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하나님과 그분이 보내신 예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요한복음에 말씀하셨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에 덧붙여 "보이는 만큼 행한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요즘 교회에서 보내주시는 성경 읽기 진도에 따라서 성경을 읽고 있는데, 사무엘기상 초반에 한 흥미로운 인물에 내 생각이 꽂혔다. 사무엘 시대에 대제사장 '엘리'이다. 그냥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도 그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는 오늘날로 치면 대형교회 목사로서 한평생 먹고 사는 문제없이 무난하게 목회하고 어느 정도 존경도 받고 98세까지 장수하면서 산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추정은 육신적으로도 비대했다는 성경의 기록을 보면서 내가 상상해 본 바이다. 그런 그에게 문제가 있다면 아버지의 말을 안 듣고 온갖 부정을 저지르는 제사장인 두 아들이었다. 성전에서 간음을 행치 않나 좋은 희생물을 빼돌리지 않나 백성들 사이에 온갖 추문이 돌고 돌아 엘리 제사장의 귀에까지 들려올 정도였다. 그도 이 범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기에 두 아들을 불러 아들을 타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어떤 조처를 취했다는 기사가 없다.
이에 하나님께서 한 대언자를 통해 엘리를 책망하시면서 참으로 엄청난 심판의 말씀을 전하신다. 엘리 대제사장의 후대에 이르기까지 이르는 참으로 무서운 저주의 심판이었다. 그런데 또 그뿐이다.
그가 그 말씀을 듣고 옷을 찢고 재 위에 앉았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어린 사무엘을 통해 다시 한 번 엘리에게 그 심판의 말씀을 듣게 하시는데, 이 때 보이는 엘리의 반응이 내게는 너무 뜻밖이다. "그분은 주시니 그분께서 선하게 여기는 것을 행하실 것이니라." 그러니까 지금 식으로 표현해 보자면, " 주님이 결정하신 것이니까 어쩌겠어, 난들!" 아니면 좀 좋게 표현해서 " 하나님이시니까 의롭게 심판하신 거지." 정도. 꼭 남의 이야기를 하듯 하면서 또 그뿐이다. 그 정도 확실하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면 대제사장쯤 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찌 해야 하는 걸 몰랐을까? 참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인데, 이 때 오버랩 되는 인물이 다윗이었다.
그는 다 알다시피 왕이 되기 전 일찍부터 고난의 삶을 산 사람이다. 그 고난을 통과하면서 점점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신뢰하게 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왕이 되었을 때 밧세바를 간음하고 그녀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심각한 사건 뒤에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첫아이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그가 보인 반응을 보면 엘리의 그것과는 너무도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는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아이가 자기의 죄 때문에 결국 죽게 되리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린다.
어떻게 이 두 인물의 반응이 이리도 다를까?
똑같이 하나님의 극심한 심판에 직면해서 그들이 보인 반응은 천국과 지옥처럼 달랐고 그 결과도 그러했다. 하나는 영원한 심판으로 하나는 영원한 긍휼로. 엘리의 하나님이 종교에서 만난 하나님이었다면 다윗의 하나님은 그의 고난의 삶을 통해 인격적으로 안 하나님이셨다. 아이가 결국 죽었지만 다윗이 보인 태도를 보면 그가 결과를 떠난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했던 인물인가를 볼 수 있다. 결국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안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다윗이 안 하나님은 의로운 심판장으로서 심판을 선고하시지만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에게 그 뜻마저도 돌이키시고 용서하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셨다!
그렇다면 오늘의 나는 어떠한가?
이 나라에 내려진 심판의 형국에서 나는 엘리인가 아니면 다윗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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