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부모님들이 '공부해라, 공부해라!'해서 공부에 노이로제가 걸린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은 크리스천들에게 공부하라고 말합니다. '공부하다'는 영어로 'study'인데 킹제임스 성경에는 이 단어가 세 번 나옵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구절은 딤후2:15입니다.
Study to shew thyself approved unto God, a workman that needeth not to be ashamed, rightly dividing the word of truth(2 Tim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우리말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연구하다'로 번역했는데 원래 이 말은 '부지런히, 열심히 하라'는 뜻입니다. 크리스천들은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게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고 성경의 권고입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도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여 누구든지 일하려 하지 아니하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였노라. 우리가 들으니 너희 가운데 질서 없이 걸으며 전혀 일하지 아니하고 참견하기만 좋아하는 자들이 더러 있다 하는도다. 이제 그러한 자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우리가 명령하며 권면하노니 그들은 조용히 일하고 자기 빵을 먹을지니라(살후3:10-12).
우리의 직장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열심히 일합시다. 이것은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입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네 손이 해야 할 일을 얻는 대로 네 힘을 다해 그것을 하라. 네가 가게 될 무덤 속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느니라(전9:10).
사람은 한 번 살다가 주님이 부르시면 가게 됩니다. 그러니 혼신의 힘을 다해 바른 것을 추구하고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다가 부르시면 가야겠다고 굳게 작정하십시오. 또 자녀들에게도 철저한 정신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육신적인 모습 뿐만 아니라 생각과 속사람도 닮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려서부터 공부하고 생각하고 바르게 사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김우중씨의 책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공부에 대한 좋은 글이 있어서 한 부분을 인용했습니다. 부디 주님과 그분의 일을 위해 열심히 삽시다.
취미가 무엇입니까?
나는 한 해에 200일이 넘는 날을 해외에서 보낸다.
또 국내에서의 잦은 지방 출장까지 계산하면 집에서 지내는 늘은 더욱 줄어든다. 그러다보니 내 생일은 물론 아내나 아이들의 생일까지도 깜박 잊고 넘어가기 일쑤다. 나는 누구보다도 바쁘게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처럼 나를 바쁘게 살도록 만드는 일감들을 앞에 놓고 오히려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더러 이런 나를 가리켜 일에 미쳤다고 말한다.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아직까지 휴일을 하루도 가져 본 적이 없다. 가족과 함께 해수욕장을 가 본 기억도 없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후회한 적은 없다.
한 가지 일에 흠뻑 빠지지 않고 성공한 사람을 나는 한 사람도 알지 못한다. 한 가지 일에 미칠 정도로 몰두하고서 실패한 사람을 나는 또한 한 사람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김우중처럼 그렇게 일만 붙잡고 있으면 세상사는 재미가 있겠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적당히 놀아 가면서 살아야지 그렇게 일의 노예가 돼 버리고 나면 무슨 낙이 있겠느냐고 딱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참으로 일하는 즐거움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일에 몰두한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사람은, 특히 젊은이는 일에 몰두해 있을 때의 모습이 가장 보기 좋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소리이다. 어떤 일을 이루었을 때 가슴을 뿌듯하게 채워 오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충만한 기쁨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그런데 왜 일하는 것이 짜증스럽고 지겹고 귀찮을까? 최근에 한 연구팀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요즘 우리나라의 고교생들은 일을 매우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을 ‘아니꼽다’, ‘스트레스’, ‘지겹다’, ‘억압감을 느낀다.' 와 같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23.5퍼센트로, 일을 긍정적으로 보는 11.4퍼센트에 비해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걸까?
그것은 일을 그저 생계의 수단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는 오직 먹고 살기 위해서만 일터에 나가는 사람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위장 속에 집어넣을 먹이를 위해서 일한다는 것은 얼마나 비참한 노릇인가? 더구나 큰 꿈과 야망에 가슴이 불같이 뜨거워야 할 젊은이가 그렇듯 안일한 정신 상태로 살고 있다면 정말 불행한 일이다. 물론 ‘일’에 그와 같은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긴 하지만 가지의 노동, 자기의 수고가 오로지 돈으로 환산될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모독하는 것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고귀한 가치가 ‘일’ 에 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과 보람을 느낄 때 일은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일이 즐거워질 때 자부심과 보람은 더욱 뿌듯하게 가슴을 채운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학생은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공부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몰두해야 한다. 책상 앞에 앉아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책을 읽는 학생의 모습은 보기가 좋다. 공부에 전념하고 있을 때 그 학생의 모습에선 빛이 난다. 무엇엔가 몰두해 있는 사람은 그처럼 아름다운 법이다.
그런데 억지로 마지못해 공부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입에 풀칠을 하려고 내키지 않는 일터에 나온 사람만큼이나 추하고 안타깝고 비참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하면서 일하는 즐거움을 느껴야 하듯이 학생도 공부하는 즐거움을 스스로 발견해 내야 한다. 남이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보라. 남의 일을 떠맡은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일이라고 생각해 보라. 그러면 수업에 임하는 자세부터가 달라질 것이다. 공부가 재미있게 여겨질 것이다.
돈 때문에 일하거나 석차 때문에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더 나아가 내가 속한 공동체의 복지를 위해 일하고 공부하는 것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어 보라. 어떻게 일이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공부가 하기 싫을 수 있겠는가?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난감해진다. 사실 취미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내게는 없다. 더구나 취미라고 하는 것이 그저 남은 시간을 때우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여길 때는 더욱 그렇다. 바둑을 조금 두지만 즐기는 편은 아니니, 바둑이 취미라고 하면 정말로 바둑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것 같아 그렇게 말할 수가 없다. 그 흔한 골프 한 번 쳐보질 않았다. 다른 운동도 특별히 하는 것이 없다. 한가하게 연극이나 음악회 같은 데를 찾을 여유는 더욱 없다.
만일에 취미라고 하는 것을, 한 사람이 외부의 압력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그러니까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서 기꺼이 행하는 어떤 행위라고 정의한다면, 어쩔 수 없이 나의 취미는 ‘일하는 것’ 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나는 한 번도 일을 억지로 해 본 적이 없으며 누가 시켜서 한 적도 없고 일 속에서 기쁨과 만족을 누리고 있으니 취미가 아니고 무엇인가?
일이나 공부를 과업으로 여기는 데서 괴로움이 싹트는 것 같다. 그것을 취미로 삼으면 취미이기 때문에 재미가 있을 것이다. 재미가 있으니 열심히 하게 되고 열심히 하게 되면 저절로 능률이 오른다. 능률이 오르면 결과가 좋아지는 것인 정해진 이치이다. 그렇게 되면 무엇인가를 이룬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으로 더 없이 행복해질 것이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기쁨 가운데 성취감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나는 달리 알지 못한다.
취미처럼 자발적으로, 기쁨을 가지고 일한다면 사업을 하는 사람은 작은 회사를 점점 키울 수 있을 것이고 시설을 하나 둘씩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성적이 부쩍부쩍 올라서 그 대가로 상을 받게 될 것이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거든 한 번 시도해 보기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한 가지 일에 미칠 정도로 몰두하지 않고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렵다. 한 가지 일에 미칠 정도로 몰두하고서 실패하기란 그만큼 어려운 법이다.
사업을 시작하기 이전 7년 동안 나는 한성 실업이라는 먼 친척 아저씨네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 물론 친척이라지만 나는 월급쟁이였다. 그러나 나는 마치 주인처럼 내 할 일을 내가 알아서 처리했으며, 누군가 내게 명하거나 시키기 전에 일거리를 찾아다니며 했다. 휴일은커녕 늦잠도 자지 못했다. 성취하고 난 후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뿌듯한 행복감 때문에 나는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한다.
이런 내가 불행한가? 골프를 좀 못 쳐서? 신나는 영화 한두 편을 못 봐서? 그 재미 못지않게 해외에서 만만치 않은 인물들과 협상 테이블에 앉아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큰 주문을 따 냈을 때 느끼게 되는 재미도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일을 가지고 접근할 때는 마음이 설레고, 마치 중요한 시합에 임하는 선수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도 한다. 그 시합이 어렵고 대규모일수록 내 주의력은 집중되며 흥미로움도 배가되는 것이다. 상대방의 숨겨진 카드를 읽어 내고, 내 뜻대로 협상을 성공으로 이끌었을 때의 승리감, 일을 원만히 해결하여 서로가 만족스런 얼굴로 악수할 때의 그 신선한 기쁨은 내게 솟구치는 활력과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다.
올해도 나는 가족과 함께 집에서 생일을 보내겠다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약속할 수가 없다. 나는 그 점이 늘 미안하고 이런 남편과 아버지를 이해해 주는 식구들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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