을 때 부부 중심 모드로 생활을 했습니다. 결혼식, 신혼여행, 보금자리, 주방기구, 침구류, 의복 등, 주말이면 어디로 갈까? 결혼 후 몇 달이 지난 후 아이의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당황하는 듯 했으나 배가 점점 불러 올수록 부부 모드에서 아이 모드로 점점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집안 구도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아이의 침대, 아이가 입을 옷, 아이에게 필요한 용품들, 심지어 유모차까지 장만을 했습니다. 앞으로 태어날 아기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형편껏 준비를 하는 모습이... 그렇게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기쁨과 기대와 설레임을 가지고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최상의 것들로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갈 때마다 새로운 것들로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아이를 낳았는데 그렇게 신기할 줄 몰랐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를 그렇게 사랑했었나 봅니다. 요즘에는 돈 주고 자랑해야 한다고 하네요^^ 아내도 손녀 딸 사진을 핸드폰에 담아놓고 눈에 진물이 날 정도로 쳐다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창조하시는데 6일이나 걸릴 필요가 없죠. 6일의 하루 하루를 기록하시면서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할 사람이 하나님의 심중에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완벽한 환경,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신격을 사람을 통해서 드러내시기를 계획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부모가 장차 태어날 아이를 위해 준비하는 마음처럼 하나님의 모든 관심과 초점은 사람에게 향해 있음이 분명합니다. 마땅히 창조기사를 읽는 사람의 관심과 초점은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 합당하고, 그 일을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합당한 접근일 것입니다. 진화론이 창조주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믿음체계인 것처럼, 간극이론을 주장하는 것도 창조주 하나님을 약화시키는 믿음체계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관점, 다른 믿음체계가 분명합니다. 자신의 믿음을 강요하거나 설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불필요한 반론으로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정적인 말들은 SNS를 통해 빠르게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인격체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지적인 영역만 과도하게 발달된 기형의 모습이 아닌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을 바르게 사랑하며, 하나님을 바르게 순종하는 전인격적인 균형잡힌 삶입니다. 힘써야 할 영역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케 하는 어떤 자들과 같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가 한 말로 인해 하나님앞에서 회계보고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내 생각, 내 의견, 내 주장을 드러내기 보다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길인가?를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성경 단어 하나 하나를 세밀하게 모르지만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이 방향으로 함께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요한삼서에 기록된 것처럼 진리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데메드리오는 모든 사람에게서와 진리 그 자체에게서 좋은 평판을 받았고 참으로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희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 아느니라.” (요삼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