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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뜻 콕 집어 발견하기(?)조회수 : 8801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년 6월 2일 14시 30분 24초
  • 어떤 사람이 간증을 했는데, 한번은 자기가 망설이며 십일조를 안 했더니 며칠 후 무슨 일로 작은 사기를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액수를 보니 자기가 내야 할 십일조 액수와 거의 근사치더라고 했다. 그래서 이것은 십일조를 아까워하는 자신에게 하나님이 벌이나 경고를 하신 거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은 어떤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하루에 세 번이나 묻지도 않은 각기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그 문제가 거론되면서 답을 얻었다고 한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계시이며, 우연의 일치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신앙은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정말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직접 메시지를 주신 것일까?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이런 신앙은 순수하고 귀한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선 안 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일단 믿음은 하나님과 일대일로 경험하고, 그 경험이 쌓여 증거가 되고, 증거가 쌓여 확신이 되는 것은 맞는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에 너무 치중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일반화시켜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확정해버리는 것이다.

    믿음은 말 그대로 믿는 것이다. 어떤 생각, 견해, 주장도 믿는 것이다. 대개는 어떤 교리나 해석을 말하면 그것을 확정적인 것이라고 못 박는 것으로 여겨 흥분하며 달려드는 일이 많다. 그것은 믿음을 오해하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이것이 기정사실이라고 확정 짓고 선을 그어, 그 바깥쪽 사람들의 생각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정된 것이 있다. 그것은 성경이다. 성경 이외의 모든 견해나 교리나 주장은 모두 확정이 아닌 믿음을 표명하는 일이다. 그래서 서로 흥분할 필요가 없다.
    하물며 확정된 성경도 아니고, 그것에서 나온 교리나 해석도 아닌 것, 즉 개인적 체험이나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는 사건들에 하나님을 욱여넣을 수 있을까? 앞에 소개한 두 경우는 개인이 믿을 자유가 있고 신앙의 한 형태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일반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어떤 불교 신자가 부처에게 바치려던 돈을 아끼다가 사기를 당해서 보니 그 액수가 같았다 치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또한 어떤 이슬람 신자가 무슨 일로 알라에게 기도를 했는데 동시에 각기 다른 집단의 세 사람으로부터 같은 해답을 들었다고 하자. 이 역시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다.
    그러면 부처와 알라는 참된 신인가? 아니, 기도를 듣고 역사하는 신으로라도 인정할 수 있는 것인가? 똑같은 간증을 하는 그들 앞에서, 그것은 부처와 알라가 한 일이 아니라고 할 근거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정하시고 그 길대로만 살게 하시는 걸까? 그래서 우리는 모두 그 길을 찾는 데 인생을 쏟고, 조금만 실패하면 길을 잘못 찾았다고 한탄하고 회개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의 모든 앞길은 열려 있다. 나에게 점지된 배우자가 어디에서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는 순간 그 가정에 하나님의 시선과 뜻이 머무는 것이며 그분 앞에 한 몸이 되어 '가정'이라는 틀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물론 그 길도 얼마든지 자유롭게 펼치고 열어갈 수 있는 열린 결말이다.

    모든 것에 정해진 뜻이 있다는 것은 예정론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리 아시는 것일 뿐 우리의 삶을 정해놓지 않으셨다. 중요한 것은,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벌어지는 것이지만, 우리의 행동이나 가는 길에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으며, 우리의 태도와 도덕성 등 살아가는 방식에 하나님의 뜻이 머문다는 사실이다.

    앞선 간증의 형태로 역사하는 신은 아주 차원이 낮은 신이며, 그런 태도는 차원이 낮은 신앙이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고 욥에게처럼 시련도 주실 수 있다. 그것은 엄연히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럴 때 우리의 태도와 행동의 동기와 대처 방식을 보고자 하시는 것일 뿐이다. 인간의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다 정해져 있는데 무엇 때문에 시험을 하는가.

    하나님 뜻이 정해져 있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곳이 바로 이단적인 종교 집단들이다. 이 방식은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방식이고, 차원이 낮은 신앙에 머무는 사람들을 속이기 좋은 방식이다. 그래서 뭘 해야 하고, 얼마를 내야 하며, 정해준 배우자와 결혼을 해야 하는 등 각종 의무조항이 많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종교의 방식, 즉 행위를 강조하는 종교적 방식이며 기독교와 아무 상관이 없는 방식이다.

    자녀가 자기가 원하는 길을 밟아 그것만 하고 특정한 직업을 택해 살기를 바라는 부모는 이상한 사람이다. 정상적인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길을 찾고 무엇이든 마음껏 하되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바른 태도로 살면서 마음 편히 지내기를 바랄 것이다. 이 차이가 사람을 옭아매는 거짓 종교와 영혼의 자유가 있는 참된 복음의 차이이다.

    그런데도 자꾸만 하나님께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라든지, 심지어 "내가 무슨 일을 해 드릴까요?"라고 묻는 이들이 많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자기 결정장애의 해결사처럼 여긴다.
    물론 '무엇'을 할지도 고민은 고민이다. 모든 일이 덕이 되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역시 방법과 과정과 태도의 문제일 뿐 '무엇'의 문제는 아니다. 태도가 방향과 길을 안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이 원리를 거꾸로 생각해서, 거룩하고 경건해 보이는 일을 찾으려고 고민하고 애쓰면서도 정작 그런 일을 찾았다 싶으면 그것으로 끝이고, 그 일들을 바르고 경건한 태도로 하는 데는 일을 선택할 때만큼 고민도 하지 않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 * *

    여기 소개하는 책의 발췌문은 이런 미성숙한 신앙에 매인 기독교인들의 착각을 잘 보여 주면서 진짜 성경적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진리를 알아야 자유를 얻듯이 오직 정해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뜻은 개별적인 행동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책이다. 참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하는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도

     


    피터 블룸필드 지음·양혜원 번역/ 12,000원/ 성서유니온선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쓸데없는 스트레스와 혼란을 가져다주는 많은 문제들 중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관련된 문제는 아마도 최고로 높은 순위를 자랑할 것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지도하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다.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도를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인도하신단 말인가?

    우리가 ‘로그인’만 하면 하늘에서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를 받을 수 있는 대화방을 개설해 놓으셨단 말인가? 하나님은 인류 역사에서 수백 수천만 명의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의사소통하시면서, 그들 인생의 모든 우여곡절에 대한 자신의 뜻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신단 말인가? 하나님으로부터 정보를 얻기 위해서 우리가 배워야만 하는 특정한 단계들이 있단 말인가? 만약에 그러한 단계들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는 공식은 무엇인가? 도대체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잘못된 관점

     


    이 관점은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이라고 하는 개념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개념을 가지고 있을 경우 하나님의 인도란, 그와 같은 계획을 찾아내는 일이 되어 버린다. 만약에 그와 같은 계획이 존재한다면 나의 모든 질문에 대해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계획이 있다면 매사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언제나 한 가지 결과만 주어진다고 가정한다. 모든 문제에 대한 올바른 판단, 하나님의 핵심적인 뜻, ‘완벽한 계획’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약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에 결혼이 들어가 있다면, 하나님의 계획에는 단 한 사람의 배우자가 내정되어 있으며, 그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신중하게 ‘찾아내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의사 결정은 수수께끼 풀기가 되어 버린다. 모두가 ‘하나님의 뜻 발견하기’라는 수수께끼를 풀려고 애쓰는 ‘형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가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마치 퍼즐 조각처럼 찾아서 서로 맞출 수 있는 단서와 암시들을 흘리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그토록 문제가 되는 이유는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이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다는 확신은 그러한 태도에서 얻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이유는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관점은 매우 주관적이다. 예를 들어, 오늘 당신이 어떤 신발을 신을지 어떻게 결정하는가? 하나님은 오늘 아침에 당신이 무엇을 먹기를 원하시는가? 오늘 당신이 읽어야 할 성경 구절 혹은 당신이 가야 할 휴가지에 대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은 무엇인가?

    일터에 자가용으로 가야 하는가, 아니면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가, 아니면 기차나 택시를 타야 하는가? 만약에 하나님께서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면 이 모든 것이 그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일관되게 매사에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감사하게도 의사결정에 대한 그와 같은 관점을 버리게 된다. 그리고 상식과 개인적 기호에 기초해서 자유롭게 선택한다. 만약에 그들이 매우 종교적이라면 종교적인 주문으로 자신들의 선택에 ‘세례’를 줄 것이다. 예를 들어, “이렇게 하도록 나는 인도를 받았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진정한 화평을 누리고 있다.”와 같은 말들로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충격적인 진실

     


    신자들은 일반적으로 폭넓은 자유보다는 끝도 없는 규칙들을 더 편안하게 여긴다. 그들은 지혜보다는 미성숙을 선호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마치 아기처럼 자신들에게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기를 원한다. 모든 세부 사항을 다 알려주고 자신들을 대신해서 모든 결정을 내려 주시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성숙한 성인처럼 다루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폭넓은 원칙들을 주시고 우리가 그것을 사용해서 여러 가지 타당한 결정들 중에서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하기를 바라신다.

     



    올바른 관점

     


    어떤 특정한 사건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일어난 것인지를 묻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라는 단어는 한 가지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단어는 서로 완벽하게 구분되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올바른 관점은 그와 같은 구분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하나님의 뜻은 계시되었거나 혹은 계시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도덕적인 뜻을 알려 주셨다. 그 뜻은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도록 성경 66권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십계명에 그 개요가 들어가 있으며(출 20장), 더 요약해서 두 개의 주요 원칙으로도 주셨다(마 22:36~40).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우리가 이 원칙에 따라서 행동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된 뜻은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지를 가르쳐 준다.

     
     
     


    1. 우리는 사건이 일어난 후에야 그 뜻을 알 수 있다

    내일 아침에 당신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내일 오후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그날 아침에 무슨 일이 일어났든 간에 그것은 하나님의 은밀한 목적과 명령 속에서 정해진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어떤 것을 계획하고 계신지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다. 그 어디에도 ‘당신의 인생을 향한 완벽한 계획’이라고 불리는 별도의 셋째 ‘뜻’을 하나님은 가지고 계시지 않다.

    당신의 인생 지도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밀한) 뜻 안에 있는 수십억 개의 세부 요소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온갖 우여곡절을 안고 있는 그 지도를 알기를 기대하지 않으신다. 만약에 그와 같은 인도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좌절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인도하시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을 뿐이다. (중략)

     



    2. 우리가 그 뜻을 안다 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적 뜻을 엿볼 수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 왜냐하면 안다 해도 어쩔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의도하시고 명하신 일들은 피하거나 좌절시킬 수 없다. 나아가서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을 보여 주셨다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혼란스럽고 비생산적인 일이 될 것이다.

    왜 그런지 궁금한가? 왜냐하면 거기에는 우리의 죄와 실수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뜻에는 우리의 모든 도덕적, 비도덕적 행동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우리의 모든 선한 행실과 악한 행실들도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는 실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도덕적 뜻을 어기는 많은 일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밀한 뜻에는 모든 역사 속의 모든 사람과 천사들의 완고함과 불신앙이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는 아담의 죄, 그리스도의 죽음, 그리고 화형 당한 순교자들에게 가해진 잔인함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으신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밀한 뜻을 보여 주셨다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은 우리가 앞으로 하게 될 일을 보여 줄 뿐,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

    만약에 내일 오후 3시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의해서, 당신이 특정한 말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것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도 아닌 이유는 그런 말을 해야 마땅한 것인지를 당신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하나님의 인도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된다. 즉 하나님의 도덕적인 뜻(이러한 경우에는 특히 혀의 사용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말이다. 성경은 인생의 모든 결정에 대해서 충분한 안내자가 된다.

    기억하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순종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심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사탄까지도 말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순종하지 않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심지어 사탄도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스터플랜에 계획해 놓지 않으신 일들을 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계시된 도덕적 뜻에 근거해서 심판을 받는다.
    성경은 인생의 모든 면과 관련된 행동 원칙들을 제공해 줌으로써 우리가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준비시켜 준다. 하지만 성경은 반드시 바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성경을 잘못 해석해서 잘못 행동하기란 너무도 쉽다.

    (1장 중에서)

    ● 저자 피터 블룸필드(Peter Bloomfield)는 1982년에 호주 동부 장로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1990년 이후로 지금까지 노스 브리즈번에 있는 발드 힐즈 장로교회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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