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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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리를 전파하기 위한 언어조회수 : 11727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9년 5월 1일 16시 24분 4초
  • 요즘 저는 우리말과 글을 바르게 읽고 바르게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말이 복음 선포에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도, 바울도 모두 말을 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이 감화 감동을 받으려면 말에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므로 당연히 한국 말을 잘해야 합니다. 요즘 영어를 배우러 미국 사람이 있는 교회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영어 중요하지요. 그런데 영어에 앞서 우리말을 잘 알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말로 시원스럽게 전달되는 설교에는 관심이 없고 아이들 영어를 위해 교회를 선택하는 사람들을 보면 심성이 어찌 그리 얄팍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혹시 교회를 마케팅 수단으로 혹은 자기 성장 장소로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교회는 영적 성장을 위한 장소입니다.
     
    설교자는 특히 말에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2000년 교회 역사를 통해 가장 훌흉한 설교자로 꼽히는 스펄전은 자기 말에 능통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고 말을 잘하는 것이 목사의 가장 큰 덕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설교 시간에 성도들이 졸면 그 책임은 성도들에게 있지 않고 목사에게 있습니다. 얼마나 냉담하게 설교를 하면 그 중요한 시간에 딴 생각하고 졸겠습니까? 우리 모두 말 연습에 힘을 씁시다.
     
    다음은 저와 절친한 한 목사님이 보내 준 글입니다(일단 익명으로 올림). 이분도 한때 교리 교리 외치고 다녔지만 이제 목회의 본질을 깨달으면서 좋은 설교자가 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목사의 설교와 글이 변해야 교회가 삽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노력하는 형제들에게 하늘의 능력을 부어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진리를 전파하기 위한 언어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파하기 위한 언어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하는 자의 언어가 아니라, 듣는 자의 언어로 전파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십니다.
    “…보라, 말하는 이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냐? 그런데 우리 각 사람이 우리가 태어난 곳의 우리 언어로 듣게 됨이 어찌된 일이냐?” [사도행전 2:7-8]
    “…그들이 우리 언어들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말함을 우리가 듣는도다.” [사도행전 2:11].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 날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이 말씀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꾼들이 반드시 실행해야 할 좋은 본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1장을 읽으면, 예루살렘에 모인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잡아 죽이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로마 군대 대장의 개입으로 목숨을 건진 후에, 바울 사도가 성난 군중 앞에서 히브리말로 설교하자, 그들은 한 동안 바울의 설교에 경청했습니다. “그가 히브리말로 자기들에게 말하는 것을 듣고 그들이 더욱 잠잠 하거늘…” [행 22:2]. 이것이 바로 듣는 자의 언어로 진리를 전파할 때 나타나는 능력입니다.
    한국에 온지 8개월째를 접어드는 앳된 몰몬교 선교사와 짧은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혼들을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기 위한 그의 ‘열정’과 ‘헌신’ 앞에 내 자신이 오히려 분노와 함께 비장함을 느꼈습니다. 그의 열정은 서투른 한국말로 이야기하기를 힘들어하지 않는 모습에 흠뻑 묻어났습니다. 지옥의 자식들도 자신의 확신을 전파하기 위해서 전적으로 ‘헌신’한다는 사실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지옥의 자식들만 그렇게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순수한 교회의 역사를 추적하다 보면, 주께서 맡기신 말씀을 주께서 보여주신 방법대로 전파하고자 전 생애를 걸었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생애를 읽어보면 주님을 위한 삶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임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일꾼들이 갖추어야 할 열정과 헌신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도니람 저드슨 :
    그는 버마에서 사역한 선교사로서 영어-버마어 사전 편찬에 힘썼고, 버마어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버마에서 죽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 :
    그는 중국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중국말을 하며, 중국옷을 입고서 중국식으로 살았습니다. 심지어 머리를 밀고 ‘변발’까지 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죽었습니다.
    호레이스 언더우드 :
    그는 북장로교 선교사로 1885년 조선에 왔습니다. 그는 영한사전, 한영사전과 영어 문법책을 출판했으며, 성경을 번역하고 보급했습니다. 우리를 이 땅에 왔던 초기 장로교 선교사들을 향해서 병원 짓고, 학교만 세웠다고 비방하지만 그들을 능가하는 열정과 헌신은 보지 못했습니다.
    윌리암 케리 :
    그는 인도에서 사역한 인도선교의 아버지로서 수많은 인도 방언과 중국어, 버마어, 말레이어 등 44개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했고, 지역 언어 문법책과 사전 편찬 작업에 수고 했습니다.
    윌리암 카메룬 타운젠 :
    “가장 훌륭한 선교사는 선교지 현지인의 언어로 쓰인 성경이다. 성경은 선교사들처럼 안식년도 필요 없고 외국인이라고 배척 받는 일도 없다.” 이와 같은 명언을 남긴 그는 위클리프 성경 번역 선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중미 과테말라 지역의 한 인디언의 한 마디가 그의 생애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당신네 신이 그렇게 똑똑하다면서 우리말도 모릅니까?”
    많은 신자들이 존경하는 충성스러운 선교사들은 한결같이 선교 현장의 말과 글에 관심을 가졌고, 선교 현장의 말과 글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외국인이 현지 언어로 성경을 번역한 것과 함께 현지 언어 사전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숙연하게 합니다.
    말과 글에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혼이 담겨 있습니다. 충성스러운 주님의 일꾼들은 선교 현장에 있는 영혼들을 향한 자신들의 사랑을 그들이 사용하는 말과 글에 대한 관심으로 표현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한 언어는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자기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헌신한 사람들을 잘 새겨두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십니다.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며” [고린도전서 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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