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 즉 성경을 읽다보면, 대비되는 개념의 두 개 낱말이 떠오르면서 씁쓰레한 기분에 젖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끔 그런 것이 아니라, 안 그런 날이 없을 정도랍니다. 두 개 단어가 뭐냐하면...'말씀'과 '말장난'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그 두 개 낱말들이 함께 떠오르는 많은 경우들 가운데 하나 예를 들어볼까 합니다.
누가복음 7:11~17 에는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성에서 죽은 청년 부활시키신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리하자면...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포함한 허다한 무리와 함께 나인이라는 성의 성문에 이르셨을 때, 사람들이 한 죽은 자의 관을 메고 나오는데, 죽은 자는 과부 여인의 독자라. 예수님께서는 과부 여인을 불쌍히 여기시어 '울지 말라' 하시고 관에 손을 대시면서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청년이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님께서 그를 과부 여인에게 넘겨주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 1)
다른 기록입니다만...독자를 잃어버리고 석가모니 부처(기원정사에서 수행 중이었음)를 찾아가 아들을 살려달라고 눈물로써 간청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고따미...였습니다. 석가모니는 아들 살려낼 약을 줄 테니 마을에 가서 '사람 죽은 일 없는 집을 찾아가서 겨자 한 줌 얻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따미 여인은 아들 살리고 싶은 소원 하나로 온 마을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그런 집이 있을 리가 없죠. 당연히 빈손으로 돌아갔습니다. 석가모니는 말했습니다. '생명이란 모두 그런 거다, 욕망을 다 채우기도 전에 죽음이 쓸고가는 것이다' 라는 내용의 말을 합니다. 그 여인, 고따미는...크게 깨달아 비구니(여승)의 길로 들어갔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 2)
이 글 읽으시는 우리 형제 자매님들께서는 위의 두 개 기록에 접하여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왜 이런 질문을 드리느냐 하면...세상 2 에서 대략 인생 전부를 보낸 다음 세상 1 로 옮겨 사는 사람(최 아무개)과, 세상 1 에서만 사셨던 분들과는 느낌의 정도가...다를 건 확실한데, 어느 정도로 다를까...라는 궁금증이 일어서입니다. ^^
위 나인 성의 경우뿐 아니라, 나사로의 부활 그리고 회당장 딸의 부활에 관한 기록들을 접하면서 저는 말씀과 말장난...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었는지 모른답니다. '말씀'과 '말장난'이 각각 어느 쪽 세상을 가리키는지는 충분히 짐작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사실은 말입니다...몇 번인가는 '그래도 그렇지, 오랜 세월 몸담고 살았던 세상의 거룩한(?^^) 기록을 말장난으로 폄훼하는 건 인간적으로 너무한 것 아닌가...?'라는 반문을 스스로에게 하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답은 명확하더군요. 그건 분명히 말장난...!..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고따미 여인을 생각하면, 이런 답답한 생각이 듭니다. 그 정도를 갖고서 깨닫고 자시고(^^) 할 것 같으면...왜...?...도대체 왜...?!...창조주가 틀림없이 계실 것이다...어떤 위대한 존재일까...?...라는 의문을 못 갖느냐라는 것입니다.
더욱 답답한 것은 말입니다...내가 우주 만물을 창조했다. 세상은 그렇게 그렇게 변해가서 그렇게 끝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정녕 거룩하신 분이 계시거늘, 그 말씀의 기록이 온 세상 말로 번역까지 되어 천지삐까리(^^)로 널려 있음에도 도무지...찾아볼 생각을 왜...?...도대체 왜...?!...못 하냐...안 하냐, 이 말입니다.
지금 누구 얘길 하는지 모르겠군요. ^^ 지난 삶이 부끄러워서 이쯤에서 그만하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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