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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인도조회수 : 11345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년 5월 15일 13시 19분 28초
  •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가?
     
    오 내가 주의 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그 법이 종일토록 나의 묵상이 되나이다. 주의 명령들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주께서 그것들을 통해 나를 내 원수들보다 지혜롭게 하셨나이다. 주의 증언들이 나의 묵상이 되므로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내게 더 많은 명철이 있으며 내가 주의 훈계들을 지키므로 노인들보다 더 잘 깨닫나이다.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내 발을 삼가 모든 악한 길에서 떠나게 하였사오며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판단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말씀들이 내 입맛에 어찌 그리 단지요! 참으로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주의 훈계들을 통해 내가 명철을 얻으므로 모든 거짓된 길을 미워하나이다.(시편119:97-104)

    그리스도인들에게 쓸데없는 스트레스와 혼란을 가져다주는 많은 문제들 중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관련된 문제는 아마도 최고로 높은 순위를 자랑할 것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지도하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고…의의 행로들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시23편). 그렇다.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도를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인도하신단 말인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신다. “…내가 아침의 날개들을 취하여 바다 맨 끝 지역들에 가서 거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139:9-10). 하지만 이 말 또한 그 의미를 알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로그인’만 하면 하늘에서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를 받을 수 있는 대화방을 개설해 놓으셨단 말인가? 하나님은 인류 역사에서 수백 수천만 명의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의사소통하시면서 그들 인생의 모든 우여곡절에 대한 자신의 뜻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신단 말인가? 하나님으로부터 정보를 얻기 위해서 우리가 배워야만 하는 특정한 단계들이 있단 말인가? 만약에 그러한 단계들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는 공식은 무엇인가? 도대체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이 주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받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롬8:14). 다시 말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지도와 인도를 받는 사람들만이 스스로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니 이 문제가 어찌 스트레스를 주지 않겠는가? 가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우리가 하고 있다고 확신하기 원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우리가 입는 옷, 우리가 가지는 직업, 우리가 결혼하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교회에서 내가 하는 역할이나 내 자녀를 특목고에 보내는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질문들 앞에서 다소 위축된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해 준다.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싶은 그리스도인들의 열망은 좋은 것이지만, 사람들은 불필요하게 스스로를 괴롭힌다. 왜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일을 그토록 힘들어하는가? 왜 그것으로 인해 그토록 불안해하는가?
     
    부득이하게도 그 대답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사람들이 가지는 여러 가지 잘못된 생각들과 기대에서 찾을 수 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공통적인(그리고 전통적인) 관점인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일단 밝힌 다음에 그러한 관점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잘못된 관점과 바른 관점을 모두 아는 것이 도움될 것이다.

    잘못된 관점
     
    이 관점은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이라고 하는 개념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개념을 가지고 있을 경우 하나님의 인도란, 그와 같은 계획을 찾아내는 일이 되어 버린다. 만약에 그와 같은 계획이 존재한다면 나의 모든 질문에 대해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계획이 있다면 매사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언제나 한 가지 결과만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가정한다. 모든 문제에 대한 올바른 판단, 하나님의 핵심적인 뜻, ‘완벽한 계획’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약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에 결혼이 들어가 있다면, 하나님의 계획에는 단 한 사람의 배우자가 내정되어 있으며, 그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신중하게 ‘찾아내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의사 결정은 수수께끼 풀기가 되어 버린다. 모두가 ‘하나님의 뜻 발견하기’라는 수수께끼를 풀려고 애쓰는 ‘형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가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마치 퍼즐 조각처럼 찾아서 서로 맞출 수 있는 단서와 암시들을 흘리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그토록 문제가 되는 이유는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이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다는 확신은 그러한 태도에서 얻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이유는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관점은 매우 주관적이다. 예를 들어, 오늘 당신이 어떤 신발을 신을지 어떻게 결정하는가? 하나님은 오늘 아침에 당신이 무엇을 먹기를 원하시는가? 오늘 당신이 읽어야 할 성경 구절 혹은 당신이 가야 할 휴가지에 대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은 무엇인가?
     
    일터에 자가용으로 가야 하는가, 아니면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가, 아니면 기차나 택시를 타야 하는가? 만약에 하나님께서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면 이 모든 것이 그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일관되게 매사에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감사하게도 의사결정에 대한 그와 같은 관점을 버리게 된다. 그리고 상식과 개인적 기호에 기초해서 자유롭게 선택한다. 만약에 그들이 매우 종교적이라면 종교적인 주문으로 자신들의 선택에 ‘세례’를 줄 것이다. 예를 들어, “이렇게 하도록 나는 인도를 받았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진정한 화평을 누리고 있다” 와 같은 말들로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예화
     
    다음의 짤막한 이야기를 통해서 잘못된 관점의 예를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함께 첫날을 보내게 된 아담과 이브를 한번 상상해 보자. 죄가 없었기에 모든 것이 완벽했다. 에덴동산에 거주하는 원예가로서 바쁜 하루를 보낸 아담은 아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서 집으로 왔다. 그는 집으로 가면서 나무에서 요리 재료들을 따갔다. 이브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아담은 개인 풀장인 비손 강에서 수영을 즐겼다.
     
    그러나 부엌에서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지 않고 있었다. 이브는 자신이 맡은 임무가 너무도 막중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너무도 많은 결정을 내려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많은 맛있는 과일들 중에서 무엇을 요리해야 할지 확신이 없었다. 이브는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기도를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그 많은 과일들을 다 먹을 수는 없었기에 선택할 수밖에 없음을 이브는 알고 있었다. 이제 갓 결혼한 이브는 초반부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뜻을 놓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브는 자신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아담에게 부탁했다. “내가 저녁 식사로 무엇을 준비하기를 원하시는지 주님께 물어봐 주세요.”
     
    아담은 그렇게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내게 새로 주시는 계시가 없구려. 우리의 식사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아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밖에 없구려. 그러니까 ‘이 동산에 있는 그 어떤 나무의 열매든 다 자유롭게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으면 안 된다’는 말씀 말이요.” 아담은 자신이 금지된 나무에서는 열매를 따지 않았다고 이브를 안심시켜 주었다.
     
    이브는 여전히 결정을 못했고, 식사 준비에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몹시 배가 고픈 아담은 아삭아삭하고 빨간 사과가 아주 맛있어 보여 이렇게 말했다. “내 마음에 정말로 화평이 느껴지는데, 아마도 사과를 먹도록 인도를 받는 것 같소.” 이브는 사과를 먹는 데에 순순히 동의했고 자신에게도 아담과 같은 ‘화평’이 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사과를 먹기로 한 결정이 이브에게 새로운 문제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아담, 이 사과를 가지고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밀까요, 깍둑썰기를 할까요, 으깰까요, 파이 안에 넣어 구울까요, 아니면 사과파이나, 튀김이나, 푸딩을 만들까요, 아니면 사과 턴오버(turnover, 잼 들을 넣어 반원형으로 접은 파이)를 만들까요, 아니면 그냥 날 것으로 먹을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싶어요. 하나님의 인도를 나는 기꺼이 받기를 원해요.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뜻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한 번만 더 하나님께 가서 물어봐 주겠어요?”
     
    다시 한번 기도를 하고 나서 아담은 말했다. “마찬가지의 대답을 받았소. ‘이 동산에 있는 그 어떤 나무의 열매든 다 자유롭게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으면 안 된다.’” 곰곰이 생각을 해 본 아담은 이렇게 말했다. “이것 봐요, 이브, 주께서는 그 말씀만으로도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충분하기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소. 하나님께서는 내가 정확하게 무엇을 먹고 어떻게 그것을 먹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나는 확신하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결정을 우리가 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구려. 오늘 내가 짐승들의 이름을 붙인 것처럼 말이요. 하나님은 내가 알아서 그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셨소.”
     
    이브는 충격을 받았지만 안심이 되었다. “우리가 이 과일들 중에서 어떤 것을 저녁 식사로 먹든 내가 그것을 어떻게 요리하든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요?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놓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말인가요? 그러니까 내가 무엇인가를 실행하기 전에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의 모든 세부사항을 구석구석 ‘발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요?”
     
    그러고 나서 그들은 함께 현명한 결론에 도달했다. “하나님의 뜻을 놓치는 경우는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것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폭넓은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 그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과일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이다. 경건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그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사용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과일 샐러드를 먹자!”
     
    잘못된 관점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겠는가? 이브는 마치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뜻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단 하나의 올바른 선택을 찾아다니는 신비로운 여행인 것처럼 행동했다. 이브는 의사결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광범위한 자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뜻’은 동그라미 안에 찍혀 있는 자그마한 점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은 여러 가지가 가능한 거대한 강과 같다. 그 가능성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수백 혹은 수천 가지의 대안적 선택들이 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행동하는 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에 문제가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자유를 감당하지 못한다.
     
    충격적인 진실
     
    신자들은 일반적으로 폭넓은 자유보다는 끝도 없는 규칙들을 더 편안하게 여긴다. 그들은 지혜보다는 미성숙을 선호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마치 아기처럼 자신들에게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기를 원한다. 모든 세부 사항을 다 알려주고 자신들을 대신해서 모든 결정을 내려 주시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성숙한 성인처럼 다루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폭넓은 원칙들을 주시고 우리가 그것을 사용해서 여러 가지 타당한 결정들 중에서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하기를 바라신다.
     
    올바른 관점
     
    어떤 특정한 사건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일어난 것인지를 묻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라는 단어는 한 가지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단어는 서로 완벽하게 구분되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올바른 관점은 그와 같은 구분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하나님의 뜻은 계시되었거나 혹은 계시되지 않았다. 다음의 도표가 우리의 사고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된 뜻 _ 도표의 왼쪽 부분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도덕적 뜻 혹은 하나님의 교훈적 뜻이라고도 불린다. 이것은 하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서 기대하시고 그들에게 명령하신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고 싫어하시는지를 설명해 준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 - 우리가 일하고, 쉬고, 먹고, 마시고,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눕고, 물건을 사고팔고 하는 모든 것 - 의 기준으로 삼기를 원하시는 모든 윤리적 원칙들이 들어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도덕적인 뜻을 알려 주셨다. 그 뜻은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도록 성경66권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십계명에 그 개요가 들어가 있으며(출20장), 더 요약해서 두 개의 주요 원칙으로도 주셨다.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22:36-40). 우리가 이 원칙에 따라서 행동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된 뜻은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지를 가르쳐 준다.
     
    하나님의 숨겨진 뜻 _ 도표의 오른쪽 부분
     
    하나님의 숨겨진 뜻은 하나님의 주권적 뜻, 은밀한 뜻, 혹은 언약적 뜻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정하신 모든 일과 관련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령적 뜻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뜻은 우주의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이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확실하게 일어날 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청사진이다. 그 청사진에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 언제, 어떻게 그리고 왜 일어나는지 까지 포함해서 - 다 들어 있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적 맹세를 성취해 가시는 동안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 어떻게 사용 하실지가 다 들어 있다. 이 은밀한 뜻에서 하나님은 사람과 천사들이 자유롭게 내린 결정들을 다스리고 지배하셔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을 이루신다. 이 말은 모든 것이 왕 중의 왕이신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숨겨진 뜻에 대해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 우리는 사건이 일어난 후에야 그 뜻을 알 수 있다
     
    내일 아침에 당신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내일 오후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그날 아침에 무슨 일이 일어났든 간에 그것은 하나님의 은밀한 목적과 명령 속에서 정해진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어떤 것을 계획하고 계신지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다. 그 어디에도 ‘당신의 인생을 향한 완벽한 계획’이라고 불리는 별도의 셋째 ‘뜻’을 하나님은 가지고 계시지 않다. 당신의 인생 지도는 하나님의 주권적인(은밀한)뜻 안에 있는 수십억 개의 세부 요소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온갖 우여곡절을 안고 있는 그 지도를 알기를 기대하지 않으신다. 만약에 그와 같은 인도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좌절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인도하시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을 뿐이다.
     
    모세는 그것을 신명기 29장 29절에서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은밀한 일들은 주 우리 하나님께서 속하거니와 계시된 그 일들은 영원토록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속하나니 이것은 우리가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밀한 뜻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은밀한 일은 우리 하나님께 속하거니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인도는 성경에 다 나와 있다. 말하자면 “나타난 일이 율법의 모든 말씀”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상관할 일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계속해서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의사 결정을 잘하는 방법이다. 성경이 명백하게 가르치거나 논리적으로 암시하는 모든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전부다. 우리가 성경과 일관된 결정을 내리는 한 우리는 바르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만이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뜻이다.
     
    2. 우리가 그 뜻을 안다 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적 뜻을 엿볼 수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 왜냐하면 안다 해도 어쩔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의도하시고 명하신 일들은 피하거나 좌절시킬 수 없다. 나아가서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을 보여 주셨다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혼란스럽고 비생산적인 일이 될 것이다. 왜 그런지 궁금한가? 왜냐하면 거기에는 우리의 죄와 실수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뜻에는 우리의 모든 도덕적 그리고 비도덕적 행동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우리의 모든 선한 행실과 악한 행실들도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는 실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도덕적 뜻을 어기는 많은 일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밀
    한 뜻에는 모든 역사속의 모든 사람과 천사들의 완고함과 불신앙이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는 아담의 죄, 그리스도의 죽음, 그리고 화형당한 순교자들에게 가해진 잔인함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으신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밀한 뜻을 보여 주셨다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은 우리가 앞으로 하게 될 일을 보여 줄 뿐,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
     
    만약에 내일 오후 3시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의해서, 당신이 특정한 말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것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도 아닌 이유는 그러한 말을 해야 마땅한 것인지를 당신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하나님의 인도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된다. 즉 하나님의 도덕적인 뜻(이러한 경우에는 특히 혀의 사용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말이다. 성경은 인생의 모든 결정에 대해서 충분한 안내자가 된다. “모든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기억하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순종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심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사탄까지도 말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순종하지 않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심지어 사탄도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스터플랜에 계획해 놓지 않으신 일들을 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계시된 도덕적 뜻에 근거해서 심판을 받는다.
    성경은 인생의 모든 면과 관련된 행동 원칙들을 제공해 줌으로써 우리가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준비시켜 준다. 하지만 성경은 반드시 바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성경을 잘못 해석해서 잘못 행동하기란 너무도 쉽다. 해석의 오류를 피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서는 뒤에서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기도의 역할은 무엇인지, 논리적 추론의 역할은 무엇인지도 살펴볼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도>에서 발췌, 피터 블룸필드,  성서유니온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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