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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느낌 끝내줘요! _ 종교적 협박>조회수 : 9441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년 2월 12일 13시 36분 1초
  • 안녕하세요?
     
    어느 분이 다음의 글을 타이핑쳐서 보내 왔습니다.
    제가 추천한 책을 읽고 크게 감동을 받은 것 같습니다.
     
    좋은 성도가 되려면 다음의 세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 같습니다.
     
    1.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 것(올바른 교리): KJB의 확실성, 천주교, 오순절주의, 방언 등의 오류를 아는 것
    2. 하나님의 뜻과 인도를 바로 깨닫는 것
    3. 양심이 살아서 바르게 사는 것
     
    안타깝게도 킹제임스 성경 진영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1단계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허구한 날 옳고 그르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일만 하는 분들이 주변에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보면 사실 KJB와 주님을 믿고 싶지가 않습니다.
     
    이제는1단계에서 2단계로 올라서야 합니다.
    이 글은 2단계에 속한 글입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교회에 와서 성공하려면 이 책을 읽으라고 광고 시간에 여러 번 부탁하였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도'(성서유니온선교회 출판사, -피터 블룸필드-)
     
     
    2단계로 올라서면 3단계는 자동으로 혹은 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3단계에서는 성령의 열매가 있고 오해와 편견, 고정관념, 선입견 등도 다시 성경적인 관점으로 되돌리게 됩니다.
     
    샬롬
     
    패스터
     
    <이 느낌 끝내줘요! _ 종교적 협박>
     
    느낌은 감정적, 영적 협박의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 이것이 고의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요점이 아니다. 문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며 그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몇가지 예를 살펴보자.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이 말씀을 주셨는데” 라고 운을 떼면서 하나님에게서 받았다고 하는 어떤 의견을 내어 놓는다. 교회 위원회와 임원회에서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나는 종종 목격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개인적인 느낌을 성령님이 주신 것으로 돌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이 말씀을 주셨는데...”라고 하는 말은 증명되지 않았으며 증명될 수도 없다!
    그것은 순전히 신비주의일 뿐이라는 사실이 폭로되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그와 같은 말이 종종 겸손과 깊은 영성의 표시로 전시되지만, 사실은 매우 교만하고 거만한 태도다. 그럴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결국 마찬가지다.
    그것이 교만한 이유는 사람들이 마땅히 그 말을 들을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소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묵묵히 따를 것을 요구한다. 하나님이 이 사람을 움직이신 것이다!
    하나님이 이 사람의 마음에 그 메시지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이 말을 당신에게 하도록 그 사람의 마음에 부담을 주신 것이다.
    그러니 똑바로 앉아서 순종하는 자세로 그 말을 듣지 않는 자에게 재앙이 임할 것이다!
     
    이건 이교적 교리이다!
    그 사람은 영감을 받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가졌던 것과 동일한 권위를 은연중에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일이 기독교계 안에서 교파와 상관없이 숱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다음의 시험을 통해서 손쉽게 정체를 폭로할 수 있다.
     
    사례1 _ 시험 1
     
    다음에 또 누군가가 거룩한 자의 자리를 자처하며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이 말씀을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이 본문을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당신에게 하라고 하셨는데” 라고 들이대거든, 이렇게 해 보라.
    그러한 도입 공식을 듣자마자 그냥 “아니요, 나는 관심 없습니다. 더 이상 말씀하지 마세요” 라고 말하라.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그다지 영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판단받을 것이다. 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겠다고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말 그대로 신성모독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한 사람은 자신의 중요성이 무시당한 느낌이 들 것이다.
    당신의 말이 그의 거만한 콧대를 다소 꺽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이러한 방식의 화법 전체가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감정적, 영적 협박의 한 형태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두 명의 평등한 사람이 평등한 조건 하에서 같이 앉아 어떤 생각을 논의하는 대신에 거기에는 계급의 구분이 생긴다.
     
    수용자의 자리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숨을 죽이고 앉아서 하나님께서 직접 뽑으신 전달자를 통해서 전해지는 영감에 찬 지혜를 기다려야 한다는 가정이 여기에는 있다!
     
    그리고 그 전달자가 하늘로부터 받은 신탁을 선포하고 나면 거기에는 아무런 논쟁의 여지도 있어서는 안 된다. 즉시 순종해야 한다.
     
    단순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이 말씀을 주셨다”라는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를 건방지게 표현한 것일 뿐이라는 점이다.
     
    “내가 오늘 아침에 큐티를 하는데 주님께서 이 말씀을 내게 주셨다”는 공식은 “성경의 어떤 진리가 오늘 정말 나의 정곡을 찔렀는데, 이야기해도 될까?” 라는 말을 초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하나님이 내게 이 부담을 주셨는데”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내가 무척 염려가 되는데”라는 말을 경건 어투로 표현한 것이다.
     
    대언자(선지자)와 제사장 노릇은 이제 그만두자!
    종교적 협박도 그만두고 우리의 느낌을 성령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돌리는 일도 그만두자.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성모독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지도 않은 말을 하나님의 앞에 두는 행위다!
     
    -피터 블룸필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도' 중에서(성서유니온선교회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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