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큰 목표가 없습니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되면서 야망과 목표가 점점 없어지게 됨을 느낍니다. 교회를 하면서도 같은 마음입니다. 성도가 늘어도, 안 늘어도 감사합니다. 내 한계 내에서 주님께서 하실 일을 하시리라 믿고 감사할 뿐입니다. 요즘은 오히려 성도들이 느는 것으로 인해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양식과 보살핌을 제대로 주지 못한다면 느는 것이 오히려 화가 될 것 같은 생각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인도에 따라 인생 여정을 반듯하게 마치고 주님께 간다는 것 외에는 다른 목표가 없습니다. 다만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점점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합니다. 점점 더 마음에 다가오는 것은 변화가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내 자신과 내 주변의 사람들이 볼 때에 변화가 생겨야 합니다. 하늘에서 오는 변화,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변화 말입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슥4:6)."
오늘 아침에 읽게 된 송길원 교수(목사)의 글입니다. 무언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이라 올립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변화를 추구합시다. 주님께서 독자들에게 은혜와 진리를 충만히 채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송길원 교수의 아름다운 기도
나와 아내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는 오른손잡인데 아내는 왼손잡이다. 그래서 습관을 따라 국그릇을 왼쪽에다 잘 갖다 놓는다. 별거 아닐 것 같은 그 차이가 신경을 건드린다. 거기다 나는 종달새형이다. 새벽시간에 일어나 설친다.
늦잠을 자면 무조건 게으르다고 여긴다. 그런데 내 아내는 올빼미형이다. 밤새 부엉부엉 하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든다. 도대체 맞는 구석이 없다.
나는 물 한 컵을 마셔도 마신 컵은 즉시 씻어 둔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고, 언제 해도 할 일이며 제가 다시 손을 댈지 모를 일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내 아내는 그게 안 된다.
찬장에서 꺼내 쓸 그릇이 없을 때까지 꺼내 쓰다가 한꺼번에 씻고 몸살이 난다. 나는 미리 준비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나와 달리
아내는 떠나야 할 시간에 화장한다고 정신이 없다. 다가가서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화장품 뚜껑이라는 뚜껑은 다 열어 놓고 있다.
나는 그게 안 참아진다. 나도 모르게 버럭 화를 낸다. “아니, 이렇게 두고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면 향 다 날아가고. 뭐 땜에 비싼 돈주고 화장품을 사. 차라리 맹물을 찍어 바르지. 확 부어버려. 맹물 부어줄까 그래.” 거기다 나는 약속 시간에 늦은 적이 거의 없다.
나중에는 견디다 못해 성경책까지 들이밀었다. “여보, 예수님이 부활만 하시면 됐지, 뭐 때문에 그 바쁜 와중에
세마포와 수건을 개켜 놓고 나오셨겠어? 당신같이 정리정돈 못하는 사람에게 정리정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고 싶으셨던 거야. 그게 부활의 첫 메시지야. 당신 부활 믿어. 부활 믿냐고?” 그렇게 아내를 다그치고 몰아세울 때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
“야, 이 자식아, 잘하는 네가 해라. 이놈아,
안 되니까 붙여 놓은 것 아니냐.” 너무 큰 충격이었다. 생각의 전환, 그렇게 나 자신을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게 있다. 나의 은사는 무얼까?
하지만 뜻밖에도 너무 간단하게 은사(gift)를 알 수 있다. 내 속에서 생겨나는 불평과 불만 바로 그것이 자신의 은사인 것이다. 일테면 내 아내는 물건이 제자리에 놓여 있지 않고
종이 나부랭이가 나뒹구는데도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불편한게 없다. 오히려 밟고 돌아다닌다.
하지만 나는 금방 불편해진다. 화가 치민다. 이 말은 내가 아내보다 정리정돈에 탁월한 은사가 있다는 증거다. 하나님은 이 은사를 주신 목적이 상대방의 마음을 박박 긁어 놓고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무기로 사용하라는데 있지 않다. 은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섬기라고 주신 선물이다.
바로 그 때 내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 아내한테는 뚜껑 여는 은사가 있고
나에게는 뚜껑 닫는 은사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아내를 대하는 제 태도가 바뀌었다. 아내가 화장한다고 앉아 있으면 내가 다가가 물었다.
"여보, 이거 다 썼어? 그러면 뚜껑 닫아도 되지. 이거는? 그래, 그럼 이것도 닫는다." 이제는 내가 뚜껑을 다 닫아 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렇게 야단을 칠 때는 전혀 꿈쩍도 않던 아내가
서서히 변해 가는 것이다. 잘 닫는 정도가 아니라 얼마나 세게 잠갔던지 이제는 날 더러 뚜껑 좀 열어달라고 한다. 아내의 변화가 아닌 나의 변화,
그렇게 철들어진 내가 좋아하는 기도가 있다. “제가 젊었을 때는 하나님에게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중년이 되었을 때 인생이 얼마나 덧없이 흘러가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함께 평안히 살도록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늙어 여생을 돌아보게 되었을 때 저는 저의 우둔함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드리는 기도는 저를 변화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처음부터 이런 기도를 드렸더라면 제 인생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