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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폴 워셔, C.S. Lewis, 신본주의 등에 관련한 질문이 있습니다.조회수 : 9132
    • 작성자 : 문석휘
    • 작성일 : 2012년 5월 19일 20시 35분 33초
  • 1. 폴 워셔란 유명한 목사가 있습니다. 이 곳을 찾는 여러분도 이곳 저곳에서 이 분의 설교 영상 등을 보셨을 것입니다.
    Illbehonest.com이란 사이트에도 영상 등이 잘 편집되서 올라와 있죠.
    확실히 제 마음과 혼을 가차없이 찌르는 설교가 많습니다. 함부로 '은혜'가 가득한 설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하여간 볼 때마다 나 자신을 점검하게 되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물론 폴 워셔 목사도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 것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http://www.samil.org/zbxe/londonhorace_06/5309 에 적힌 글이 있습니다.
     
     인용한 글의 요지를 제 나름대로 추려보자면,
     
    1) '영접 기도' 한 번 했다고 하여 구원을 얻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것은 되려 거짓 복음이다 : 이에 동의합니다.
    2) 당신의 인생이 변화되기 시작하고 삶의 스타일이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에 맞추어져 있을 때에 비로서 당신은 자신이 구원받았음을 아는 것입니다 : 역시 동의합니다.
     
     (저번에도 비슷한 글을 킵바이블에 쓴 것 같긴 하지만) 궁금한 것은 "행함이 없음으로 증명된 그들의 믿음의 부족"이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즉, 진정한 회개는 단지 나의 죄를 자복하는 것만이 아니라 (여전히 죄성에 젖어 있기에 비록 완벽할 수는 없을지라도) 거룩함에 다가서기 위한 행위가 함께 수반되어야만 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이것도 결국은 행위와 믿음의 결합적 구원이라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2. C.S. Lewis
     
     Mere Christianity 등을 비롯해서 수많은 기독교 '변증서'를 써낸 사람으로 유명하죠 . 제 친구도 저에게 이 책을 권했고 저 또한 읽어보았습니다. 확실히 정말 깔끔하고 읽기 좋다는 생각을 볼 때마다 합니다.
     다만 궁금한 것이,
     
     1) 책에서 '여타의 종교도 나름대로 어떠한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서 노력한다' 라는 식으로 서술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타의 종교도 배울 점이 있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론적으로는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이러한 서술이 종교 통합 내지 종교 다원주의를 이미 염두에 두고서 발판으로 삼기 위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최소한 그러한 작업의 논거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은 알겠습니다만...
     
     2) 절대 금주(teetotalism)를 요구하는 것은 이슬람이지 기독교가 아니라는 서술이 있습니다.
    이어서 "특정 부류의 악인들에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자기들이 포기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다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기독교적인 방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특별한 이유로 어떤 것을 포기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 자체를 악하다고 말하는 순간, 혹은 그런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는 순간, 그는 잘못된 길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자체에 대한 의견들은 어떠신지요? 저도 원론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만, 분명한 정죄와 판단이 필요할 것임에도 언제, 어디서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해력이 미숙한 상태입니다.
     
    3. 이른바 '신본주의'에 관하여
     위에서 인용한 폴 워셔의 설교에서도 드러나고 (우리는 하나님이 불쾌해하는 것을 너무나 사랑한다), 여타 기독교 방송 등의 내용(일례로 CTS에 출연한 사람의 "주일에는 경건하게 지내기 위해 이메일이나 인터넷 뉴스도 확인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발언 등)에서도 이른바 인본주의를 지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자는 신본주의적 자세가 깔려있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1) 그렇다면, 이른바 제사장과 왕이 중심이 된 것과 같은 고대 국가의 신정 형태로의 회귀를 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요? 여러 글을 보다보면 이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 목회자 등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2) 인본주의를 경계하고 부정해야 함이 구원과 성화에 관련한 영역에서는 당연히 인정될 수 있으나, 이른바 '학문'의 영역에서는 그것이 힘든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16세기 르네상스 운동의 모토가 인본주의이고 지금의 세계를 이룬 학문이 모두 이와 같은 인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그러한 인본주의를 지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골로새서 2:20
    그러므로 너희가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로부터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늘 어찌하여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이 규례들에 복종하느냐?
     

     
    여러 부분에 대한 생각이 아직도 정리되어 있지 않아서 글이 좀 어지러울 수 있습니다.
    읽는 데 불편함이 없으셨기를 바랍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cf. 2-2)는 절대 제가 과음해서 난동을 부리려는 걸 합리화하기 위해 질문하는 것이 아님을 유념해주셨으면 합니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개역한글에서는 골 2:20의 '유치한 원리'를 '초등학문'으로 번역했기에 아마 3-2)와 같은 의문이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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