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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이렇게 설교한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설교자의 특성>조회수 : 11516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8년 11월 24일 15시 23분 41초
  • 안녕하세요?

     

    2018년 8월 29일, <월간 목회>라는 잡지에서 제게 < 나는 설교준비를 이렇게 한다>는 제목으로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월간 목회>는 목회정보 교환과 목회자료 제공, 효율적인 현대 목회의 연구와 개발,  참 지도자를 통한 교회 부흥 촉구를 목적으로 발행되는 잡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처음에 저는 제게 잘못 온 이메일로 생각하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제게 부탁한 것이 맞는다고 해서 의아해 했습니다. 어쨌든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제가 생각하고 실천하는 바를 기술해서 9월 30일경에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어제 2018년 12월호를 보내 와서 여기에 소개합니다.

     

    목회를 하시는 분들, 그리고 앞으로 하시려는 분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

     

    나의 설교 준비

     

    목사가 되면 누구나 매주 설교를 준비하고 전달해야 하는 짐을 안게 됩니다. 서점에는 유명한 설교자들이 설교에 대해 설명해 주는 책들이 많고 유명한 강사들의 설교 세미나도 많이 있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신학교를 다닐 때에도 대개 설교에 대한 강의를 듣고 준비해서 발표한 뒤 코칭을 받곤 합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설교를 준비해서 성도들이 은혜를 받게 하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특별히 현시대 한국 목회자들은 설교 외에도 교회 행정, 심방 등 일이 매우 많습니다.  

     

    저는 주중에 대학교 교수로 일하고 주말에만 교회에서 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설교에 대해 더더욱 부담이 많습니다. 저는 첫 번째 목회를 실패한 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설교와 설교자>를 여러 차례 읽었고 그분의 강해 요지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따라서 강해 설교를 해야 한다는 데 동감합니다(참고로 강해 설교는 원어 설명이나 주석이 아님). 그래서 목사의 설교를 들은 뒤 성도들이 그날의 본문에 대해 조금 더 잘 이해하고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앞으로 더욱더 거룩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세상으로 나가서 성실하게 살면 목사는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신학교 때부터 목회자들을 짓누르는 압박이 있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비롯해서 많은 설교 강해학 교수님들이 모든 설교를 독창적으로 창조해 내야 한다고 이야기하므로 대다수 목회자들은 이에 주눅이 들어 매우 힘들어 합니다. 오히려 독창적으로 설교해야겠다고 준비하다가 설교 본문 문맥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설교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설교자는 반드시 영해를 피해야 함). 

     

    저는 공과 대학의 교수로 30년 정도 일하였습니다. 공과 대학 교수의 ‘연구’(research)는 대개 다른 사람이 해 놓은 일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획기적인 이론과 작품을 만드는 일은 노벨상을 타는 소수의 과학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연구’ 즉 ‘research’란 말의 의미는 ‘다시 찾아내다’입니다. 여기의 다시 즉 ‘re’는 원래 강조를 위해 쓰이는 접두사입니다. 그러므로 연구란 과거의 발견에 기초해서 확실하게 더 정밀하게 조사하고 탐구하는 것입니다. 

     

    저는 설교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현시대 대다수 목회자들에게 필요한 ‘다시 찾는 설교’에 대해 제 경험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설교를 잘하기 위해서는 일단 성경 전체의 문맥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일관성 있게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신약 시대 교회와 구약 시대 이스라엘에 대한 확고한 구분이 필요합니다. 이런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메시지를 신약 시대 교회에 적용함으로써 은혜와 율법을 혼합하는 실수를 낳게 되고 이를 통해 성도들은 큰 혼란을 겪게 됩니다. 현시대 한국 성도들이 설교에 대해 호소하는 어려움은 많은 경우 여기서 발생합니다.  

     

    미국에 가서 10년 정도 살면서 공학을 공부하고 나중에 신대원에서 신학 공부를 하면서 저는 미국의 침례교 목사님들과 존 맥아더, 존 파이퍼 등 한국에 잘 알려진 목사님들이 설교를 위해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강조하는 성경 구절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디모데후서 2장 15절입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너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킹제임스 흠정역) 

     

    “Study to shew thyself approved unto God, a workman that needeth not to be ashamed, rightly dividing the word of truth.”(King James Version).

     

    그분들은 이 구절의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를 대상과 시대에 맞게 성경 말씀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미로 심히 강조합니다. 미국의 댈러스, 탈봇, 밥존스, 남침례 신학교 등에서 설교학 시간에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 구절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신약과 구약을 정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엄밀한 의미에서의 신약은 십자가 사건 이후부터입니다(눅22:20). 그래서 교회 시대 성도들에게 필요한 말씀들을 서신서를 중심으로 해서 잘 가르치고 설교하는 것, 이것이 대다수 유명한 설교자들이 취하는 방법입니다. 

     

    성경은 많이 읽었지만 저는 로이드 존스, 찰스 스펄전, 존 맥아더같이 타고난 설교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대다수 설교의 경우 독창적인 창작 작업을 통해 일주일에 20시간 이상씩 쓰며 한 편의 설교를 준비하는 ‘천상에서의 고상한 일’은 아예 포기하였습니다. 저는 주일 오전에 설교를 그리고 금요일 저녁과 주일 오후에는 강해를 합니다. 이 세 번의 설교/강해 모두 50여 분씩 합니다. 그런데 이 세 번을 다 저 홀로 창작 활동을 통해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현시대 최고의 설교자라 불리는 위어스비(Warren Wiersbe) 목사님의 설교 주석, <Preaching The Word>라는 설교자를 위한 설교 주석을 늘 참조하고 맥아더, 파이퍼 등 여러 목사님들의 유튜부 설교를 듣거나 혹은 번역된 책들을 탐구하며 우리 교회 실정에 맞게 내가 성경을 읽고 느낀 것을 첨가하여 논리와 열정을 가지고 전달합니다.
    이와 동시에 <PC Study Bible>, <Wordsearch Bible> 등의 영어 성경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여러 사람들의 주석과 설교 노트 등을 보고 본문 말씀을 문맥에 맞게 강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이 작업을 ‘다시 찾는 설교’라 부르고 싶습니다. 즉 ‘research’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위어스비, 맥아더, 파이퍼 등도 다 과거의 훌륭한 목사님들 – 예를 들어 찰스 스펄전, 조지 윗필드, 조나단 에드워즈 등 –의 글을 통해 혹은 직접 설교를 들음으로써 성경의 책들을 설교하고 강해하는 것을 터득하였으며 특별히 이들에게 주어진 탤런트를 거기에 더하여 성도들에게 기쁨을 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즉 사도 바울 이래로 약 2000년의 세월이 흐르며 훌륭한 설교자들의 설교들이 설교집 혹은 주석 등을 통해 전달되었고 현시대에는 이들의 과거 동영상이나 음성 자료들이 많은 이들에게 설교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모든 자료들을 잘 활용하여 내 것을 만든 뒤 전달하는 것, 이것이 저의 설교 방법입니다. 

     

    저의 경우 위어스비 목사님의 주석을 가장 많이 참고합니다. 다행히 그분의 몇몇 설교들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분의 설교를 직접 들어보면 말씀 선포자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위대함, 청중을 압도하는 힙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며 기독교 희락주의를 선포하는 파이퍼의 열정적인 설교를 들으면 그를 통해 살아 있는 하나님을 만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국내에서는 김남준 목사님께서 설교자들에게 필요한 책들을 가장 많이 지으셨습니다. <청중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설교자> 등은 참으로 감동을 주는 책입니다. 또한 정용섭 목사님의 설교 비평 책들도 읽어보면 설교 자체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분들이 설교에 대해 기록한 책들을 매우 많이 읽습니다. 제가 구매하는 책들의 다수가 설교에 대한 책들입니다. 

     

    저는 이런 방식으로 제가 설교하고 있음을 교회 사이트에 공표하고 설교 시간에 늘 언급합니다. 물론 저 자신이 독창적으로 우리 교회의 필요에 따라 창작하여 설교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저보다 훌륭한 설교자들을 잘 이해하고 우리 현실에 맞게 성경 전체를 강해하는 것이 저를 포함한 여러 성도들에게 유용하다고 믿습니다. 

     

    이런 식으로 저는 지금까지 성경의 대다수 책들을 강해하고 많은 것들을 설명하였고 유튜브에 2,000편정도 영상을 올렸습니다(하루 평균 접속자 수 3-4만 회). 또한 저는 모든 설교/강해 노트를 교회 사이트에 설교와 함께 올려놓았습니다. 나중에 혹시 다른 분들도 제 노트를 참조하고 발전시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그런데 이런 교과서들이 있다고 해서 모든 설교자들이 다 들리는 설교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설교자의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어떤 분이 이야기했듯이 배우들은 가짜를 연기하면서도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연기하는데 많은 목사들은 진짜를 설교하면서 가짜를 설명하듯 자신도 믿지 않는 듯한 투로 설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 이것이 설교자의 설교에서 드러나면 청중에게 들리는 설교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다음은 <Preaching The Word> Commentary 편집자인 휴즈(R. Kent Hughes) 목사님의 글입니다. 제목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설교자의 특성>입니다.

     

    예배 시 설교에서 설교자와 회중이 성령님에 의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기쁨을 경험하려면 반드시 다음의 세 가지 요소가 설교자에게 있어야 한다. 

     

    1. 로고스(Logos)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즉 우리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회중 앞에 섰을 때 설교자들은 일단 우리의 숙제를 한 것이다. 우리는 본문 구절들을 해석하고 의미를 찾아보며 문맥 안에서 그 안의 단어들의 뜻을 찾아내고 그 단어들이 회중에게 바르게 전달되도록 올바른 해석 방법에 의해 본문을 해석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설교하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설교하지 않고 하나님 자신의 말씀인 로고스 그 자체를 선포한다. 이 일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설교의 핵심이다. 

     

    2. 에토스(Ethos) 

     

    둘째는 에토스인데 이것은 곧 설교자 당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설교를 할 때 아주 치명적인 병이 있는데 그것은 거룩한 것들을 다룬다는 생각으로 당신의 손과 마음을 마비시켜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필립스 브룩스(Phillips Brooks)는 이것을 열차 안내원 비유를 통해 잘 보여 준다. 안내원은 다음 역에 도착하기 전에 큰 소리로 몇 차례 그 역의 이름을 알려준다. 그러고는 자기가 큰 소리로 몇 차례 그 역을 알려주었기에 지금 자기와 승객들이 그 역에 도착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브룩스는 설교는 반드시 인격체를 통해 진리를 전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우리가 전하는 진리를 우리가 다 구현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은 그것에 복종하려 하고 그것을 갈구하며 그것이 우리의 에토스(정신세계)의 일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청교도인 에임스(William Ames)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설교가 효력을 발휘하려 할 때 성경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꾸밈없이 설교자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에토스이다.” 설교자의 에토스가 그가 전하는 로고스를 뒷받침하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설교를 이룰 수 있다. 

     

    3. 파토스(Pathos) 

     

    마지막으로는 개인의 열정과 확신이다. 한번은 스코틀랜드의 철학자이자 불신자인 흄(David Hume)이 조지 윗필드(George Whitefield)의 설교를 들으러 가는데 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은 복음을 믿지 않는 것으로 저는 아는데요.” 그러자 흄이 대답하였다. “저는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는 믿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다! 설교자가 자기가 설교하는 것을 믿을 때에는 열정이 생기게 되어 있다. 확고한 믿음과 더불어 필수적인 열정이 있을 때 하나님이 그 설교를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설교 시 하나님의 기쁨은 로고스(말씀)와 에토스(설교자)와 파토스(설교자의 열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당신도 이 셋을 갖추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설교를 할 수 있고 그때에 회중 가운데 임하는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저도 지금까지 10여 년의 짧은 세월이지만 설교를 해 왔고 다른 이들의 설교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 짧은 기간을 통해 제가 몸으로 얻은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설교자가 아무리 지식이 많고 논리적으로 진리를 제시해도 회중에게 감화를 주는 설교는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가 행동도 반듯하고 가정생활도 바르게 하며 모든 면에서 원리와 원칙을 잘 지키는데도 성도들은 그의 설교에 의해 큰 감화를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가 설교단에 나오면 성도들은 의례히 “오늘도 바르게 살라고 이야기하겠지.”하고는 타성에 젖어 설교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립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설교자가 로고스 중심으로 설교한다고 하면서 에토스와 파토스가 없는 설교를 하기 때문입니다. 로고스만으로는 하나님과 회중의 기쁨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 경우 설교는 대개 성경 공부 스타일의 훈계/설명 설교가 되고 맙니다. 이런 식으로는 성도들의 감화를 이끌어내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에토스와 파토스는 설교자가 자기와 회중이 같은 세상에 산다는 것을 공유하는 데서 나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설교자들은 스스로 고고한 세상에 살면서 이 어둡고 부조리한 세상에 사는 성도들의 삶이 어떤지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경우 설교는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허공을 치게 됩니다. 

     

    “이 설교는 일차적으로 내게 하는 것이며 바로 나 자신이 그렇게 살기를 원합니다.”라는 에토스가 들어가야 설교가 살아나고 그러면 자연히 몸에서 퍼져 나오는 열정을 성도들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기쁨이 생기면서 회중은 말씀에 비추어 나도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부족한 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를 열정적으로 외치는 좋은 설교자들이 이 땅에 많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샬롬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dsjung@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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