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컬럼

  • 목사컬럼
  • 목사컬럼
  • 이사야서 53장과 유대인 랍비의 회심: 쌤 스턴 이야기조회수 : 11411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년 3월 24일 10시 2분 57초
  • 랍비 쌤 스턴(Sam Stern) 이야기: 이사야서 53장으로 변화되다
     
    어린 시절
     
    나는 1차 세계대전으로 전 세계가 혼란 가운데 있을 때 태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굶주림과 기아에 허덕였습니다. 나는 엄격한 정통파 유대인의 랍비 교육을 시키고 하시딤 교육을 시키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 당시 나의 부모님은 가난했지만 우리들을 학비가 비싼 유대교 정통파 종교 학교로 보냈습니다. 나는 삼 형제와 한 누이가 있습니다. 내 아버지의 유일한 소망은 우리 세 형제를 랍비 즉 유대인 율법학자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다섯 살에 나는 이미 초등학교 1학년을 다녔고 7살엔 히브리어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9살엔 모세오경(모세의 다섯 권의 책)과 성경 주석자인 라하시(Rashi)의 책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탈무드라 불리는 오래된 책 즉 이제는 구식이라 여겨지는 고대 유대교의 법학 책들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10-11살 이후 10년 동안 탈무드는 내 인생에서 다른 모든 책들을 능가하는 주된 교재가 되었습니다.
     
    나는 13살부터 독립적인 종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12살을 마치고 13살이 시작되는 때까지 부모의 지도하에 있다가 그 이후로 아버지의 감독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즉 홀로 자기 행위의 잘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13살이 된 때부터 나는 유대인 회당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내 아버지는 나의 죄들에서 벗어나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방인들과 나
     
    내 부모님은 매우 엄격한 정통파 유대인 가문 출신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랍비입니다. 그분은 하루에 세 번 기도하기 위해 회당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탈무드에 따라 유대인들의 율법들을 준수하였는데 그 이유는 부모님들이 자신의 자녀들도 조상들의 발자취를 따르고 엄격한 정통파 유대인으로 남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내 가족은 폴란드 바르샤바 근방 콩그레스 폴란드(Congress Poland)의 작은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500명의 유대인들과 800여 폴란드 가족들이 거기에 살고 있었지만, 폴란드인들과 유대인들은 다음과 같이 4개의 ‘만리장성’과 같은 벽에 의해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1. 유대인들은 카프탄(Kaftan)이라 불리는 검은색 긴 코트와 이디쉐 후텔(Yiddishe Hutel)이라 불리는 검은 모자를 썼습니다. 폴란드인들은 유럽식 옷을 입었습니다. 유대인이 유럽식 옷을 입는 것은 큰 죄로 간주되었습니다.
     
    2. 폴란드인들은 폴란드어를 말하고 유대인들은 이디시(Yiddish)말을 썼습니다. 이디시말은 히브리어와 슬라브어가 혼합된 독일어입니다.
     
    3.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곳은 또한 사교를 위한 장소로도 쓰였고 성경과 탈무드를 위한 교육도 여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폴란드인들은 거의 100% 천주교도(카톨릭)였습니다.
     
    4. 유대인들은 주로 대장장이, 재단사, 제화공, 소상인, 작은 철물점과 식료품가게의 주인들이었고 폴란드인들은 주로 농부나 공무원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시청이나 연방정부의 일, 공장이나 농업 등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한 지역에서, 같은 아름다운 폴란드 하늘아래 살고 있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민족이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폴란드 빵을 먹었으며 같은 맑은 공기를 마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서로에게 낯설었습니다.
     
    이방인들과의 첫 만남
     
    여섯 살 때 나는 유대인 거주지 밖으로 나가 걸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이방 소년이 “유대인, 유대인!”이라 소리를 지르며 내게 돌을 던졌습니다. 어린아이였던 나는 유대인이 비유대인의 증오대상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놀랍고 두려웠습니다.
     
    나는 어머니에게로 달려와 어떤 소년이 “유대인, 유대인!”이라 소리를 지르며 내게 돌을 던졌다고 말해줬습니다.
     
    “왜 그 소년이 내게 돌을 던졌나요? 왜 그는 나를 ‘유대인’이라고 부르죠? 난 그 소년을 전에 본적도 없어요. 그를 전에 본적이 없는데 왜 나를 미워하죠?”
     
    “그는 크리스천 – 엄밀히는 카톨릭 - 이고 크리스천들은 유대인을 미워한단다. 그는 널 알지도 못하지만 그는 너의 원수지.”
     
    “왜 그가 나의 원수죠?” 내가 계속 물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배운 것을 믿는 거야. 그의 사제(신부)나 선생님, 그리고 부모들이 유대인을 미워하라고 말하니까. 그러니 그가 이유도 없이 너를 미워하는 것이란다. 그러나 메시아가 오시면 우리는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을 거야. 그땐 우리가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갈 것이고 아무도 우리를 더 이상 핍박할 수 없게 될 거야.”
     
    “그럼 메시아는 언제 오나요?” 나는 계속 물었습니다.
    “우리가 정확한 시간은 알지 못하지만 주님께서 언젠가 오실 것이다. 그러면 크리스천(카톨릭)들로부터 당하는 우리의 고통들은 끝이 날것이다.”
     
    메시아가 오신다는 소망이 나의 전 생애를 따라다녔습니다. 그것이 내가 이방인 이웃들로부터 당하는 고통들과 모욕을 견디어 낼 힘을 주었습니다.
     
    교육
     
    열세 살에 바르 미츠바(Bar Mitzvah)라 불리는 유대교 남자 성인식을 마친 뒤, 나는 랍비가 되려는 유일한 목적을 가지고 고등 랍비 학교로 보내졌습니다. 열세 살에서 스물두 살까지는 나는 여러 다른 학교에서 주로 탈무드를 가지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탈무드는 매일의 삶을 다루는 60여 개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탈무드에서 다루는 주된 문제들은 손해 배상에 대한 것, 종교적 명절, 결혼과 이혼, 기도와 농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 책들의 주된 스타일은 ‘논쟁’입니다. 예를 들어, 명절에 닭이 알을 낳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것을 먹을 때 한 랍비는 코셔(kosher) 즉 ‘유대인들의 율법에 맞는 것’이라 말하고, 다른 랍비는 코셔가 아니라 트레파(trefa) 즉 ‘유대교 규범에 따라 정식으로 처리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탈무드는 학문적으로 예리하게(히브리어 pilpul,  פלפול, ‘후추’는 ‘날카로운 분석’을 의미함) 분석하는 말로 논쟁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또한 신비주의, 형이상학, 민간전승 등을 다룹니다.
     
    탈무드를 배우는 학생으로서 나는 손해배상이나 종교적 명절 등에 대한 문제에서 자신의 견해를 표명한 모든 랍비들의 이름을 암기해야 했습니다. 탈무드는 약 1800년 전에 탄나임(Tannaim)과 아모라임(Amoraim)이라 불리는 랍비들 시대에 기록된 것입니다. 그 이후 탈무드에 대한 주석들이 수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탈무드 자체처럼 탈무드 연구자에게 중요하고 구속력 있는 책들 중 가장 유명한 책들은 람밤(The Rambam), 로쉬(The Rosh), 토사포트(The Tosafot) 등이 있으며 탈무드의 가장 위대한 주석자로는 라시(Rashi)가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여러 의견들과 그들이 한 말들을 알아야만 했습니다. 배울 것이 너무 많았으므로 우리는 가장 기초적인 세상의 교과목들조차 배울 시간이 없었습니다. 나는 산수, 지리 등과 같은 과목들에 무지했지만 스물두 살이 되는 해에 ‘람단’(Lamdan)으로 인정되었는데 이 말은 탈무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의미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발발
     
    1939년 9월 1일,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나는 바로 전 해 여름에 스미차(Smicha)라 불리는 랍비 증서를 받았습니다. 나는 결혼을 계획하고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가 되려 했으며, 나의 동료 유대인들을 이끌기 위해 내가 얻은 지식을 랍비의 전통에 따라 탈무드 방식으로 사용하고자 했습니다. 
     
    또 다른 대안은 폴란드를 떠나 랍비를 많이 필요로 하는 라틴 아메리카로 이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나의 모든 계획들을 망쳐 놓았습니다. 나의 인생 자체가 유럽에 있는 나의 동료 유대인들과 함께 위험에 처했습니다. 
     
    나치와 폴란드 사람들
     
    1939년 9월 4일, 독일 군인들이 우리 마을에 왔습니다. 폴란드계 유대인들에게 그 당시 삶은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은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모든 하늘이 두루마리이고 모든 사람이 작가이며 모든 나무가 펜이라 할지라도, 폴란드 사람들과 연합한 나치들이 폴란드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행한 일들을 감히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반 유대인 운동’이 6년간 벌어지면서 육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 그중 백만 명은 아이들이었음 -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세상의 유대인 중 삼분의 일이 멸절된 것입니다. 유럽의 뜰은 아직도 그때 흘려진 무죄한 피로 젖어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양심적인 폴란드 가족들이 유대인들을 구하고 그들을 숨겨주고 먹여 주었지만 이런 좋은 사람들의 수는 매우 적었습니다.
     
    1945년 5월에 2차 세계대전이 끝났습니다. 결과는 나치 살인자들의 멸망과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이었고 동시에 나는 온 가족을 잃었습니다.
     
    친구를 찾으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서: 왜?
     
    전쟁이 끝난 뒤, 나는 내 친척들을 만나 함께 살 수 있을까 하는 소망을 가지고 강제수용소에서 나왔습니다. 나는 신문에 광고를 냈습니다. 나는 친척들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여러 공공기관들도 가봤습니다. 그러나 애통하게도 나는 나의 사랑하는 이들이 인류 역사에서 ‘나치 이데올로기’라는 가장 극악한 마귀 이념의 희생자였던 육백만 명의 유대인들과 함께 사라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내가 친구도 없고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이 세상에서 완전히 혼자였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는 나의 부모님, 나의 누이, 형제들 혹은 삼촌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이제 낯선 세상에 친구나 친척하나 없이 남겨져 있습니다. 나는 사람들 중에서 친구를 찾기 시작했으나 아무도 어머니의 진정한 마음이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나의 갈망을 충족시켜주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누이의 사랑이나 형제들의 신실함을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실망과 절망에 휩싸였습니다. 나는 하늘을 향해 눈을 들고 유대 식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왜요? 왜 하나님의 백성 삼분의 일이 나치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만 했습니까? 나치 살인자들이 그들의 잔인한 손을 들어 한 유대인 어린아이를 죽이려고 했을 때, 죄도 없는 그가 도와달라고 외쳤을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이렇게 끔찍한 시간들이 지날 때 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침묵하셨습니까?”
     
    난민 수용소에서 미국으로
     
    나는 폴란드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기에 미국으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혹시 새로운 땅으로 가면 무시무시했던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 미군이 점령한 서부 독일 지역으로 먼저 가야만 했습니다. 나는 시온주의자 그룹의 회원이 되었는데 그들의 유일한 목적은 유대인들을 폴란드에서 독일이나 이탈리아로 데리고 간 뒤 이스라엘이나 미국으로 이주하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1946년 4월, 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접경 근처에 있는 유대인 난민 수용소로 갔습니다. 나는 거기서 랍비로 등록하고 난민 수용소에서의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난민 신문의 편집일도 담당하였습니다. 1952년 나는 미국의 로드아일랜드 주로 왔고 거기서 회당의 보조 랍비로 일했습니다.
     
    불신과 의심
     
    비록 내가 회당에서 탈무드를 가르치기는 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심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육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죽이셨을까?”라는 질문이 나를 괴롭혔습니다. 나는 내가 확신하지 못하는 것들을 진실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나는 회중들과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유대인들이 살아남기 원하고 우리의 적들을 이기려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히틀러에 의한 유대인 희생자들의 99%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 사람들임을 알았지만 그런 것이 그들을 죽음으로부터 보호해 주지 못했습니다. 내가 가르치는 것이 진실이라는 증거나 확신이 내게 없었습니다. 또한 탈무드의 전설들, 율법들, 그리고 찬성과 반대에 대한 논쟁들에 대한 믿음을 잃었습니다. 나는 진리를 찾고 있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죄들의 고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유대교 명절마다 우리 유대인들은 회당에 가서 하나님께 우리의 죄들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들 때문에 우리의 땅에서 쫓겨났다”고 말합니다. 죄들의 고백은 우리 기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유대인들의 기도 책은 유대인들이 매일의 기도문 안에서 반드시 고백해야 하는 여러 죄들을 언급합니다. 가장 엄숙한 기도의 날은 욤키퍼(속죄일)인데 그 전날 저녁에 열세 살 이상 되는 모든 유대인들은 알쳇(Al Chets)이라 불리는 45가지 고백을 복창해야만 합니다. 이 고백 후에 회중은 슬라흐라누(Slach Lanu) 즉 “우리를 용서하소서”라는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이런 기도들을 하면서도, 나는 조들의 고백만으로는 죄가 용서되지 않는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으므로 답답하고 불만을 느꼈습니다. 죄들이 용서되기 위해서는 고르반(korban)이라 불리는 희생물을 드려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았습니다. 레위기는 고르반을 많이 다루고 있는데 특히 5 장 17-19절에 이것이 명기되어 있습니다.
     
    이 고백들과 기도들을 드린 뒤에 우리가 다시 죄성을 지닌 옛 생활로 돌아가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욤키퍼 기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중요성이 있는지 나는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내게는 회당에서 우리의 죄들을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의 입을 통해 회개를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진정으로 그것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우리가 죄인들이고 하나님께 실제로 더욱 확실히 다가가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진리에 대한 갈망
     
    나의 영적 상태에 대해 나는 매우 답답했습니다. 나는 사람과 랍비의 전통들과 가르침에 대해 믿음을 잃었습니다. 나는 랍비로서 사람들에게 내가 믿지도 않는 것들을 가르치고 있음을 알고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탈무드의 가르침들, 말들, 논리적 논쟁들, 학구적인 토론들,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손해들에 대해 탁상공론식 궤변을 늘어놓는 주석들, 율법들, 안식일에 대한 규칙들과 법규들, 종교 명절들, 옷과 씻는 것에 대한 것들 모두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를 유대인으로 살고 걷고 존재할 수 있게 해 주는, 진정으로 견고한 영적 진리가 우리에게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진리란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해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를 위해 참된 길은 무엇입니까? 나는 이런 것들에 관해 전혀 몰랐습니다!
     
    나는 나의 백성 유대인들이 목자 없는 양들로 보였습니다. 2000년 동안의 탈무드 식 가르침, 하시딤 식 - 기원전 2세기 헬레니즘 문화정책에 반대하고 완전한 헌신과 엄격한 종교생활을 주장한 무리들 -, 가르침,  히브리 신비주의 식 가르침, 그리고 세상적인 가르침이 유대인들의 한 자녀도 나치의 멸망으로부터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직접 보았습니다. 우리의 종교  명절에 기도문에서 읽었던 것처럼 우리 유대인들이 우리의 죄 때문에 고통당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나는 우리의 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빛과의 첫 만남
     
    어느 봄날 저녁 나는 목적 없이 여기저기 보기도 하고 신선한 봄 공기를 마시며 로드아일랜드 주의 어느 곳을 걷고 있었습니다. 산책하는 동안 나는 몇몇 젊은이들이 가게 앞에 서서 작은 인쇄물을 나눠주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나는 그들을 주목하게 되었고 그들은 내게도 팸플릿을 주었습니다. 영어를 읽을 수가 없었기에 나는 가게 [처음에 가게인 줄 앎] 안으로 들어가 어떤 할인 품목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상품이 하나도 없어서 나는 놀랐습니다. 놀랍게도 나는 모든 사람들이 눈을 감고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는 것을 봤습니다.
     
    나는 “무슨 일이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것이 크리스천들의 기도 방법인지 몰랐습니다. 유대인들이 눈을 뜨고 몸을 사방으로 흔들면서 기도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뜰 때까지 잠시 기다렸습니다. 한 소년이 다가와 내게 말했지만 그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에 온 지 몇 주 밖에 안 되었기에 나는 영어를 알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나는 내가 독일어와 이디시말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수화를 통해 나는 다음 수요일에 다시 올 것이라고 했는데 그때 독일어하는 사람이 와서 이 조직이 어떤 것인지 내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사랑
     
    다음 수요일, 독일 신사는 내가 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친절하게 내게 악수를 하고는 독일어로 내게 “이곳은 유대인들에게 전도하는 곳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유대인들에게 보내셔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도록 하셨습니다.”
     
    “구원이라뇨? 유럽의 유대인들에게 닥쳤던 참변을 보고 어찌 당신이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까?”라고 내가 물었죠.
    그는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어떤 느낌일지 알지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크리스천들은 유대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손상을 입혔던 사람들은 크리스천들이 아닙니다[실제로 카톨릭]. 기독교의 알파와 오메가는 이스라엘을 포함하여 온 인류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유대인들에게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니고 집집마다 성인들의 사진들을 갖고 있었지만 유럽의 유대인들을 대적하여 조직적 학살을 감행했던 그들이 크리스천들 아니었습니까?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 있는 교회들이 ‘반유대주의’의 주된 원천이 아니었습니까? 사제(신부)들은 유대인들을 대적하라고 백성들을 선동하지 않았습니까?”
     
    그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원수들을 사랑하고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 다음 그는 나에게 이디시말로 된 신약성경을 주며 “이것을 읽어보시면 그리스도의 참 가르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 신약성경을 받아 내 주머니에 넣고 “네, 선생님”이라고 했고 그것을 읽겠노라고 했습니다. 나는 신약성경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알기 원했습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날부터 며칠 밤 나는 읽을 것이 많았습니다.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읽어 내려갈 때 그 책은 줄마다 페이지마다 내게 대단한 계시를 주었습니다. 마태복음을 펴면서 나는 예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계통이라는 것을 읽으며 놀랐습니다.
     
    또한 장마다 “기록된바”(As it is written)라고 쓰여 있는 것도 보았는데, 그것은 우리의 유대교 성경에 이미 기록되었음을 뜻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첫 장은 그분께서 처녀에게서 태어날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보라, 처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구약성경 이사야서 7장 14절)고 구약성경이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2장에서는 그분께서 구약성경에 기록된 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네가 유다의 수천 가운데서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에서 치리자가 될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아오리라.”(구약성경 미가서 5장 2절).
     
    나는 또한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집트에서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노라.”(구약성경 호세아서 11장 1절)
     
    이렇게 읽으면서 나는 신약성경이 페이지마다 장마다 구약성경과 성실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신약성경이라 불리는 이 책이 실제로 구약성경의 성취였음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우리 랍비들은 탈무드에 너무 빠져서 거룩한 성경기록에 신경을 거의 쓰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거기서 나는 성경을 믿는 유대인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 작은 모임에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고 내 생명을 메시아께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유대인 선교사와의 만남
     
    유월절이 오기 2주 전쯤이었습니다. 로드아일랜드 주에 있는 선교사가 뉴욕에 살고 있는 유대인 즉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의 주소를 주었고 나는 그런 사람을 전에 본 적이 없었기에 거기로 갔습니다. 나를 만나자마자 그는 자기 집으로 나를 초대했습니다. 그는 샬롬 알레이힘(Shalom Aleichem, 히브리말로 ‘peace be upon you’ 당신에게 평강이 있기를!)이라는 인사말로 나를 환영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디시말로 신약성경을 같이 읽었습니다.
     
    잠시 후 그는 ‘고난당하는 자’(The Sufferer)라는 제목의 시를 자신이 썼다고 하면서 나에게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구실이었고 실제로 그것은 구약성경 이사야서 53장이었습니다.
     
    이사야서 53장: ‘고난당하는 자’(Sufferer)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가 그분 앞에서 연한 초목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같이 자랄 터이니 그에게는 모양도 없고 우아함도 없으며 우리가 그를 볼 때에 그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
    3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거부되었으며 슬픔의 사람이요, 고통을 잘 아는 자라. 우리는 그를 피하려는 것 같이 우리의 얼굴을 감추었으며 그는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는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 참으로 그는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였거늘 우리는 그가 매를 맞고 [하나님]께 맞아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였노라.
    5 그러나 그는 우리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노라.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각각 자기 길로 갔거늘 {주}께서는 우리 모두의 불법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는 학대를 당하고 고난을 당하였어도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였으며 도살장으로 향하는 어린양같이 끌려가며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는도다.
    8 그는 감옥에도 가지 못하고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밝히 드러내리요? 그는 산 자들의 땅에서 끊어졌으며 내 백성의 범법으로 인하여 매를 맞았도다. 
    9 또 그는 사악한 자들과 더불어 자기 무덤을 만들었으며 죽어서는 부자와 함께하였으니 이는 그가 폭력을 행사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속임수가 없었기 때문이라.
     
    10 ¶ 그러나 {주}께서 그를 상하게 하는 것을 기뻐하사 그를 고통에 두셨은즉 주께서 그의 혼을 죄로 인한 헌물로 삼으실 때에 그가 자기 씨를 보고 자기 날들을 길게 하며 또 {주}의 기뻐하시는 일이 그의 손에서 번영하리로다.
    11 그가 자기 혼이 해산의 고통을 치른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기리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리니 그가 그들의 불법들을 담당하리라. 
    12 그러므로 내가 그로 하여금 위대한 자들과 몫을 나누게 하리니 그가 강한 자들과 노략한 것을 나누리라. 이는 그가 자기 혼을 쏟아 부어 죽기까지 하며 범법자들과 함께 계수되었기 때문이니라. 그는 많은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였으며 범법자들을 위해 중보하였느니라.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그리고 그는 내게 “이 시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우리의 죄들 때문에 누가 고통당하셨나요? 누가 매를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건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일 테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는 단지 구약성경 이사야서 53장을 손으로 적어 당신에게 읽어드렸을 뿐입니다. 대언자 이사야는 메시아에 대해 기록한 분이지요.”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나의 놀람과 충격은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나는 이사야서 53장을 몰랐습니다! 다음날 나는 같은 ‘시’를 뉴욕에 있는 랍비 친구에게 보여 줬습니다. 그도 이사야 대언자가 그 장을 기록한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랍비들과 유대인들이 메시아 즉 구약과 신약의 구원자를 모르고 있는 주된 이유는 그들이 성경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이었습니다. 나는 유대인들의 구약성경을 그들에게 바로 전달하도록 하는 일에 내 온 힘을 다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날 밤 나는 뉴욕의 선교사에게 가서 내가 성경과 주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거기서 우리는 죄의 용서와 구원을 위해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나 개인의 구원자로 영접했습니다. 내게 온 변화가 얼마나 컸던지! 나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나는 전에 결코 알지 못했던 평안, 기쁨 그리고 행복을 느꼈습니다. 나의 인생 전체가 행복한 삶으로 변했습니다. 나는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십니다. 집에 왔을 때 나는 성경을 펴서 이사야서 53장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내가 왜 전에는 이사야서 53장에 대해 전혀 듣지 못했을까 궁금해 했습니다. “왜 랍비들은 이사야서 53장에 대해 내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우리 유대인들이 이사야서 53장을 거부한다면 성경 신자로 인정될 수 없음이 내게는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더 읽어 나가면서 나는 이사야서 53장 대언이 하나님의 용서와 화해 그리고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훌륭한 계획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교육
     
    나는 로스앤젤레스로 가서 초등학교 2학년 반에서 미국 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8학년을 마친 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 후 LA 시립대학(Los Angeles City College)으로 갔고 마침내 성경 대학인 바이올라 대학(Biola College, 지금은 탈봇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나는 침례를 받고 복음 전도사로, 목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이제 나의 가장 큰 관심은 복음을 나의 백성 유대인들에게 전해서 그들도 자신의 메시아를 받아들이고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게 하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분명하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요14: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표
     
    구원받은 뒤 나는 내가 그 빛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고 모든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의 메시아를 믿어야 한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아직 믿지 않는 자들인 육적인 내 형제들에게 영광스러운 복음을 선포하면 철저히 거부합니다. 복음에 대한 그들의 편견과 생명에 대한 세상적인 견해를 나는 익히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싸움이 쉽지 않기에 나는 하나님의 일을 인내하며 계속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그들의 ‘목자들’에 의해 잘못 인도받은 ‘순진한 유대인들’에게 더욱 더 진리를 퍼뜨려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안위에만 관심이 있을 뿐 백성들은 돌보지 않는 ‘눈먼 자들의 눈먼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사 그분을 섬기게 하셨고 또 나를 보호하사 그리스도의 진리 이야기를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 그 빛을 전파하도록 도우시리라고 나는 확신했습니다.
     
    내 안에서 어떤 큰 힘이 나를 밀어서 그 일을 하도록 하였는데 이 큰 힘을 주신 분은 바로 성령님이셨습니다. 성령님의 이 권능은 밤낮으로 내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는 이스라엘의 집으로 가서 단순하지만 확실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말하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이리저리 더듬으며 진리를 찾으려고 애쓰는, 지치고 불행한 유대인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도울 마땅한 사람들이 없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므로 내가 더욱 더 열심히 그들에게 다가기로 결심을 하고 지치고 마음이 상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어둠속을 헤매는 유대인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변론
    나는 유다 백성의 지도자들인 모든 랍비들과 유대인들에게 호소합니다.
     
    “우리의 대언자들과 우리의 하나님과 그분의 기름부음 받은 분 메시아에게 돌아오십시오.”
     
    “주가 말하노라. 이제 오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희 죄들이 주홍 같을지라도 눈같이 희게 될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
     
     
    (*) 이 글은 남윤수, 이정원 자매님(인천 사랑침례교회)께서 번역해 주셨습니다.
     
    (**) 다음은 ‘이사야서 53장의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쌤 스턴 이야기와 함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의 설교입니다.
     
    https://youtu.be/T20SIgFdHNE
     
    국가가 평안한 가운데 우리 안에서 주 예수님의 일이 흥왕하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샬롬
     
    패스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텔레그램으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