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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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를 바로 보자. 위선자를 분별하자조회수 : 8455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년 8월 23일 13시 48분 36초
  • 안녕하세요?

     

    역사는 계속 반복되는데 다수의 국민들은 교훈을 받지 못합니다.

    무지한 국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역사를 통해, 성경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최순실/정유라 사건이 일어났을 때 게거품을 물고 달려들던 사람들이 조국 가족 사기단이라 불리는 자들의 파렴치한 행각에는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좌익이요, 위선자입니다.

    지혜로운 신자라면 이번 기회에 주변에 있는 이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목사, 성도들 가운데도 이런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풍성하신 은례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이 나라 위에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패스터

     

    조선은 어떻게 망하였던가?

     

    국가 미래보다 선거 승리에 올인하는 이 정권의 정파성은

    임진왜란 앞에서도 당파 싸움으로 치닫던 조선 조정에 뒤지지 않는다

     

    을사오적처럼 임진왜란에도 '5적(賊)'을 매긴다면 1번은 선조, 2번은 신료(臣僚)들 순일 것이다. 무능한 왕과 입만 살아 있는 신하들이 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외침을 알리는 숱한 정보가 있었는데도 선조의 조정은 한사코 무시했다. 일본에 정찰 다녀온 통신사 수뇌부 4명 중 정사 황윤길 포함, 3명이 "쳐들어온다"고 보고했다. 반대 의견은 부사 김성일 한 명뿐이었다. 그런데 조정은 3명의 판단을 묵살하고 소수 의견을 따랐다. 그렇게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전쟁이 두려운 나머지 눈을 감아 버리는 현실 도피 심리였을 것이다.

     

    조선은 한심한 나라였다. 왜군이 부산에 상륙한 지 나흘이 지나서야 조정에 첫 보고가 도착했다. 황망해진 조정이 군사를 긁어모았지만 모인 병력은 수백명에 불과했다. 왜군이 한양을 점령하는 데는 20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선조가 도성을 탈출하자 백성은 욕하며 궁궐에 불을 질렀다. 의주까지 도주한 선조가 애절하게 명(明)에 망명을 구걸한 대목은 차라리 눈을 감고 싶다. 선조는 국권(國權)보다 왕권의 안위에만 매달린 왕이었다. 왕은 무능하고 신하들은 말[言]로만 싸우는데 나라 지킬 군대는 없었다.

     

    임진왜란의 기록은 읽을수록 참담해진다. 선조와 신하들은 아군 등에 칼을 꽂는 자해마저 서슴지 않았다. 이순신을 모함해 삭탈관직하고 도원수 권율을 파직했다. 전라도 의병장 김덕령을 살해하고 경상도 의병 영웅 곽재우를 귀양 보냈다. 수많은 의병장이 목숨 걸고 칼을 들었지만 공신(功臣)으로 책봉 받은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대신 선조의 도주 행렬을 수행한 신하 120명이 줄줄이 논공행상을 꿰어찼다. 선조에겐 나라 지킨 군인보다 자기 패거리가 더 중요했다.

     

    조선은 현실 무시 관념론자들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성리학 이념에 빠져 실용을 배격하고 실력을 경시했으며 물적 생산력을 천대했다. 부국강병 대신 당파(黨派)를 지어 말과 명분의 싸움에 날밤을 새웠다. 리(理), 즉 성리학 도덕 체계를 세우면 나라가 저절로 지켜지는 듯 여겼다. 입으론 도덕과 윤리를 말하면서 뒤로는 백성을 개돼지로 여기며 사리사욕을 챙기는 성리학 위선자들로 넘쳤다. 왕도, 지배층도 가치가 전도된 '가상현실'에 살고 있었다.

     

    그래도 조선이 망하지 않은 것은 소수(少數)나마 현실을 직시한 실용주의자 그룹이 존재했던 덕분이다. 이순신과 류성룡·율곡 등이 그들이다. 이순신은 '정신력'이 아니라 '준비된 실력'으로 싸운 현실주의자였다. 류성룡은 신분제를 넘는 실용적 개혁책과 군량미 조달로 전쟁을 뒷받침했다.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장들 역시 활과 칼로 내 땅을 지키겠다는 자강 의식의 소유자였다. 임진왜란 리더십을 연구한 사회학자 송복은 이들을 '자강파(自强派)'로 규정했다.

     

    그 소수의 자강파마저 임진왜란이 끝남과 동시에 몰락했다. 이순신이 마지막 해전에서 전사하고, 같은 날 류성룡이 파면당했다. 냉대받은 의병장들은 초야에 묻혔다. 조정은 '관념파'로 불릴 만한 성리학 원리주의자들에게 장악됐고, 30여년 뒤 병자호란의 참화를 되풀이했다. 성리학 관념파들은 노론·숭명파·위정척사파로 이름만 바꿔 득세하며 '나라 같지도 않은 조선'을 300년이나 더 연명시켰다. 그리고 구한말엔 사대당이 되어 기어이 망국(亡國)으로 이끌었다. 조선은 빼앗기기 전에 지배층의 모순 때문에 스스로 망했다.

     

    문재인 정권은 조선의 성리학 관념파가 대한민국 주류 세력으로 이어진다는 역사관을 갖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저서에서 '노론 세력이 일제하 친일 세력이 되고 해방 후 반공 독재 세력이 되면서 기득권 주도 세력이 됐다'고 썼다. 현대사의 성취를 평가절하하려는 것이다. 이 정권이 말하는 '주류 교체론'이나 틈만 나면 벌이는 친일 프레임 씌우기도 이런 역사관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행태와 세계관의 궤적을 보면 문 정권이야말로 노론 관념파의 후예란 말이 딱 어울린다. 이 정권의 핵심은 '사대부 DNA'를 물려받은 운동권 관념주의자들이다. 낡은 가치관에 머문 운동권 정권이 실용보다 이념, 부국강병 대신 문약(文弱), 경제 확장 아닌 축소의 길을 치닫고 있다. 바깥세상에 눈감은 채 이념의 성채에 들어앉아 국제 고립과 국력의 쇠락을 자초하고 있다.

     

    조선의 관념파들은 국익보다 당파 이익을 우선했다. 일본의 보복 앞에서도 선거 승리만 따지는 문 정권의 기막힌 정치공학은 임진왜란 때의 당쟁을 연상케 한다. 적은 밖에 있는데 안에 적을 만들어 권력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국가 미래보다 정권 재창출에 올인하는 이 정권의 당파성은 조선조 성리학 원리주의자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자기편이란 이유로 부적격 법무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하는 것은 그 한 예일 뿐이다. 퇴행적 정파성에 갇힌 정권을 보며 가상현실에 빠졌던 조선 조정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9082203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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