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있을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그것은 잠시 나타났다가 그 뒤에 사라져 버리는 수증기니라. 그런 까닭에 너희가 마땅히 말하기를, 주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며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하여야 하나 이제 너희가 스스로 자랑하는 것을 기뻐하나니 그러한 기쁨은 다 악한 것이니라.(약 4:14-16)"
야고보는 분명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자부하는 신자들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그들에게 헛된 안정감을 심어주었습니다.
인간은 한계와 고생과 심지어 죽음을 만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내일 일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지식은 전부 조건적입니다. 우리의 모든 계획에는 '주의 뜻이면'이라는 말이 붙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해야 할 일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하나님의 미래적 뜻보다 현재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제넘게 미래를 속단하기보다는 현재 하나님의 뜻에 충실해야 합니다.
산상수훈에서 우리 예수님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오늘 일에 힘쓰라고 권하십니다. 그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내일을 책임지시기에 우리는 오늘 일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이 자기 것들을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악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34)"
여기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단순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현재의 상황이나 미래의 문제에 대해 불신자처럼 걱정하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대신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이 구절에는 1장에서 살펴본 전통적 접근으로 우리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법에 대한 얘기가 전혀 없습니다. 대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선순위를 바로 하여 첫째 것을 첫째에 놓을 것을 요구하십니다.
10가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100가지 취할 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디로 가서 무슨 일을 할지 그 선택과정을 하나님이 정확히 일러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요구는 단순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이 깨끗하고 동기가 순수하며 기본방향이 옳은지 그것만 확인하면 됩니다. 여러 바람직한 대안들 중 선한 양심으로 아무 길을 선택한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 뜻 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쩌다 한번씩 내려야 하는 큰 결정들이 아니라 날마다 행해야 하는 모든 작은 일들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기 원하십니다. 작은 책임을 감당함으로써 우리는 이후에 큰 책임을 맡을 수 있는 자로 준비됩니다. 작은 일이 큰 일의 길을 닦습니다. 그다지 중요해보이지 않는 일에 충실할 때, 우리는 아주 중요한 직무에 신실할 수 있게 됩니다.
"가장 적은 것에 신실한 자는 또한 많은 것에 신실하고 가장 적은 것에 불의한 자는 또한 많은 것에 불의하니라.(눅 16:10)"
"하나님의 뜻" 제럴드 L. 싯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