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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 크리스천 성도 여러분, 애국 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입니다.   오늘은 대한민국의 위기에 대해 국민 여러분의 각성을 촉구합니다. 국가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그릇입니다.이 그릇이 깨지면 모든 것이 붕괴됩니다.   우리의 생명, 안보, 경제, 재산, 자식, 교육, 믿음 생활 등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다 무너져 버립니다.   지금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사회주의 붉은 세력에 의해 붕괴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시점에 이 위기를 알리는 사람이 심히 적습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목사들 가운데도 이 위기를 보고 경고의 나팔을 울리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저는 어제 우연히 전광훈 목사님의 절규하시는 방송을 보고 눈물이 솟았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저는 전광훈 목사님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전광훈 목사님이 국가의 몰락 앞에서 낙심한 상태로 절규하시는 것을 보고 조금이라도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그분의 영상을 올립니다.   저는 가난한 피난민 반공 포로 가정에 태어났으나 유학도 다녀왔습니다. 좋은 대학에서 교수 생활도 합니다. 목사 노릇도 합니다. 킹제임스 성경도 번역했습니다. 아이들도 잘 교육시켜 출가시켰습니다.   이 모든 것, 대한민국이라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있어서 가능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조국의 적들에 의해 붕괴되려 하고 있어 요즘 잠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우리 모두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전광훈 목사님의 이 절규의 음성을 듣고 우리 모두 나라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먼저 교회와 목사 성도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간구해야 합니다.   70년을 지켜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님의 권능을 통해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듣고 이 나라를 지켜 주실 것을 위해 밤낮으로 기도합시다.   적은 수의, 많은 수의 사람으로 하든 하나님께는 제약이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우리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켜 주실 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동수 목사   한기총 대표 회장 전광훈 목사 애국의 절규-교회와 목사들이여, 회개하고 나라를 살립시다   https://youtu.be/BPRwVCAm0R8
2019-09-05 14:34:35 | 관리자
<침묵의 대가>(그들이 왔을 때)/ 마르틴 니묄러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그다음 그들이 사회민주당원을 가뒀을 때 나는 침묵했다.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에. ​ 그다음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 그다음에 그들이 유대인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그러나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 내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1955초판)   독일 출신의 루터교 목사였던 저자가 1946년 프랑크푸르트에서 행한 연설의 일부를 시 형식으로 바꾼 것이다. 마르틴 니묄러(1892~1984)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 해군의 U보트 함장으로 복무했고 처음에는 개혁교회 목사이며 반공주의자로서 히틀러를 지지했다. 그러나 히틀러가 국가의 우월성을 종교처럼 맹신하자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많은 개신교 성직자들이 나치의 위협에 무릎을 꿇은 가운데서도 그는 반 히틀러 독일 성직자그룹의 리더가 되었다. 히틀러에 의해 체포된 그는 강제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1945년 연합군에 의해 풀려났고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독일 국민들의 참회와 화해를 이끄는 대변자로서 활동했다.   샬롬   패스터   한기총 대표 회장 전광훈 목사 애국의 절규-교회와 목사들이여, 회개하고 나라를 살립시다   https://youtu.be/BPRwVCAm0R8  
2019-09-05 14:32:17 | 관리자
안녕하세요?   좋은 글은 사람을 움직입니다. 그런데 좋은 글을 쓰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늘 기가 막히게 좋은 글을 보고 올립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절대로 조국 류가 추구하는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 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 '조국 지명은 우리 사회에 불행 중 다행',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도덕' 독점한 듯 선악 이분법 일삼던 좌파의 위선적 정체, '개념 유명인'들 실체 베일 벗은 文의 모습, 인터넷 여론 조작 현장… 조국 덕에 만천하 드러나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를 보고 사람들은 처음에는 분노했다. 그런데 이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조씨를 법무장관에 지명한 것은 우리 사회에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국 정치를 20년 이상 쥐고 흔드는 '운동권 세력'이 어떻게 변질됐는지 그 실체를 조국만큼 모든 국민에게 잘 알려준 사람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 조국만큼 잘 알려준 사람도 없었다. 자신도 위장 전입해놓고 남 위장 전입엔 징역형을 내린 대법원 판사 등 이 정권의 내로남불은 헤아릴 수조차 없지만 이번처럼 종합적, 충격적으로 정체를 드러낸 적은 없었다.   조국은 강남 좌파의 전형이었다. 돈이 많아도 얼마든지 좌파적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좌파 정치 세력은 상대를 정책적 견해차가 아니라 윤리·도덕적으로 매도해왔다. 나는 선(善)이고 너는 악(惡)이란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가짜 선, 위선이다. '강남 좌파' '부자 좌파'란 말엔 '위선자'란 뜻이 겹쳐질 수밖에 없다. 이승만이 세우고 박정희가 키운 나라에서 그 혜택을 누구보다 많이 본 사람들이 이승만 박정희 욕하고, 기업인 욕하고, 공무원 욕하고, 미국 욕한다. 부동산 투기 욕하고, 입시 사회 욕하면서 뒤로는 더 한다. 과거 한국 독재를 비판하면서 그보다 100배는 더한 북한 정권을 편든다. 그런데 그런 '멋진' 말을 최고급 와인을 마시면서 한다. 자기 생활은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으로 하면서 입에선 사회주의가 나온다. 그렇게 멋 부린 다음 강남의 널찍한 아파트로 귀가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한 사람도 보았다. 노동운동하다 나이 60이 넘은 지금도 시골 아파트 한 칸 없는 진짜 좌파 한 분은 "나는 내 말이 맞는다는 강남 좌파를 보면 구역질이 난다"고 했다.   북한 인민군은 선하고 미군은 살인마인 영화를 만들어 돈을 벌고 호화 생활을 한다. 재벌 기업이 그 숙주 역할을 한다. 북한 빨치산 미화 소설을 써 돈 번 사람도 좋은 와인 마시며 잘살고, 좌파 책으로 유명해진 출판사는 해외 MT도 간다고 한다. 좌파 진영으로 국회의원까지 했던 한 사람은 호텔 식당이 아니면 가질 않았다. 북한은 6·25 남침으로 서울을 점령한 후에 이런 사람들을 가장 먼저 제거했지만 이들은 북한 남침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조국 후보자의 위선 실체를 본 많은 사람이 "역겹다"고 했다. 집 한 칸 없는 노동운동가의 구역질을 이토록 많은 사람이 느끼게 된 것은 조국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조국은 이재정·이외수·유시민·박원순·조정래·안도현, 문 대통령의 아들, 장준하의 아들, 이른바 '개념 연예인' 등이 실제로 어떤 사람들인지도 잘 알게 해주었다. 이들은 어떤 이들에겐 우상과도 같았다. 그런데 이들이 조씨와 그 가족의 엄청난 위선, 부도덕, 불법 의혹을 맹목적으로 옹호한다. 아무리 같은 편이라도 정도가 있다. 그들의 그 잘난 '말'과 '글' 뒤에 감춰졌던 본색이 드러났다. 합리적인 척, 정의로운 척하는 사람이 실제 속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 희귀한 일이 조국을 통해 일어나고 있다.   조국은 청년층의 좌파에 대한 고정 선입견도 바꾸고 있다. 젊은 층이 좌파에 호감을 갖는 것은 흔히 있다. 그러나 독재 시대를 거친 한국의 역사 때문에 젊은 층엔 좌파가 도덕적이고 이타적이라는 선입견이 자리 잡았다. 희생하고 헌신하는 좌파도 많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위선자도 많이 있다. 사람들의 머리에서 고정관념을 걷어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이 어려운 일을 조국이 역설적으로 해내고 있다.   노무현·문재인 극렬 지지층이 벌이는 인터넷 여론 조작의 실상도 온 국민이 생생하게 목격했다. 드루킹 댓글 조작은 생중계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조국 힘내세요' 등 연이은 실시간 검색어 조작이 실제로 작동하는 현장이 공개되면서 이 극렬 집단의 존재와 행동 양식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조국에 반대하는 여론이 두 배 높은데 청와대 청원 게시판 여론은 그 정반대였다. 앞으로도 인터넷 여론 조작과 수상한 여론조사가 기승을 부리겠지만 국민은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정말 힘들 것으로 보였던 이런 일들이 조국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문 대통령의 외골수 성격은 알려졌지만 조국 임명을 강행할 정도인 줄은 몰랐다. '공감 능력 결여 아니냐'는 의문까지 든다. 과거 주사파 운동권이었던 한 사람은 문 대통령에 대해 '관념적 과격성을 갖고 있다'고 했다. 실제 운동권의 삶을 살지 않았으면서 책 읽고 운동권인 양하는   사람들은 행동이 아닌 머리로 하는 과격파라고 한다. 생각의 한 쪽을 닫아버린 이들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결정과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놀라는 사람들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지난 2년여가 그런 시간이었다. 국민이 막연하게 알고 있거나 잘못 알고 있던 많은 사실이 조국을 통해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됐다. '불행 중 다행' 이란 말이 틀리지 않는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04/2019090402991.html
2019-09-05 09:22:12 | 관리자
안녕하세요?   2019년 8월 31일 중앙일보 기사입니다.   “영어가 모국어인데도 『킹제임스성경』을 단 한 자도 읽지 않은 사람은 야만인에 가깝다.”   라틴어서 영어 독립 『킹제임스성경』…훈민정음에 버금 - 중앙일보   https://mnews.joins.com/article/23567073#home   참조하세요.   샬롬
2019-09-02 12:15:44 | 관리자
안녕하세요?   2019년 9월 1일부터 30여 회에 걸쳐 요한복음을 강해하려 합니다.   복음서 중에 영적인 의미를 가장 풍성히 포함하고 있는 대작을 강해하려고 마음 먹었으나 일이 여의치 않아 미루고 미루다가 이번 가을부터 하게 되었습니다.   위어스비, 파이퍼, 맥아더, 매튜 헨리, 럭크맨 등의 도움을 받아서 진행하려고 합니다.   현재 금요일에는 웨인 그루뎀의 <성경과 정치> 강해하고 있습니다. 아마 10월부터는 십계명 강해 그리고 에스겔서 맥잡기 등을 하려고 합니다.   이제 조금 더 하면 성경의 중요한 부분들을 모두 다루게 될 것 같습니다.   나중에는 성경의 모든 인물과 모든 장소에 대해서도 설명하려고 합니다.   우리 주님의 풍성하신 은혜와 긍휼을 간구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9-08-29 19:35:38 | 관리자
안녕하세요?   대한민국의 문제는 대한민국을 반대하는 자들이 정권을 잡은 데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시는 헌법에 명기된 대로 자유 민주주의 자유 시장 경제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회주의로 바꾸려 하는 자들에 의해 나라가 혼동을 겪고 있습니다.   다음 글은 우리 교인들이 기도할 제목을 잘 보여줍니다.   주님의 큰 은혜와 긍휼이 대한민국과 교회 위에 풍성히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패스터   --------    '진실의 순간' 맞은 운동권 전체주의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본질은 조국 개인 아닌 그가 상징한 좌파 기득권 세력… 총체적 민낯국민은 '진보 콤플렉스' 벗어나 양비론(兩非論)의 강박과 중도론의 유혹에서 자유롭게 됐다  개강 준비로 들뜰 무렵이지만 학교로 출근하는 발걸음은 별로 가볍지 않다. 이런 느낌의 기폭제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조국 교수다. 얼마 전 그가 교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부끄러운 동문' 1위를 차지하면서 교정은 뒤숭숭해졌다. '폴리페서'를 비판하는 입장과 '앙가주망'을 옹호하는 견해의 차이 때문이다. 최근 그를 둘러싸고 학교가 약간 더 술렁이는 듯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미동 아니면 약풍(弱風)이다. 아직도 대다수는 사태 추이를 지켜볼 뿐이다. 개입이나 참견 대신 '복지안동(伏地眼動)' 쪽을 택하는 것이다.   '부끄러운 동문' 순위를 둘러싸고 대학 내부가 어수선한 것 자체가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더 부끄러운 것은 같은 대학의 선배 학자가 낸 저서를 조 교수가 '쓰레기 같은 책' 또는 '구역질 나는 책'이라고 비난한 일이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이영훈 명예교수는 학문 공동체에 걸맞은 형식과 금도(襟度)부터 갖추라고 대응했다. 서울대 역사상 초유의 교수 사회 공개 정면충돌이다. 그럼에도 학내에는 이와 관련된 논쟁이나 토론 하나 변변히 보이지 않는다. 민감한 정치적 이슈라면 판단하지도 않고 행동하지도 않는 것을 처세술로 여기는 경향 때문이다.   과거 흔하디 흔한 연대 서명 하나 없고 숱하디숱한 시국 선언 하나 없는 것이 대학의 현주소다. 언제부턴가 교수들은 입조심과 말조심을 미덕으로 삼으며, 현실 정치에 대한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주변 경계와 자기 검열 및 자기 세뇌에 익숙해지면서 지사(志士)나 투사형 지식인은 천연기념물처럼 희귀해졌다. 악플과 신상 털기가 두려워 사회적 발언의 기회나 수위에도 극히 신중한 분위기이다. 이로써 지금은 전반적으로 지식인들의 책무 배임(背任) 시대다.   '속삭이는 사람들' - 이는 유토피아적 공동체를 열망한 볼셰비키 혁명기 소련의 평범한 개인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올랜도 파이지스는 스탈린 치하 거대한 사회적 실험장에서 보통 사람들이 가족, 이웃, 동료로서 살아온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문제는 지금 우리나라에 이와 비슷한 징후가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학교, 직장, 공원, 교회, 시장, 식당, 술집, 등산로 등에서 공적 대화를 점점 더 삼가는 모습이다. 적당히 보호색(保護色)을 쓰면서 자신의 주장과 정체를 가급적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전체주의는 결코 흘러간 과거 악몽이 아니다. 히틀러나 스탈린, 김일성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전체주의 이후의 시대를 사는 것이 확실한가'라고 물었던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확실히 옳았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누구보다 성공적으로 이뤄낸 대한민국에 이런 날벼락이 떨어질 줄 누가 예상했겠는가. 관제 이데올로기, 혐오와 배제의 정치, 배타적 민족주의는 디지털 모바일 시대의 감시 체제와 여론 조작, 언론 공모와 결합하면서 훨씬 엉큼해지고 은밀해졌다. 포퓰리즘의 만연은 전체주의 신드롬에 대한 자각조차 마비시키고 있다. 여기에 무기력한 야당과 해바라기 시민사회의 존재도 빠트릴 수 없다.   행여 집권 세력으로서는 진심으로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섬긴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언필칭 '포용 국가'고 '국민의 나라'며, '사람이 먼저'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정작 현실은 정반대다. 자신만 진리인 위선적 권력일수록 또한 자신만 정의로운 오만한 권력일수록, 포용은 멀어지고 국민은 쪼개질 뿐 아니라 사람이 이념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집단적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 사회는 한 명의 개인으로 사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체주의의 진정한 해악은 안보나 경제 실패 정도가 아니라 사회적 활기 및 체온 저하다.   그런데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법무장관 지명을 계기로 '죽은 시민의 사회'가 소생하고 '죽은 개인의 사회'가 회생할 수 있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의 청문회를 앞두고 '운동권 전체주의'가 마침내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본질은 조국 지명자 개인이 아니라 그가 상징해 왔던 좌파 기득권 세력의 총체적 민낯이다. 이번 일로 많은 국민은 여태까지의 막연한 '진보 콤플렉스'를 벗게 되었다. 양비론(兩非論)의 강박 혹은 중도론의 유혹으로부터도 자유롭게 되었다. 조국 후보자의 정치적 죽음과 삶은 이제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 한국 정치사의 결정적 변곡점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2019-08-28 10:43:27 | 관리자
안녕하세요?   역사를 바로 보는 일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특히 조선의 역사를 바로 보아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습니다.   좋은 글을 소개합니다.   샬롬   --------   反日을 해도 文 정권처럼 하면 미래가 없다   과거를 바꿀 수 없는 한 반일(反日) 정서는 사라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대로라면 누군가의 말처럼 가해와 피해의 역사는 천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을 듯하다. 과거를 잊은 자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진리다. 그런데 이상하다. 조선은 300년 동안 왜란(倭亂)을 곱씹으며 이미 망한 명나라의 혼령까지 모셨다. 그렇게 과거를 기억했는데 왜 미래가 없었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 한국의 역사 공간은 성역에 가깝다. '친일(親日) 탓에 나라가 망했고, 반일 덕에 나라가 일어섰다'는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런 사고는 신념일 뿐이다. 숭명(崇明)과 반일은 동전의 양면이었고 19세기 후반에도 반일 정서는 역사를 움직이는 강력한 에너지로 작동했다. 메이지유신 직후 서계(書契) 사건, 개항 파동, 임오군란, 동학농민운동, 아관파천 등 중대 사건의 배후엔 이 정서가 있었다. 친일도 있었다. 일본을 따라 자강(自强)을 추진한 개화파다. 이들은 19세기가 끝나기 전 조선에서 씨가 말랐다. 그런데 왜 조선은 다시 피해자로 전락했을까.   한국사엔 어려운 문제가 있다. 19세기 동북아 판도에 대한 세계사와의 시각 차이다. 한국사는 이 시기 동북아를 일본 제국주의의 확장과 침략 공간으로 해석한다. 20세기 초 국권 상실에 기초한 선악(善惡)의 이분법을 19세기 세계사로 소급·확대해 적용한 결과다. 하지만 세계사의 시각에서 당시 동북아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중화주의의 퇴조와 연해주를 삼킨 러시아의 대두였다. 적어도 세계 열강은 그렇게 인식했다.   지금 동북아를 둘러싼 한국과 세계의 부조화도 독특한 반일 정서에 기초한다. 21세기 동북아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은 중국 패권주의의 부활과 북핵(北核)이다. 이 도전에 한국과 미국, 미국과 일본이 동맹 관계로 얽혀 응전하고 있다. 중학생도 이 구도를 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미국 안보의 중요한 축인 일본과 싸우고 있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며 동맹을 보완하는 협정도 깼다. 세상을 거꾸로 읽는다. 손바닥 뒤집듯 안보 지형을 바꾼다. 매스컴은 그것이 정의(正義)인 양 떠들면서 권력에 아부한다. '윤치호 일기'에 기록된 19세기 미국 외교관의 말이 떠오른다. "조선 관리는 꿈결 속에 있는 듯하다."   당시 세계 최강의 영국은 동북아로 지배권을 넓혔다. 미국도 태평양을 건넜다. 아편전쟁과 페리의 흑선(黑船)이 상징하는 역사다. 두 강국의 이해는 한 지점에서 일치했다. 러시아의 남하(南下)를 막는 것이다. 영·미 편에서 시간을 벌면서 개혁으로 부국강병을 이루는 것이 당시 조선이 가야 할 현명한 길이었다. 일본이 방해하면 국왕이 선봉에 서서 죽기 살기로 싸우는 길을 택해야 했다. 그랬다면 이탈리아를 물고 늘어진 에티오피아처럼 불완전한 독립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의 집권자들은 반일을 명목으로 러시아를 끌어들여 한반도 안보 지형을 일거에 뒤집었다. 세계 최강 세력이 가장 싫어하는 방식으로 '반일'한 것이다. 조선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이 공백을 일본이 파고들었다. 그때 영·미는 '실망과 우려'를 말로 하지 않았다. 영국은 거문도를 점령했다.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용인했다. 이것이 19세기 세계사의 맥락에서 본 망국의 원인이다. 반일을 안 해서 망한 게 아니라 잘못된 방식으로 반일을 해서 망한 것이다. 오직 친일을 해서 망한 게 아니라 강자에게 빌붙어 친중·친일·친미·친러로 정신없이 안보 지형을 바꾸다가 망한 것이다.   조선의 집권자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일본처럼 개혁하기도 싫었고 일본과 목숨 걸고 싸우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개혁은 나라와 백성을 가산(家産)으로 취급한 절대 왕권의 약화를 뜻했다. 국왕과 척족은 나라에 파도가 밀려들 때마다 국익을 외면하고 정파(政派) 이익과 사익을 앞세웠다. 반일조차 그런 식으로 했다. 지금 문 정권의 반일은 국익을 위한 것인가, 사익을 위한 것인가.   중국의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는 당시 조선을 이렇게 기록했다. '중국당이 일본당으로 바뀌고, 러시아당으로 바뀌었다가 또 일본당으  로 바뀌었다. 오직 강한 것을 바라보고, 오직 나를 비호해줄 수 있는 것을 따랐다.' 이렇게 덧붙인다. '(조선은) 한번 모욕당하면 팔을 걷어붙이고 일어나지만 그 성냄은 얼마 안 가서 그치고 만다. 한번 그치면 죽은 뱀처럼 건드려도 움직이지 않는다.'   19세기 역사는 백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경고한다. 반일을 해도 문 정권처럼 하면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27/2019082703258.html
2019-08-28 10:38:21 | 관리자
거대한 거짓의 산이 대한민국을 완전히 덮고 있습니다. 사단, 마귀는 거짓의 아비, 거짓말쟁이 라고 하는것 같이 거짓의 영이 심지어 교회와 성도들 까지 장악하고 있으므로 이 세상은 거짓말의 왕국이 되어 버렸습니다. 거짓이 진실 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짓이 진실이 되어 버린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대하7:14 말씀 처럼 교회가, 우리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얼굴을 구하고, 악한 길에서 떠나야....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이 땅을 고쳐 주실 것입니다. 해 위에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만이 이 거짓의 왕국을 고치시고 새롭게 해주실수가 있습니다.    
2019-08-27 12:27:50 | 심성보
언론의 보도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어찌표현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거짓은 언론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진실을 알려면 찾아서 보아야 하는 현실 정말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이 거대한 거짓의 비늘이 벗겨지기를 기도합니다...
2019-08-27 11:11:15 | 최지나
세상이 거짓말의 산이다.   이제는 국민이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 또 넘어가면 답이 없다.   어젯밤도 붉은 자들 제거해 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국민들이 깨어나기를...   -------  "소득 개선 효과 역대 최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지난 2분기 상·하위층 간 소득 격차가 역대 2분기 중 최악을 기록했지만 청와대 경제수석은 "소득 개선에 대한 정부의 정책 효과가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이토록 사실과 정반대 주장을 할 수 있는지 믿어지지 않는다. 그는 최하위 20%층의 소득이 1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선 점을 근거로 들었지만, 소득 증가액은 1년 전 대비 600원, 증가율로 치면 0.04%에 불과하다. 그것도 일해서 번 근로소득은 15%나 감소했는데 국민 세금으로 지원해준 게 19% 늘어나 겨우 현상 유지를 했을 뿐이다. 그 결과 상위 20%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5분위 배율은 5.3배로 증가, 2분기 기준으로 통계 작성 후 최대를 기록했다. "정책 효과가 역대 최고"라니, 그 정책은 '빈익빈 부익부' 정책인가.   앞서 청와대 산하 소득주도성장특위는 소득 40~80% 계층의 소득증가율이 전체 평균치(3.8%)를 상회한다는 점을 근거로 경제가 '중산층 성장형'으로 변화했다고 했다. 그러나 국제 기준으로 산출한 중산층 비중은 문 정부 출범 후 2년 사이 63%에서 58%로 5%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전형적인 중산층 일자리인 제조업 일자리가 2년 새 15만개 줄고, 주 36시간 이상 취업자가 1년 새 38만명이나 줄었는데 중산층이 늘어났다는 말이 나오나.   정부·여당은 불리한 진실은 외면하고 숫자들을 짜깁기해 엉뚱한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근 1년간 '재정 긴축' 탓에 경제에 부담을 줬다"고 했다. 2년 연속 초대형 '수퍼 예산'을 짜고 추경도 세 차례나 편성해 세금을 원 없이 펑펑 쓰고도   '긴축'을 했다니 아연해질 따름이다. 세금을 퍼부어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리스·아르헨티나 같은 만성 부실 국가가 왜 생기나. 세수에는 이미 적신호가 켜졌다. 금리가 역대 최저치에 근접해 있는 상황에서 적자 국채까지 대량으로 찍어 재정 여력까지 바닥을 내면 나중에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대응할 수단이 없게 된다. 나라 살림의 근간을 흔들지 말라.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26/2019082603014.html
2019-08-27 10:56:50 | 관리자
조로남불과 함께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이라는 말도 나오는데 자신이 그동안 했던말에 반한 행동들을 지적하는 말이다 남을 판단할때는 얼마나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는지 그 기준으로 자신을 보면 정말 어떠할까? 공의의 하나님앞에 서면 내가 다른사람을 보는 그 동일한 기준으로 나도 보실텐데. 어제의 말씀이 생각난다.두려움으로 거룩하게 살자. 내가 남을 판단하는 것 만큼만 살자.    
2019-08-26 17:42:45 | 최지나
  인간은 나쁜것은  그대로 빨리 배운다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배운다  조선시대  영조  탕평책으로 인재를 고루 등용했고  자기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왕으로 알고 있는  영조 재위기간도 가장 길었던  왕이었다  그시대나  자금 현재나  내로남불은 여전하다  어떤 조로남불이 터질지 양파의 속을 알수가 없다  위선과 교만을  가장 미워하시고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더하시는 주님께   국가의  안위를 맡깁니다 보호하여 주시고  지켜주소서   위선자는 자기 입으로 자기 이웃을  망하게 하나    의인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출되리로다. (잠11:9)
2019-08-26 15:32:50 | 유계월
안녕하세요?   하나님과 사람이 모두 싫어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크게 저주를 선포한 그룹이 바로 위선자 그룹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위선을 버리기 위해 애를 써야 합니다.   요즘 위선의 극치를 보여 주는 사람이 등장해서 조로남불이라는 말이 유행하네요.    우리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 [박종인의 땅의 歷史] 금주령 어긴 자는 처형하고 자신은 술을 마셨다   [178] 개혁군주 영조의 '내로남불' 등극한 지 만 2년째 되던 서기 1726년 10월 13일, 조선 21대 왕 영조가 종묘에 행차했다. 선왕 경종 삼년상을 마치고 신위를 종묘에 모신 영조는 이날 오후 창덕궁 인정전에서 3대 국정지표를 발표했다.(1726년 10월 13일 '영조실록') 좌의정 홍치중(洪致中)이 대독한 국정지표는 세 가지였다.   첫째는 계붕당(戒朋黨)이다. 편가르기 때려치우고 정치 똑바로 하라는 주문이다. 둘째는 계사치(戒奢侈)다. "금과 옥은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으니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아끼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계숭음(戒崇飮)이다. "술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광약(狂藥)이니 엄금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이날부터 1776년 영조가 죽을 때까지 50년 동안 조선은 화합의 정치와 검소한 도덕적 삶과 주정뱅이 없는 세상이 됐다? 그럴 리가 없었다. 문제는 입으로 내뱉은 도덕률 뒤에 숨은 위선(僞善)이었다.   18세기 조선의 가난과 사치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가난하게 살았다. 아시아 요업산업을 선도했던 조선은 전쟁 때 일본군에 도공들을 집단으로 빼앗겼다. 농사지을 땅은 급감했고, 나라 재정도 엉망이었다. 한번 파괴된 기반시설은 회복이 느렸다. 세월이 흘러 숙종(재위 1674~1720)대가 되니 태평성대가 왔다. 민간 생산이 서서히 늘고 이에 따라 상류층이 부의 상징으로 사치를 부릴 그 무렵, 영조가 등극한 것이다.   서기 1726년 음력 10월 13일 창덕궁 인정전에서 영조가 3대 국정지표를 발표했다. 당쟁을 금하고 사치를 금하고 술을 금하여 나라를 바르게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법과 개혁과 규제는 적용되는 곳이 따로 있었다. 법을 어긴 측근에게 법은 적용되지 않았고 개혁군주 영조는 신하들과 수시로 술을 즐겼다. 입으로는 온 세상이 함께 사는 이상 사회를 선언했지만, 그때 세상은 그저 '그들의 천국'이었다. /박종인 기자 엄한 국정지표에 따라 부녀자들은 화려한 가체(加髢)가 금지되고 족두리를 써야 했다.(1756년 1월 16일 '영조실록') 금실로 수놓은 비단 또한 금지됐다. 민간에 화려한 그릇이 유행하자 영조는 값비싼 청화 안료를 쓰는 청화백자 제작을 금지하고 질 떨어지는 철화백자만 생산하도록 명했다.(1754년 7월 17일 '영조실록') 사치금지법은 재위 내내 사회 전반에 시행됐다. 술 먹고 사형 당한 관리   재위 7년째, 영조는 다시 한 번 금주령을 강화했다. "왜 사대부 양반에게는 법을 적용하지 않고 상민과 천민에게만 집행하는가. 세력 있는 자는 적발하지 못하니, 근본을 버려두는구나[可謂捨本治末者也]."(1731년 6월 10일 '영조실록') 몸통은 놔두고 깃털만 건드리니, 언젠가는 혼쭐을 내겠다는 경고였다.   마침내 간 큰 고위 관리가 시범 케이스로 적발됐다. 함경 남병사 윤구연이 술을 마시다 걸린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윤구연 집에서 술 냄새가 나는 빈 항아리가 나온 것이다. 심문은 영조가 직접 했다. 장소는 서울 남대문이었다.(1762년 9월 17일 '영조실록') 궁을 떠나 남대문에 도착한 영조는 약방 제조가 바친 탕제를 마시고 문초를 시작했다.   "왜 술을 마셨나." 윤구연은 "술이 아니라 매[鷹] 알을 담가뒀다"고 답했다. 영조는 "술 냄새 나는 매 알도 있나"라며 일단 곤장을 한 대 쳤다. 윤구연이 "이 몸의 첩과 첩의 어미와 종이 술을 담갔다"고 실토했다. 영조는 다시 곤장을 세 대 치고 이리 말했다. "너는 불효에 불충을 저지르고 군법까지 위반했다. 어찌 피하겠는가." 윤구연이 늘어놓는 장황한 변명을 끝까지 들은 영조는 "금주령을 어긴 죄인 목을 잘라 장대에 걸라"고 명했다.   사헌부 교리 강필리와 사간원 사간 여선응, 홍문관 지평 최청이 "목숨은 중하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왕은 "너희가 군왕을 살인자라 부르는가"라며 세 사람을 파면했다. 영의정, 우의정, 좌의정이 또 처벌을 만류했다. 영조는 "법은 만인에게 적용되는 것[法者 非予之法 卽古法]"이라며 이들 또한 그 자리에서 파면했다. 그 사이 나발과 북 소리가 울려 퍼졌고 윤구연은 목이 잘렸다. 영조는 윤구연 첩을 함경도 갑산 관비로 보내고 비변사에 있는 아들 윤범행과 칠곡부사인 형 윤경연 또한 파직시켰다.(1762년 9월 17일 '승정원일기') 아무도 반항하지 못했다.   민생사범 단속령-'여가탈입'의 금지   임진왜란 이후 한성 인구는 급격히 증가했다. 당연히 주택난도 심화됐다. 지방에서 벼슬자리를 얻어 상경한 관리들은 집이 없었다. 상경 관리들 가운데에 버르장머리 없고 포악한 사람들은 아무 여염집[閭家·민가]에 들어가 집을 빼앗고 살았다. 주민을 채찍으로 때려 내쫓고 집을 빼앗기도 했다.(1615년 8월 2일 '광해군일기') 이를 '여가탈입(閭家奪入)'이라 한다. 여염집을 빼앗아 들어간다는 뜻이다. 17세기 호적상 한성 인구 75%가 상민과 천민이었으니(이근호, '17, 8세기 여가탈입을 통해 본 한성부의 주택문제'), 백성 주거권과 재산권은 언제든지 25%인 양반에 의해 폭력적으로 박탈될 위기에 놓여 있었다. 영조 즉위 후에도 이런 불법은 여전했다.   영조는 즉위와 함께 여가탈입 금지를 특별히 지시했다.(1724년 11월 1일 '영조실록') 하지만 민가를 빼앗은 관리는 2년 금고형, 일반 사대부는 과거 응시 자격 박탈 6년형이라는 형벌이 규정된 때는 재위 30년째인 1754년이었다.(1754년 7월 16일 '영조실록') 한두 명 처벌로 없애기에는 여가탈입이 너무 많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영조 7년 사간원 정언 이성효가 "여가탈입 금지령을 정승 한 명이 어겼는데, 아무도 보고를 하지 않았다"며 "재조사를 통해 처벌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이에 영조는 "승정원에서 조사해 의법 조치하라"고 명했다. 다음 날 금지령을 어긴 정승 정체가 밝혀졌다. 바로 5년 전 3대 국정지표를 대독한 당시 좌의정이자 현 영의정 홍치중이 아닌가.(1731년 7월 15일, 16일 '영조실록')   개혁의 민낯 '내로남불'   왕이 말했다. "법 적용에 어찌 차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 금령을 신칙하는 뜻은 폐지할 수가 없다. 관련자들을 노역형에 처한 뒤 유배시키라." 과연 엄한 개혁 군주였다. 하지만 홍치중에 대해서는 그 처분이 달랐다. 영조가 말했다. "홍치중에게 선유(宣諭)하게 하여 대명(待命)하지 말도록 하라."   '백성에게 임금 뜻을 알리게 하고 그로써 처벌을 면하게 한다'는 뜻이다. 구두 경고도 아닌, 스스로 반성문 한번 쓰게 하고 사건을 덮겠다는 뜻이다. 우승지 조명신이 "임금과 신하의 의리는 생각하지 않으십니까(不念堂陛之義乎)?" 하고 물었다. 홍치중은 "오해가 있었다"고 변명했다. 영조는 '온화한 비답을 내려 위로하고[上溫批慰諭]' 관련자들에게 내렸던 노역형과 유배형도 취소시켰다.(1731년 7월 16일 '영조실록') 바로 한 달 전 "세력 있는 자는 적발하지 못하니, 근본을 버려두는구나"라고 내뱉었던 탄식은 간 곳 없었다. 개혁보다는 '군신 간 의리'가 먼저였다.   "송절차가 지금은 참 맑구나"   영조의 열네 번째 딸 화유옹주 묘 부장품. 청나라에서 수입한 황채장미문병(黃彩薔薇紋甁)이다. 조선은 당시 수입은 물론 고급 자기 생산도 금지된 나라였다. /국립고궁박물관 1755년 9월 영조는 "식혜를 예주(醴酒)라 하니 이 또한 술이다. 제사상에 술 대신 올리라"며 제수용 술을 금지했다. 대신 영조는 술 대신 송절차(松節茶)를 즐겼다. "고금(古今)에 어찌 송절차의 잔치가 있겠는가?"라며 금주를 실천하는 모습을 스스로 대견해할 정도였다.(1766년 8월 16일 '영조실록')   그런데 이 송절차가 정체불명이었다. 차를 마시면 왕이 이상해지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홍건이라는 종9품 무관이 강론에 참석했다. 왕이 그에게 물었다. "'정흉모(丁胸矛)'라는 창을 아느냐." 홍건이 머뭇대자 영조는 병조판서에게 곤장을 치게 했다. 곤장을 거의 반쯤 쳤을 때에도 묵묵무답이었다. 영조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요상한 놈이다. 내가 직접 심문해 혼내 주겠다." 옆에 모시던 사람들이 새파랗게 질렸다. 홍건이 천천히 아뢰었다. "성상 말씀이 평소 알고 있던 것과 달라 즉시 대답하지 못했나이다." 의외로 홍건은 정흉모라는 무기에 대해 해박하게 답했다. 영조는 급히 그를 서천현감에 임용했다.'(성대중, '청성잡기'4 '성언·醒言', '초관 홍건의 기개와 영조')   말단 무관에게 화를 내고 평소와 달리 행동하더니 종9품 말직을 종6품 현감으로 즉석에서 인사 조치하는 기행. 그 비정상적인 행동에 대해 '청성잡기'에는 '영조가 마침 송절차를 마신 터라 약간 취한 채 말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술이었다.   신하들에게 송절차를 권하며 "취해서 쓰러지더라도 허물 삼지 않겠다"고 한 사람도 영조였고(1769년 2월 26일 '영조실록'), "전에는 탁했으나 지금은 맑고, 물을 많이 섞으니 담백하다[釀法勝前 昔濁今淸 則取多和水 故其味猶淡]"고 한 사람도 영조였다.(1769년 6월 12일 '승정원일기') "법은 만인에게 적용되는 것"이라고 서릿발처럼 선언한 사람도, 개혁 군주 영조였다. 만인 속에 본인은 없었다.   윤구연 처형되던 날 죽다 산 사내   훗날 다산 정약용은 윤구연을 처형하던 날 '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누락된 사실 하나를 자기 문집에 기록해놓았다. '임금께서 숭례문에 납시어 윤구연 머리를 베어 도성 사람들에게 보이고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술 마신 자가 있거든 바로 고하라. 저와 같이 죽일 것이다." 그때 대장 이주국이 임금을 호위하고 있었는데 앞으로 나와 엎드려 말하기를 "소신은 얼마 전 술 한 잔을 마셨으니 감히 숨기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였다. 임금께서는 좌우를 둘러보며 다른 말을 하셨다[上顧左右而言他]. 그 자리에 있던 여러 신하들은 다리를 덜덜 떨었다[羣臣在班者 爲之股栗].'(정약용, 여유당전서 보유, '혼돈록·餛飩錄' 3 '이대장·李大將')   술을 먹었다고 자수한 사람이 하필이면 자기가 아끼던 무관이었다. 왕은 못 들은 척하고 딴청을 피웠다. 신하들은 그 위선 앞에서 아무 말 못하고 떨 뿐이었다. 집은 고관대작에게 빼앗기고 장식은 사치라 금지됐으며 술은 목숨 걸고 마셔야 하고 고급 그릇을 쓰면 비난받던 시대였다.   "우리는 즐긴다"   1776년 개혁 군주가 죽었다. 이듬해 열네   번째 딸 화유옹주가 죽었다. 1992년 경기도 부천 옹주와 남편 황인점 합장묘에서 옥비녀, 그릇 따위 화려한 부장품 30여 점이 쏟아졌다. 모두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들이었다. 그릇도 10여 점이 나왔다. 이 가운데 황채장미문병(黃彩薔薇紋甁)과 녹유리장경각병(綠琉璃長頸角甁)은 청나라 수입품이었다. 꽃병들이 이리 말한다. "저들은 처벌하고, 우리는 즐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21/2019082100063.html
2019-08-26 10:12:19 | 관리자
말이나 하지 말든지 입으로 그토록 외치던 공평과 정의는 어디다 두었는지 조국,김제동 등 이런 사람들의 위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상황을 보며 그런 사람을 지명하고 나라가 이 상황인데도 한마디도 하지 않는 문대통령이 너무나 무섭습니다. 미국에서 지소미아 관련 공식문서에 문정권은 거짓말정권이다 라고 말하는 상황이 무섭습니다. 광명의 천사처럼 보여지던 이들의 속성은 결국 거짓말 이였네요. 거짓의 아비는 마귀인데 이들의 편을 들어 동조하는것은 결국 하나님 편이 아닌것이겠지요.... 저도 그당시는 몰라서 동조했으나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고 보니 진실이 보입니다. 잘못된 것임을 알았으면 빨리 돌아서야지요 그리고 행동까지 이어가야지요.    
2019-08-24 11:03:35 | 최지나
안녕하세요?   역사는 계속 반복되는데 다수의 국민들은 교훈을 받지 못합니다. 무지한 국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역사를 통해, 성경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최순실/정유라 사건이 일어났을 때 게거품을 물고 달려들던 사람들이 조국 가족 사기단이라 불리는 자들의 파렴치한 행각에는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좌익이요, 위선자입니다. 지혜로운 신자라면 이번 기회에 주변에 있는 이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목사, 성도들 가운데도 이런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풍성하신 은례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이 나라 위에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패스터   조선은 어떻게 망하였던가?   국가 미래보다 선거 승리에 올인하는 이 정권의 정파성은 임진왜란 앞에서도 당파 싸움으로 치닫던 조선 조정에 뒤지지 않는다   을사오적처럼 임진왜란에도 '5적(賊)'을 매긴다면 1번은 선조, 2번은 신료(臣僚)들 순일 것이다. 무능한 왕과 입만 살아 있는 신하들이 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외침을 알리는 숱한 정보가 있었는데도 선조의 조정은 한사코 무시했다. 일본에 정찰 다녀온 통신사 수뇌부 4명 중 정사 황윤길 포함, 3명이 "쳐들어온다"고 보고했다. 반대 의견은 부사 김성일 한 명뿐이었다. 그런데 조정은 3명의 판단을 묵살하고 소수 의견을 따랐다. 그렇게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전쟁이 두려운 나머지 눈을 감아 버리는 현실 도피 심리였을 것이다.   조선은 한심한 나라였다. 왜군이 부산에 상륙한 지 나흘이 지나서야 조정에 첫 보고가 도착했다. 황망해진 조정이 군사를 긁어모았지만 모인 병력은 수백명에 불과했다. 왜군이 한양을 점령하는 데는 20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선조가 도성을 탈출하자 백성은 욕하며 궁궐에 불을 질렀다. 의주까지 도주한 선조가 애절하게 명(明)에 망명을 구걸한 대목은 차라리 눈을 감고 싶다. 선조는 국권(國權)보다 왕권의 안위에만 매달린 왕이었다. 왕은 무능하고 신하들은 말[言]로만 싸우는데 나라 지킬 군대는 없었다.   임진왜란의 기록은 읽을수록 참담해진다. 선조와 신하들은 아군 등에 칼을 꽂는 자해마저 서슴지 않았다. 이순신을 모함해 삭탈관직하고 도원수 권율을 파직했다. 전라도 의병장 김덕령을 살해하고 경상도 의병 영웅 곽재우를 귀양 보냈다. 수많은 의병장이 목숨 걸고 칼을 들었지만 공신(功臣)으로 책봉 받은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대신 선조의 도주 행렬을 수행한 신하 120명이 줄줄이 논공행상을 꿰어찼다. 선조에겐 나라 지킨 군인보다 자기 패거리가 더 중요했다.   조선은 현실 무시 관념론자들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성리학 이념에 빠져 실용을 배격하고 실력을 경시했으며 물적 생산력을 천대했다. 부국강병 대신 당파(黨派)를 지어 말과 명분의 싸움에 날밤을 새웠다. 리(理), 즉 성리학 도덕 체계를 세우면 나라가 저절로 지켜지는 듯 여겼다. 입으론 도덕과 윤리를 말하면서 뒤로는 백성을 개돼지로 여기며 사리사욕을 챙기는 성리학 위선자들로 넘쳤다. 왕도, 지배층도 가치가 전도된 '가상현실'에 살고 있었다.   그래도 조선이 망하지 않은 것은 소수(少數)나마 현실을 직시한 실용주의자 그룹이 존재했던 덕분이다. 이순신과 류성룡·율곡 등이 그들이다. 이순신은 '정신력'이 아니라 '준비된 실력'으로 싸운 현실주의자였다. 류성룡은 신분제를 넘는 실용적 개혁책과 군량미 조달로 전쟁을 뒷받침했다.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장들 역시 활과 칼로 내 땅을 지키겠다는 자강 의식의 소유자였다. 임진왜란 리더십을 연구한 사회학자 송복은 이들을 '자강파(自强派)'로 규정했다.   그 소수의 자강파마저 임진왜란이 끝남과 동시에 몰락했다. 이순신이 마지막 해전에서 전사하고, 같은 날 류성룡이 파면당했다. 냉대받은 의병장들은 초야에 묻혔다. 조정은 '관념파'로 불릴 만한 성리학 원리주의자들에게 장악됐고, 30여년 뒤 병자호란의 참화를 되풀이했다. 성리학 관념파들은 노론·숭명파·위정척사파로 이름만 바꿔 득세하며 '나라 같지도 않은 조선'을 300년이나 더 연명시켰다. 그리고 구한말엔 사대당이 되어 기어이 망국(亡國)으로 이끌었다. 조선은 빼앗기기 전에 지배층의 모순 때문에 스스로 망했다.   문재인 정권은 조선의 성리학 관념파가 대한민국 주류 세력으로 이어진다는 역사관을 갖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저서에서 '노론 세력이 일제하 친일 세력이 되고 해방 후 반공 독재 세력이 되면서 기득권 주도 세력이 됐다'고 썼다. 현대사의 성취를 평가절하하려는 것이다. 이 정권이 말하는 '주류 교체론'이나 틈만 나면 벌이는 친일 프레임 씌우기도 이런 역사관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행태와 세계관의 궤적을 보면 문 정권이야말로 노론 관념파의 후예란 말이 딱 어울린다. 이 정권의 핵심은 '사대부 DNA'를 물려받은 운동권 관념주의자들이다. 낡은 가치관에 머문 운동권 정권이 실용보다 이념, 부국강병 대신 문약(文弱), 경제 확장 아닌 축소의 길을 치닫고 있다. 바깥세상에 눈감은 채 이념의 성채에 들어앉아 국제 고립과 국력의 쇠락을 자초하고 있다.   조선의 관념파들은 국익보다 당파 이익을 우선했다. 일본의 보복 앞에서도 선거 승리만 따지는 문 정권의 기막힌 정치공학은 임진왜란 때의 당쟁을 연상케 한다. 적은 밖에 있는데 안에 적을 만들어 권력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국가 미래보다 정권 재창출에 올인하는 이 정권의 당파성은 조선조 성리학 원리주의자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자기편이란 이유로 부적격 법무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하는 것은 그 한 예일 뿐이다. 퇴행적 정파성에 갇힌 정권을 보며 가상현실에 빠졌던 조선 조정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9082203452  
2019-08-23 13:48:36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