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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사와 정치 그리고 기독교 세계관조회수 : 9217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년 11월 5일 17시 27분 5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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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최순실 씨 국정 농단(壟斷) -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함 - 때문에 온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대통령도 사람인지라 대화를 나눌 상대가 있어야 하므로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옆에 두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윗도 아렉 사람 후새와 나단 등을 친구로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대통령의 친구나 친인척이 권력을 이용하여 비리를 저지르는 일은 민주 사회에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악몽과 같은 일입니다.
     
    저는 오늘 온 국민이 이런 참담한 일을 당할 때 과연 목사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가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목사는 오직 성경 말씀만 전해야지 강단에서 현실 정치 관련 발언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무심코 들으면 참으로 지당한 말 같은데 과연 그럴까요?
     
    이에 대해 설명하려면 먼저 목사의 설교 대상이 누구인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목사를 포함하여 모든 성도들은 근심 걱정이 전혀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성도들 역시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매일 매일 삶의 여러 악조건과 극한 환경 - 영적, 문화적, 정치적, 사상적 - 에 노출되어 치열하게 살고 있습니다.
     
    만일 목사가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어느 누구에게도 거침이 되지 않는 부드러운 말 즉 ― 하늘에 있는 고상한 말 ― 만 전한다면 그의 설교는 현실성이 결여된, 죽은 말이 되고 말 것입니다.
     
    목사는 개개인의 고통과 고난, 질병 같은 현실 문제에 관한 성경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또한 자연재해, 경제 위기, 핵 위협, 911 테러, 이슬람 난민 문제 등 한 국가와 전 세계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 주제에 대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잘 분석한 뒤 주님의 마음을 전해야 합니다. 즉 개인 문제든 국가 문제든 세계 문제든 성도들에게 위로나 경종을 주어야 할 때 입을 열어 성경의 바른 것을 전해야 합니다.
     
    이번의 최순실 사건은 말 그대로 경천동지(驚天動地)의 사건입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하여 지금 상황이 제대로 수습되지 않으면 정상적인 통치를 하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이런 심각한 일이 마침 북한의 핵 위협이 최고조에 이른 때에 일어났습니다. 이 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이에 대해 가슴 아파하며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주일(10월 30일) 목사가 강단에 서서 이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떤 면에서 그것은 엄청난 직무 유기입니다. 그것은 마치 911 테러가 일어난 바로 그 주일에 미국에 사는 미국 목사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 일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렇듯 설교자에게 부여된 의무 때문에 비록 우리와는 교리와 지향점이 다를지라도 이찬수 목사님 등 일반 교회의 잘 알려진 설교자들도 주일 강단에서 이번 사건에 관한 자기 생각과 소신을 담대하게 피력한 것입니다.
     
    “루터처럼… 부끄러운 마음으로 죄와 싸워야”(국민일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5&aid=0000948734
     
    제가 일반 교회 목사들의 예를 든 것은 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이렇게 여러 목사들이 강단에서 입을 열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이번 사건은 매우 중대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큰일이 자신이 담임하는 교회가 있는 국가 안에서 일어났다면 설교자는 마땅히 세상의 흐름을 살펴 성경적인 지침을 성도들에게 제시해야 합니다. 이것이 설교자로 부름받은 목사의 사명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그의 명저 ‘설교와 설교자’에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돌발적인 사건과 현상들 그리고 재난과 자연재해 등을 설교자는 얼마든지 효과적인 복음 선포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연속 설교(시리즈 설교)를 하다가도 이런 큰 사건이 발생하면 그것을 중단하고 이러한 사건을 주제로 설교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더불어 스펄전과 비교될 정도로 뛰어난 미국 출신 설교자로 평가받는 필립스 브룩스 목사님은 “설교자는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여러 사회문제에 철저하게 관여해야 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주일의 55분 설교 중에 약 10분을 할애하여 네 가지를 이야기하였습니다.
     
    1. 이 일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대단히 난감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믿지 않는 분들에게 사과한다. 동시에 이것은 사실 기독교와 전혀 무관하다. 기독교는 이런 일을 미워하며 결코 지지하지 않는다.
     
    2. 대통령이라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수사를 통해 잘못이 발견되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3. 현재 나라가 북한의 핵 위협하에 있으므로 불순 세력이 이번 사건을 빌미로 국가를 전복시키려 하거나 불안정 사태를 유발하지 않도록 우리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4. 마지막으로 기독교인들은 이 문제가 바로 내 문제임을 인식하고 국가와 민족 그리고 지도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런 초유의 사태를 접하면서 목사가 이와 같이 상식적 수준의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물론 이런 것을 이야기하면서 좀 더 부드러운 어휘를 선택하면 더 좋을 것이며 이 점이 부족함을 저는 늘 느끼고 앞으로는 이 점을 보완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아마도 다음은 앞서 이야기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또 다른 말로 기억합니다(정확하지는 않음).
     
    “목사는 정치를 하지 않지만 정치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여러 신문, 뉴스 등을 잘 보고 국가와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잘 파악해야 한다.”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정치를 포함해서 그 안에 들어 있는 사상과 풍조를 바르게 바라보고 분석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목사가 성경을 상고하면서 세상과 국가와 지도자와 국민이 하나님을 대적하며 공의롭지 못한 일을 할 때 경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목사는 현실 세상 속에서 매일 현실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다양한 계획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구원과 성화뿐만 아니라 세상 풍조, 세상 역사의 조류, 국민들의 사상 해이 등을 경고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기독교 용어로는 ‘기독교 세계관’(Christian world view)이라고 하며 목사는 기독교 세계관을 성도들에게 확신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저는 1년에 1번 혹은 2번 즉 6월 25일과 8월 15일 전후 주일에 애국을 주제로 설교합니다. 그 목적은 올바른 역사를 청장년들, 청년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30대 이하 여성의 상당수가 6.25 사변이 남침인지 북침인지도 모른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으면 되지 이런 것이 왜 중요하냐고 묻기도 합니다. 우리가 미국 사람이라면 이런 것을 알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남북이 분열된 상태로 핵 위협까지 받으면서 이 땅에 살기에 이것은 실로 중요한 현실 문제입니다. 사상의 해이로 국가가 무너지면 믿음의 터전과 자유을 잃기 때문입니다.
     
    물론 국가관이 바르게 – 혹은 강하게 - 정립되지 못한 이런 분들도 구원의 대상이므로 목사는 이들을 향해 구원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나가는 이 현실 세상에서 목사와 성도는 구원받는 것 이상의 일을 해야 합니다. 즉 동성애, 이슬람, 인본주의, 상대 윤리 등이 급속도로 확산하는 이 시점에서 목사는 확고한 기독교 세계관을 교회에 세우기 위해 시의적절하게 이런 주제들에 대해 설교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늘 정치 지도자들을 상대하셨습니다. 심지어 헤롯을 여우라고 부르셨는데 이것은 심각한 정치적 발언입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그 여우- 헤롯 - 에게 이르기를, 보라, 오늘과 내일 내가 마귀들을 내쫓고 치료하다가 셋째 날에 완전하게 되리라, 하라.”
     
    바울도 권력의 출처, 지도자를 위한 기도 등을 가르쳤습니다. 이것들도 다 정치적 발언입니다.
     
    “모든 혼은 더 높은 권력들에 복종할지니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권력이 없으며 이미 있는 권력들도 [하나님]께서 임명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권력에 거역하는 자는 [하나님]의 규례를 거역하나니 거역하는 자들은 스스로 정죄를 받으리라.”(롬13:1-2)
     
    “그러므로 내가 권면하노니 무엇보다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중보와 감사를 드리되 왕들과 권위를 가진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것은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따르며 정직한 가운데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자 함이라.”(딤전2:1-2)
     
    구약의 대언자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정치는 안 했어도 가장 정치적인 사역을 하였습니다. 대언자 예레미야의 40년 사역의 외침은 한마디로 “바빌론을 택하고 이집트와 절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정치에 영향을 받고 그 때문에 정치에 가장 민감한 채 그 시대를 살아가던 백성들에게 모세, 다니엘, 에스라, 느헤미야, 삼손 등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근본적 보수주의 믿음을 외쳤습니다. 여기에는 다분히 정치적 발언이 들어 있습니다.
     
    목사는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다분히 정치적이어야 합니다. 즉 세상 돌아가는 일에 민감해야 합니다. 그래야 때에 맞게 성경의 근본적 가치 즉 기독교 세계관을 선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눈을 의식해서 이를 포기하면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앞으로 목회하는 동안 저는 위에서 언급한 설교 원칙 즉 모든 중요한 분야에서 확고한 기독교 세계관을 선포하는 것을 지킬 것입니다. 이번처럼 중요한 사건이 터질 때 저는 강단에서 잠시라도 성경의 근본적인 가치를 성도들과 이 민족에게 선포할 것입니다.
     
    정리해서 말씀드립니다.
     
    대통령도 법 위에 있을 수 없으므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고 그 일을 위해 지정된 사람들이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리스도인으로서 국가의 안위를 위해,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 선포 및 확고한 기독교 세계관 확산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의 평안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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