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를 잘 몰라서 미국 대선토론회를 한번 보았습니다.
미 대선 3차 토론회를 자막처리해 유튜브에 올려놓은 영상입니다.
https://youtu.be/UFW5mtOcB-U
part1-part4, 그리고 final까지 모두 5개의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part1을 링크하였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연결되는 영상을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영상을 보니,
트럼프와 힐러리의 노선간에 중간지점이 없더군요.
가치와 사상의 차이가 극명함을 토론 발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토론에서 힐러리는 LGBT(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를
적극 옹호하는 등 인본주의자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국내 언론에는 매우 괴짜이며 막말을 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토론회라는 공식적인 자리여서인지는 몰라도 나름의 논리로 정제된 표현을 하고 있어
선입견을 갖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토론 중 힐러리에게 "You're nasty woman!"이라는 다소 격한 표현을 하긴 하더군요.)
https://youtu.be/iOA5klznFA0
참고로 위의 링크는 트럼프가 언론에서 수십년간 정치와 관련한 발언을 모은 영상입니다.
토론회에서 나타난 그의 주장은 이미 오랫동안 언론에 드러낸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늘자 신문에는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힐러리를 앞선 것으로 보도됐네요~
http://media.daum.net/issue/1487/newsview?issueId=1487&newsid=20161101220940485
2016-11-02 11:22:45 | 정진철
어제 옆의 동료 교수와 저녁을 같이 먹었습니다.이분도 그리스도인인데 요즘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해 의아하다고 합니다.그분의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왜 미국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다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트럼프를 지지하는가?”물론 여기서 그분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이란 보수적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미국에는 침례교의 교세가 가장 강하고(약 65%), 침례교회는 전통적으로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기에 하나님의 거룩함에 기초한 보수적(혹은 근본적)인 믿음을 지지합니다.아이러니하게 현재 미국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이고 인본적인 교단은 장로교와 감리교, 그리고 루터교와 성공회 등입니다(한국과 달리 장로교와 감리교의 교세는 그리 크지 않음). 특히 PCA(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로 알려진 미국 장로교회는 동성애를 가장 열렬히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이런 자유주의 성향의 신도들을 빼면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다 보수적 성향을 띠고 그 결과 공화당을 지지합니다.그런데 한국 언론에 보도되는 기사들은 트럼프가 이혼을 몇 차례 했고(사실임), 또 아직까지 입증되지 않았지만 성폭행을 했다, 성추문이 있다는 등의 뉴스만 두드러지게 강조합니다. 이렇다 보니 심지어 그리스도인들도 트럼프는 간음한 사람이므로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왜 미국 그리스도인의 다수가 이런 사람을 지지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사실 힐러리 클린턴이 국가의 기밀 정보를 수없이 유출시켜 선거를 열흘 앞두고 FBI의 조사를 받고 있는 사실, 즉 범죄자가 되어 대통령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트럼프의 뉴스에 비해 거의 보도하지 않습니다. 보도된다 해도 트럼프의 뉴스만큼 자극성이나 선정성이 없고, 그 잘못이 무슨 느낌인지 와 닿지 않아 가십이 되지 않는 편입니다.http://naver.me/xo2aa67l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므로 저 역시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될지 모릅니다. 누가 되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다만 이 글에서는 미국의 대다수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합니다.1. 현재 미국에서 가장 탄압받는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빌 클린턴과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정권을 거치면서 기독교는 내외로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슬람교도로 알려진 오바마 대통령은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였습니다. 실제로는 그가 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법원이 한 것이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이것에 적극 찬성하였기에 가능하였습니다.미국 대법원은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얼마 전에 보수적 성향의 대법관이 사망하여 현재 보수와 진보가 4대 4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번에 선출되는 대통령이 한 명을 추천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성향의 대법관이 임명되느냐에 따라 앞으로 20-30년 동안 미국의 영적/정신적 체계가 적지 않게 바뀔 것입니다. 클린턴이 되면 급격하게 자유주의 쪽으로 흘러갈 것이고, 트럼프가 되면 공언하였듯이 보수적 인사를 임명할 것입니다. 그리고 동성 결혼 합법화를 무효로 만들고자 할 것입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LGBT(남녀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세력이 확산되면서 공중 화장실, 샤워실 등에서 남녀 구분을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남녀의 구분 자체가 인권 침해라고 주장합니다.이런 실정이다 보니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이 커다란 상실감과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고 그래서 이런 문제를 저지하겠다는 트럼프를, 인성 등이 부족하지만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지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2. 미국의 가치와 정신 세계의 근본은 처음부터 기독교였습니다. 그 결과 지난 200년 이상 유대인들을 보호하는 일에 미국이 가장 앞장섰습니다. 그런데 오바마 정권이 지속되는 동안 그가 친 이란 정책을 폈기에 유대인들과 이스라엘 국가가 상당히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의 이란 핵문제 타결(사실은 타협)은 북한 핵문제와 같이 불투명한 부분이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이란이 슬금슬금 핵무기를 만들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의 존립 자체가 불투명해지기 때문에 네타냐후 이스라엘 수상 등이 오바마 정권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이에 성경의 원리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을 보호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안전 보장을 이행할 대통령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트럼프는 당선 시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수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고 공약한 것입니다. 모든 나라들이 자국 대사관은 상대방 국가의 수도에 둡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 아랍 국가들을 의식한 모든 나라들이 대사관을 수도인 예루살렘에 두지 못하고 텔아비브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예루살렘으로 대사관을 옮겨 그곳이 이스라엘의 수도임을 온 천하에 알리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이 거의 독단적으로 합의한 이란 핵 문제 타협안을 파기하고 이란을 적대국으로 몰아 이스라엘을 대적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공언하였습니다.미국인들에게 이번 선거는 기독교 믿음의 자유, LGBT 확산 저지, 이스라엘 보호 등의 근본적인 이슈들을 결정하는 기회가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시끄러운 것입니다.트럼프가 되면 기독교의 가치가 조금 더 오랫동안 보전될 것이고 클린턴이 되면 그 반대의 가치가 급속히 확산될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가장 큰 댈러스 제일 침례교회의 로버트 제프리스(Robert Jeffress) 목사 같은 사람은 CNN 인터뷰 등을 통해 공공연하게 그를 지지하면서 성도들의 지지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즉 트럼프의 과거 행적이 옳아서가 아니라 그가 추구하는 것들이 기독교의 보수적 가치와 더 부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를 지지합니다. 달리 말하면 그것이 클린턴을 낙선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https://youtu.be/nXHbZu7Hnls앞으로 우리나라도 대선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현재 후보군의 성향은 한결같이 클린턴의 성향과 비슷합니다. 그런 사람이 당선되면 기독교 믿음의 자유, 동성애 확산, 상대적 윤리관의 확산 등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기독교 가치관을 지킬 수 있는 지도자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나이 든 사람은 타격이 덜하겠지만, 인본주의와 자유주의 경향의 리더가 서게 되면 지금 자라는 아이들의 앞날이 대단히 힘들어질 것입니다. 믿음 생활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긍휼이 풍성하신 주님께서 누구든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을 미국에도, 한국에도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으로서 다음과 같은 책무를 성실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1 그러므로 내가 권면하노니 무엇보다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중보와 감사를 드리되 2 왕들과 권위를 가진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것은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따르며 정직한 가운데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자 함이라(딤전2:1-2). 샬롬패스터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674
2016-11-01 15:33:55 | 관리자
안녕하세요?
포도주와 포도즙을 설명해도 워낙 포도주에 익숙한 분들이 많아 오늘은 실제 사진을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와인(wine)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6&write_id=540
저는 7년 전에 동료 교수 3명과 함께 소위 이스라엘(이집트) 성지 순례라는 여행을 갔습니다. 요르단 강 구경을 마쳤더니 여행 가이드가
토속 상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데려가서 이것저것 구경을 했습니다. 한국 여행자들- 대부분 성도들 - 은 대개 포도주가 있는 곳으로 가서 한두 병씩
사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아주 진귀한 포도주가 있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거기에는 커다랗게 다음과 같은 표지가 붙어 있습니다.
<Communion wine 0%
vol.>
이것을 번역하면 <주의 만찬용 와인, 알코올 도수 0%>입니다.
즉 유대인 상인들은 다른 나라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만찬에 쓰는 와인에 알코올이 들어가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알코올 0%
와인’이라는 표지를 붙여 놓고 포도즙을 판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주의 만찬은 유월절 전 날 밤에 주님께서 구약의 유월절을 신약의 규례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12장의 이집트 탈출 기사를 보면 유월절에 이어 곧바로 1주일 동안 지키는 무교절이 나오고 이때에는 이스라엘 온 집에서 누룩을
제거하여야 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급히 탈출하느라 빵에 누룩을 넣어 부풀리지 못하였습니다.
17 첫째 달 곧 그 달 십사일 저녁부터 그 달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누룩 없는 빵을 먹을 것이요, 19 이레 동안 너희
집에 누룩이 있지 않게 할지니라. 누구든지 누룩 있는 것을 먹으면 바로 그 혼은 타국인이든지 이 땅에서 태어난 자든지 이스라엘 회중에게서
끊어지리니 20 너희는 누룩을 넣은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말고 너희 모든 처소에서 누룩 없는 빵을 먹을지니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이들이 유월절에 쓴 빵과 와인은 다 누룩이 들지 않은 빵과 포도즙(혹은 포도주스)이었습니다.
누룩은 성경에서 죄와 악을 상징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고린도전서 5장에서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기술하였습니다.
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선하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뜨게 함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7 그러므로 너희는 누룩
없는 자들인즉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제거하라.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물이 되셨느니라.
8 그러므로 우리가 그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의와 사악함의 누룩으로도 말며 오직 순수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빵으로
하자.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요?
이래서 성경 신자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누룩이 들지 않은 빵과 포도즙을 가지고 주의 만찬을 행합니다. 미국의 독립침례교회들은 말할 것도
없이 다 포도즙을 씁니다.
이 둘은 순수한 주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데 어찌 여기에 누룩 혹은 알코올을 넣을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이것은 현시대 유대인 상인들- 불신자들 - 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성경의 확고한 진리를 보여 주신 것에 감사하며 누룩이 들지 않은 빵과 즙으로 만찬을 행하면
좋겠습니다.
현재 와인을 포도즙과 포도주로 명확히 구분한 우리말 성경은 킹제임스 흠정역밖에 없습니다. 확실한 성경의 진리가 바른 성경을 통해 널리
전달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샬롬
패스터
2016-10-31 09:34:17 | 관리자
'어떤 사람' '어떤 교회' ~ 교회 적응의 모든 것을 함축한 말이네요.
교회의 주체가 나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말이기도 하구요.
예수님께 잘 어울리는 좋은 신부가 되기 위해 나를 돌아봅니다.
좋은 글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10-29 00:02:18 | 김상희
나는, 이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되려하는가...?
그리고 그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내자신이 그만큼 노력하고 있는가, 아니면 타인에 의해 내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겠지, 하고 안일한 생각에 나를 변화 시키지 못했다고 비판만 하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봅니다.
2016-10-28 18:54:03 | 박순호
안녕하세요?어떤 분이 교회 안에서 생기는 이런 저런 문제들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글을 주셨습니다.우리 교회의 가치를 짧게 매우 잘 요약한 것 같아 소개합니다.--------------------우리 교회는 '어떤 사람'이 되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잘 적응할 수 있는 교회에요.'어떤 교회'를 찾는 사람들은 적응하기 힘들어요.‘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는 매주 메시지를 통해 수도 없이 자주 가르쳐 주고 있어요.그러나 ‘어떤 교회’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그 모든 메시지가 그다지 효력이 없는 것 같아요.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어야 추구하는 그런 교회가 되는 건데..--------------------즉 마음속에 자신만의 교회를 그려놓고 우리 교회를 그렇게 만들어가려고 하면 이 교회에서 적응하기가 어렵습니다.많은 분들이 주님의 진리 안에서 자유와 평안 그리고 절제와 질서를 배우고 실천하면 좋겠습니다.샬롬패스터
2016-10-28 14:56:02 | 관리자
안녕하세요?목사는 성도들의 영적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제 삶이 주님의 은혜 안에서 풍성해야 하지요. 2016년에는 여러 일이 많아서 저도 힘든 가운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매주 성경을 강해하고 설교하면서 매번 주님의 은혜와 긍휼을 느끼며 감사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무엘기 강해를 통해 다윗의 일생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서 인생이 무엇인가를 좀 더 확실히 알고 겸손히 살아야 함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몇 가지 광고를 드립니다.1. 이번 주일에는 교회 건물 헌금을 드립니다. 올해 주님께서 선하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대로 최선을 다해 감사드리는 기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조만간 교회 건물 설계 등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news&write_id=20982. 이번 주에는 오후 예배 후에 대청소가 있으니 청소 복장 및 도구 등을 가져오시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news&write_id=21023. 다음 주부터 기존 회원들의 회원 갱신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갱신의 목적은 이 교회를 바로 이해하고 바르게 섬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므로 회원들이 믿음과 권리, 의무 등에 대해 바로 알고 동질감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갱신이 끝나면 아직 회원 가입하지 못한 분들에게 기회를 드릴 것입니다. 4. 교회 안에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믿음을 흔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니 이런 사례를 겪은 분은 교회에 알려주시기 바랍니다.“영혼의 자유를 허용하면서 믿음의 순수성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요!”5. 대한민국이 건국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특히 국가 안보가 북한과 종북 세력의 선동과 위협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밤낮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합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무입니다.스펄전 목사님도 성도들의 기도가 없이는 본인과 교회가 유지될 수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니 저야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목사와 그의 가족, 성경 교정 책무를 생각하며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주님께서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큰 평안을 주실 것을 간절히 원합니다.샬롬패스터
2016-10-28 14:47:12 | 관리자
'시편의 아름다움' 이라는 제목이 정감있게 와 닿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 중에서도 위로와 용기와 기쁨을 주는 시편 말씀들이 제 삶 가운데 제 마음 중심에서 움직이시는 말씀이 되어 말씀으로 누리는 풍요한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시편을 자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2016-10-26 11:17:46 | 김상희
늘 자신을 돌아보고 취약함을 드러내야 한다고
강단에서 선포하심에 대해 취약함을 드러내는
겸손의 용기로 솔선수범하시는 모습이
성도들에게 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2016-10-26 11:05:34 | 김상희
시편의 아름다움안녕하세요?어제 시편 42편을 읽다가 다음 글을 찾게 되었습니다.시편에 대해 아주 잘 정리한 글이라 소개하고 싶습니다.어려움을 당할 때,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싶을 때, 기쁨을 표현하고 싶을 때 등 여러 경우에 다음 말씀들을 상고하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저는 밑에 있는 저자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다만 요약이 잘 되어 있어 나누려고 올립니다.또 저자가 개역성경을 사용하였으므로 원글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그대로 올립니다. 샬롬패스터----------------------내 인생에 시편이 없었다면-기독공보 [3060호] 2016.09.27.인생에는 누구에게나 굴곡이 있다. 여정은 탄탄대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론 좁은 길, 골목 길, 갈림 길, 숲속 길, 낭떠러지 곁길, 아득한 길, 미끄러운 비탈 길, 오르막 길, 내리막 길, 즐거운 길, 눈물 골짜기, 아골 골짜기를 걸어가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통과해야 만 했을 때 결단을 요구받았다.첫째 '하나님만을 신뢰할 것', 둘째 '불평하지 말 것', 셋째 '광야 넘어 가나안 땅이 있음을 믿을 것', 넷째 '함께 할 것'이다.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크고 무섭고 광대한 광야 앞에서 좌절하고 넘어지고 불평했다. 내가 살아온 인생도 결코 쉽지 않았다. 소아마비, 대학 실패, 동생 죽음, 가정의 실패, 유학의 어려움, 경제적 곤궁, 고독.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어려움들은 어느새 아련한 추억이 되었고 현재는 떠오르는 태양처럼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비상하고 있다.'어떻게 이 어려움을 이겨냈을 수 있었을까' 생각할 때 시편 말씀이 떠올랐다.1. 삶이 형통하기를 원할 때 시편 1편 2~3절을 읽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2. 힘 잃고 지쳐있을 때 시편 18편 1~2절을 읽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3.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할 때 시편 23편 1~4절을 읽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4. 이 밖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면 어떤 복이 임하나를 알고 싶을 때 시편 34편 7~9절을 읽었다."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5. 마음의 소원이 있을 때 시편 37편 4절을 읽었고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6. 고독 가운에 있을 때 시편 42편 1~2절을 읽었고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7. 인생이 별 것 아님을 알고 싶을 때 시편 90편 9~12절을 읽었다."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8.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시편 103편 3~5절을 읽었고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9. 말씀의 능력을 믿고 싶을 때 시편 107편 20절을 읽었다.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10. 고난을 당할 때 시편 119편 50절을 읽었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11. 범죄하는 영혼이 되고 싶지 않기에 시편 119편 11절을 읽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12. 앞길에 장애물을 만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시편 119편 165절을 읽었고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13. 경제적인 곤궁을 겪을 때 시편 121편 1~2절을,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14. 이방 땅에 있을 때 시편 137편 1~4절을 읽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우리에게 시편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큰 복이다. 우리보다 더 어려웠던 신앙의 사람들이 우리처럼 광야 인생을 걸어가면서 어려움 만날 때 마다 극복했던 신앙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보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편 때문에 마음 든든하다. 나를 살리신 시편 말씀을 사랑한다. <평광교회-조성욱 목사님>http://m.pckworld.com/news/articleView.html?idxno=72082
2016-10-25 17:10:43 | 관리자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통하여 달라지는 점은 그 말씀이 다른 이가 아닌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혹 아쉬움을 가지고 강단에서 내려온다 할지라도 제게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만이 남아있답니다. 뒤엣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해 달려가시길 응원해드리고 싶습니다.^^ 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2016-10-25 11:00:53 | 박혜영
자기반성 자기연마가 있는 사랑교회 멤버가 되어 감사하네요.
우리 모두 노력해요.
2016-10-25 09:36:24 | 오혜미
오늘 하루도 영과 진리로 기도하며 섬기겠습니다~
2016-10-25 08:46:30 | 목영주
설교유감! 대단히 감사합니다.
문득 큰 교훈의 선물을 듬뿍 받고 보니 행복에 겹습니다.
목사님의 겸손한 심령 위에 주님의 평강이 늘 충만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2016-10-24 23:31:18 | 최상기
"형제들아, 우리를 위해 기도하라.(살전 5:25)"
목사님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2016-10-24 23:28:05 | 박진태
그렇군요. 예배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예수님께서 선포해 주신 것이군요.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인 말씀으로 다가 왔을 것 같습니다. ..익숙한 말씀이라 생각했지만, 늘 새로움과 기쁨을 주는게 주의 말씀인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2016-10-24 22:39:57 | 오광일
목사의 설교 비평목사가 되다 보니 여러 사람들의 설교를 비평의 시각으로 보게 됩니다.제 아내는 늘 저 스스로 제 설교를 비평하고 더 잘하라고 충고합니다.어제는 설교를 한 뒤 후회를 많이 하였습니다.https://youtu.be/NyEzSHGjU2U충분히 전할 것을 적어갔음에도 시간을 초과하고 마지막에 에센스를 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날은 밤에 잠들기가 조금 힘듭니다.제 설교의 특징은 성경 전체를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어제도 성전 역사를 전하다 보니 금세 주어진 시간이 다 흘렀습니다.또 지난주 설교를 앞에 요약하였는데 그것이 또한 길었습니다.이러다 보니 더 잘했어야 한다는 유감이 많이 든 하루였습니다.구약과 신약을 이야기하면서 끝부분에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쳤습니다.그것은 신약시대에는 성도 자체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점입니다.성전은 하나님이 거하는 곳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령 하나님께서 영원히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리니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가 곧 그 성전이니라”(고전3:16-17).그래서 이제 우리는 다음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요4:19-24).사마리아 여자가 그분께 말하였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보니 선생님은 대언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경배하였는데 당신들은 이르기를, 사람들이 마땅히 경배해야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나이다.”이때에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셨습니다.“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너희가 이 산에서도 [아버지]께 경배하지 아니하고 예루살렘에서도 경배하지 아니할 때가 이르느니라.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에게 경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경배하는 것을 아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이라. 그러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그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사마리아 여자는 구약의 성전 예배를 언급하였고 예수님은 신약의 예배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끝에 대조되어 설교되었어야 했습니다.이 부분이 미진해서 대단히 유감스럽습니다.다음부터는 50분에 설교를 마치도록 노력하겠습니다.긴 설교를 듣느라 고생하셨습니다.부족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샬롬패스터
2016-10-24 15:59:06 | 관리자
팀 켈러의 <설교>(Preaching): 도서출판 두란노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book&write_id=235
목차:
Part 1. 말씀을 섬기는 설교 ─ 설교자는 성경 본문의 진리를 향한 책임이 있다
Chapter 1. ‘성경 말씀’을 설교하라 전체 성경의 맥락 안에서 강해 설교를 하라
Chapter 2. 매번 복음을 설교하라 복음을 설교하는 건,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이다
Chapter 3. 모든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본문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설교하는 6가지 실천법
Part 2.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설교 ─ 설교자는 청중의 삶을 향한 책임이 있다
Chapter 4. 몸담고 있는 문화를 향해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주위 문화와 공명하면서 저항하라
Chapter 5. 시대정신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후기-현대의 저변을 흐르는 문화 내러티브 검증하기
Chapter 6. 마음에 닿게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설교의 상황화가 이뤄지면 청중이 변한다
Part 3. 성령을 덧입은 설교 ─ 설교자의 삶과 인격에 성령이 오셔야 한다
Chapter 7. 설교가 ‘들리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설교’보다 ‘설교자로서의 삶’을 더욱 힘써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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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켈러 목사의 책 <설교>의 서문과 같은 글입니다. <진리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고민하는 이들에게>라는 제목과 내용이 매우 좋아 소개합니다.
팀 켈러는 현 시대 뉴욕에서 큰 부흥을 일으키는 목사입니다. 배울 것이 책에 상당히 많습니다. 좋은 설교자가 되기 원하는 분들이 읽으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진리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말씀 사역의 세 가지 레벨
호주 신학자 피터 애덤(Peter Adam)은 우리가 “설교”라고 부르는 것 즉 주일날 한자리에 모인 회중을 향한 공식적인 대중 연설이, 성경에서 유일하게 “말씀 사역”(행 6:2, 4 참조)이라는 표현을 쓴 형태라고 논한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의 현장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이 그분의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으실 것이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대언]할 것이다’라는 선지자 요엘의 말을 인용했다(행 2:17 참조),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신약 신학사전)에서 게르하르트 프리드리히(Gerhard Friedrich)는 영어 신약성경에 “preaching”(전도, 복음 전파, 설교) 혹은 “proclaiming”(복음 전파, 선포)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가 최소 33가지라고 밝힌다.
애덤이 조사한 바로는, 이 단어들 전부가 대중 연설 행위를 지칭하고 있지는 않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8장 4절은 사도들 말고도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여기저기 다니며 메시아를 선포했다고 기록한다. 이 말은 모든 신자가 청중 앞에 일어서서 설교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를 집으로 데려와 그리스도의 말씀을 설명해 주었다(행 18:26 참조).
성경에서 우리는 최소한 세 가지 레벨의 ‘말씀 사역’을 구분할 수 있다. 바울은 모든 신자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고, 또한 모든 지혜로 서로 가르치며 권면할 것을 당부한다(골 3:16 참조).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르침’(디다스칼리아, didaskalia; 무언가를 지도하는 활동을 지칭하는 헬라어)과 ‘권면’(누쎄테어, noutheteo; 삶의 변화를 촉구하는 강한 조언을 일컫는 헬라어)을 통해 성경의 교훈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주로 일대일 대화 속에서 이루어지며, 비공식적이지만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말씀 사역의 가장 기초 형태이다. 이 형태를 ‘레벨 1’이라고 부르자.
다양한 말씀 사역을 스펙트럼 모양으로 펼친다면, 보다 형식을 갖춘 공식적인 형태의 끝자락에 ‘설교’가 있다. 말하자면 회중을 항해 선포하는 대중 설교나 성경 강해인데, 이를 ‘레벨 3’이라고 부르겠다. 사도행전에 이런 형태의 설교가 많이 소개되어 있다. 대체로 베드로와 바울의 설교가 이에 해당하고, 여기에 이스라엘 역사를 요약하는 스데반의 연설 정도가 추가된다. 사도행전이 워낙 많은 대중 연설을 소개하기 때문에,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의 관점에서 초대교회의 발전은 사실상 설교의 발전과 궤를 같이 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비공식적인 기독교적 대화’와 ‘공식적인 대중 설교’사이에, 말씀 사역의 ‘레벨 2’가 존재한다. 사도 베드로는 ‘말하기’의 영적 은사에 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벧전4:10-11)
베드로는 영적 은사에 관해 말할 때 두 가지 매우 일반적인 단어를 사용한다. 첫째는 말하기를 가리키는 헬라어 ‘랄레인’(lalein)이다. 신약의 나머지 부분에서 이 단어는 누구나 하는 단순하고도 일상적인 말을 지칭한다(마12:36; 엡4:25; 약1:19 참조). 설교 사역을 경우도 있는데, 예수님(마12:46; 13:10 참조)이나 바울(고후12:19 참조)의 설교를 서술할 때 사용된다. 그렇다면 위 말씀에서 베드로가 의미한 바는 무엇일까?
한편 로마서 12장, 에베소서 4장, 고린도전서 12, 14장에 소개된 바울의 은사 목록을 감안하면서 이 단락을 살펴보면, ‘말씀 사역의 은사’라는 총체적인 범주 안에는, 주일날 회중을 향해 선포하는 대중 설교 방식 외에, 다양하게 기능하는 은사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개인적인 권면이나 상담, 전도, 개인 혹은 그룹 단위의 교육이 포함된다.
성경학자 피터 데이비즈(Peter Davids)는, 베드로가 ‘말하기’의 영적 은사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리스도인 사이의 일상적인 대화를 말하는 게 아니고 ……[목회자]나 다른 교회 직분자들의 활동만을 일컫고 있지도 않으며”, 오히려 상담과 지도, 가르침과 복음저도와 같은 여러 “언어적 은사”를 가진 모든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고 결론짓는다. 이 사역의 범주 안에는 설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과 대화가 포함되고, 토의를 인도하는 것도 포함된다.
베드로는 대중 앞에서 말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여타 형식으로 말씀을 전하는 사람도 그들의 과업을 신중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을 가르칠 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 같이”(벧전4:11) 말해야 한다. 데이비즈는 “‘같이’(as)라는 단어가 그들 자신의 말과 하나님 말씀 사이에 미세한 간격을 띄운다”라고 지적한다. 누구도 자신의 가르침을 성경 계시와 동일한 권위로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베드로는 한 가지 놀라운 주장을 내놓는다. 성경의 가르침을 전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단지 그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서는 안 되며,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 설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떤 그리스도인이라도 진리를 전할 때면 그들이 이해한바 성경에 계시된 그대로 전해야 한다. 그렇게 성경의 의미를 충실하게 설명한다면, 듣는 이들은 그 강해 속에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바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듣는 이가 단지 인간적인 재주의 산물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비공식적이고 개인적인 만남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그것을 풀이하고 적용해 줄 수 있을 만큼, 성경의 메시지를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레벨 1). 멀리 설교(레벨 3)까지는 아니더라도 레벨 2 수준의 말씀 사역을 수행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거기에는 더 심도 있는 준비와 전달 기술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레벨 2에는 글쓰기, 블로그 활동, 성경공부반이나 소그룹 인도, 멘토링, 신앙적 이슈에 관한 공개 토론회 진행 등을 들 수 있다.
이 책의 목표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전달하려는 모든 그리스도인, 특히 레벨 2와 레벨 3 수준에서 전하려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주는 것이다.
대체할 수 없는 설교만의 사명이 있다.
오직 설교만이 말씀 사역이라는 비성경적인 믿음에 사로잡히는 것은 위험하다. 피터 애덤이 말하듯,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짐, 즉 성경이 다른 모든 형태의 말씀 사역에 기대하는 과업을 오로지 설교에 부담 지우는”격이 될 것이다. 어떤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모든 삶의 변혁(요 17:17; 골 3:16-17; 엡 5:18-20 참조)이 오직 설교를 통해서만 나온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최고의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 자신이 그리스도를 닮아 갈 것이라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우리 곁에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딤후 2:15) 우리를 격려하고, 지도하고, 위로해 줄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하다. 또 글로 우리 신앙의 성숙을 도와줄 기독교 작가들의 책도 있어야 한다. 교회 바깥에 복음이 필요한 자들에게 다가갈 방도가 오직 설교라고 기대하는 것도 옳지 않다. 내가 신앙을 갖게 된 것도 누군가의 설교나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책을 통해서였다. (혹 이 말에 놀란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교회 말씀 사역의 모든 짐을 주일 설교가 홀로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교회 사역에 있어 설교에 너무 과도한 짐을 지우고 있다는 애덤의 지적은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그런데 어쩌면 오늘날 교회가 당면한 가장 큰 위험은 이게 아닌지도 모른다. 우리는 권위에 대해 극도로 저항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공적 선포에 드리운 자그마한 권위의 향취에도 많은 이가 저항감을 드러낸다.
‘진리’라는 말 자체에 과민 반응을 보이기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선 상당한 전달 기술이 요구된다. 혹여 이런 현실 자체가 복음 사역을 위해 교회가 굳게 지켜내야 할 설교의 중대한 본질을 이미 놓치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은지 심히 우려스럽다.
에드먼드 클라우니(Ednund Clowney)는 베드로전서 4장 10절에 대해 쓴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특정인이 아니라-옮긴이 주)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말씀에 대해 경의를 품고 분별하고, 성령의 도움을 구하며 그것을 다른 이에게 전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하나님의 말씀을 …… 설교하기 위해 성령의 특별한 은사를 받는 이들이 있다. …… 하나님의 양무리를 돌보고 먹이는 특별한 직무를 위해서 말이다(벧전 5:2 참조). 교권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자칫 교회가 양무리의 부목자(under-shepherds)로 부름 받은 이들이 담당하는 말씀 사역의 중요성을 망각할 위험이 있다.
여기서 크라우니는 회중을 향해 말씀을 선포하는 것과, 단지 소그룹 성경 공부를 인도하는 것 사이의 ‘아무런’ 질적인 차이를 보지 못하는 처사를 경고한다. 이 둘의 차이는 단지 형식이나 절차상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참석한 사람의 숫자나 모임 장소의 규모, 혹은 연사의 발성이나 말의 빠르기가 차이 나는 게 아니다.
청중을 향해 설교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설교와 성경공부, 나아가 설교와 강의 사이에는 무언가 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감지한다. 사도행전에 소개된 베드로와 스데반, 바울의 연설을 살펴보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 …… 같이”(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옮긴이 주) 메시지를 선포했을 때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나타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영이 공식적인 예배 모임에 부여하신 고유한 권위를 통해 나타나는 능력이다.
다양한 형태의 말씀 사역이 늘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라는 특별한 공식적 사역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 피터 애덤은 교회의 복음 사역은 “강대상 중심이되, 강대상에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정리하며 절묘하게 균형을 맞춘다.
이렇듯 말씀 사역에는 세 종류의 레벨이 있다. 셋 모두 중요하고 서로를 지지한다. 그리스도인 모임에서 그리스도를 공식적으로 설교하는 것(레벨 3)은, 하나님이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백성을 세우시는 고유한 방식으로서 레벨 1과 레벨 2에서 더욱더 유기적인 말씀 사역이 가능하게 하는 토대를 마련한다. 마찬가지로, 레벨 1과 레벨 2에서의 충실하고 숙련된 소통은 주님의 백성이 설교를 보다 더 잘 받아들이게 준비시킨다.
이 책은 갈수록 회의적인 시대 속에서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에게 삶을 변화시키는 성경의 진리를 전할 방도를 고민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책이다. 특히 현장 설교자들과 교사들을 위한 개론과 입문서가 될 것이다.
2016-10-19 12:02:46 | 관리자
안녕하세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는 영어 성경을 읽을 때 인명이나 지명이 익숙하지 않고 또 발음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미국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처음 접하는 경우 인명 지명은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실 영어 설교를 들을 때 인명 지명만 귀에 들어와도 큰 도움이 됩니다. 설교의 많은 부분이 인명 지명을 사용하여 전개되므로 이명 지명을 익숙하게 들을 수 있으면 영어 설교를 듣는 데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좋은 앱이 있어 소개합니다. 안드로이드폰에서는 구글 플레이, 아이폰에서는 앱스토어에 가서 “Biblical Pronunciations”라고 치면 성경의 거의 모든 인명 지명을 발음해 주는 앱이 나옵니다.
간단히 설치하고 사용해 보세요.
안드로이드폰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followmemobile.biblicalpronunciations&hl=ko
아이폰https://itunes.apple.com/kr/app/biblical-pronunciations/id970048667?mt=8 특히 중고등학교 아이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샬롬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2016-10-15 20:38:01 | 관리자
사람은 한 번 이 땅에 태어나 한 번 죽고 그 뒤에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가 영원의 관점을 갖는다면 7-80년의 인생을 좀 더 가치 있게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많은 것을 참고 절제해야 합니다.
그러면 삶이 대단히 단순해지고 어떤 때는 너무 단조로워서 왜 사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또한 전혀 예상치 못한 대적하는 자들이 나타나 심히 괴롭게 만들 때도 있습니다.더불어 일이 예상대로 안 되어 몹시 초조하고 마음을 졸이게 될 때도 있습니다. 골리앗을 죽이고 하나님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은 뒤에, 자기의 장인인 사울의 핍박이 도를 넘어 매일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에 다윗은 자기의 이런 신세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주}께서 살아 계심과 네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와 죽음 사이에는 단 한 걸음만 있느니라(삼상20:3). 그러나 그는 근성을 가지고 무려 10년 이상의 인고의 시간을 보낸 뒤에 결국 이스라엘의 선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가는 곳마다 핍박받을 때의 심정을 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너는 악을 행하는 자들로 인하여 초조해하지 말며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부러워하지 말라. 그들은 곧 풀같이 베일 것이요, 푸른 채소같이 시들리로다(시37:1-2). 하나님은 공의(righteousness)의 하나님입니다. 오늘 잠언을 읽다 보니 귀한 말씀이 있어 나눕니다. 사악한 자는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는 것 같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아니하나 의로운 자는 영존하는 기초가 되느니라(잠10:25). 성경을 사랑하는 성도들 모두가 21세기를 살면서 이 세대를 섬기며 영존하는 기초를 놓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사악한 자들은 아침 안개처럼 곧 사라질 것입니다. 샬롬 패스터 정동수사랑침례교회
2016-09-26 17:20:33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