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이렇게 살아있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어제 떠난 이들이 하루만 더!! 하고 외치다 결국 보지 못한 오늘입니다. 저는 내일은 결코 보지 못할 것입니다. 내일은 당겨 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일을 무심코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현재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한데도 너무나 소홀히 보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일은 하나님만이 소유할 수 있는 시간이며 하나님만이 조종할 수 있는 미래입니다.
말을 못해서 고민인 저에게 작은 뻔뻔함을 주셔서 이렇게 글을 조금씩 쓰시게 하여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릴 때 늘 과묵이로 통하고 어른들께 칭찬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사실은 그것이 말을 제 때에 할 줄 몰라서 못한 것이고 욕구불만의 표시였는데 상대방들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 할 말만 딱 하고 말았던 것이고, 그래서 말이 짧아졌습니다. 지금은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 합니다. 아직도 감정 조절은 잘 안 되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생각으로 조절하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한 때는 너무 감성적이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어떤 낭만? 누구든 다 가져본 추억이겠지만 특별히 저는 소심한 편이라 매우 감성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잘못된 음료에 의지할 때가 많았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딱.... 사랑을 서로 나눌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니 또한 감사 합니다. 사랑은 마치 서로 맞잡고 있는 탄성체 같습니다. 절제된 힘을 주어 서로 당길 때에야 비로소 본래의 기능을 합니다. 서로 무리한 힘을 주다가 한쪽이 놓으면 다른 한 쪽은 아픔을 겪게 되지요. 또, 둘 다 놓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맙니다. 또 무리하게 서로 잡아당기면 상하게 되어 돌이킬 수가 없게 되고 말지요. 그러나 누구든 한 쪽을 끝까지 붙잡고 있으면 그것의 생명은 회복될 것입니다.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형제자매님들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셔서 감사 합니다. 방탕한 생활을 끝내고 이제 말씀 안으로 들어오게 하셔서 건강한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한 때는 나의 주장이 전부 옳다고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능력도 없으면서 자만심과 이기심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고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외면하고 마는 그런 생활을 했었습니다. 이런 생각들도 고칠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했다지요? 정말 다행입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살아계신 신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신들은 죽었습니다. 그리곤 그냥 죽어 있습니다. 인간들은 신을 필요할 때 찾아서 로봇처럼 조종해서 자기가 필요한 것을 이루게 할 수 있는 그런 존재쯤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그들의 신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지요. 그리스로마신화를 어릴 때 읽었는데 이런 것은 개인적으론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기도 하구요. 예수님 알기 전에 저도 그랬습니다. 다 같은 생명을 주셨는데 어떤 이는 마귀의 삶을 살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때론 육신이 지쳐서 혼을 괴롭게 할 때도 있지만 우린 성령님이 각각 함께하시니 서로 싸우지 않고도 똑같은 성령님을 소유?하고 있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안 되는 줄 알게 하신이 하나님! 다시금 감사를 드립니다. <조형제님글에 대한 댓글> 사람들에게 각각 주어진 분량이 있겠지만 모든 것 연습하면 숙달되어 지겠지요? 전부 다 완벽하게 잘 할 수는 없습니다. 읽기와 듣기는 중요합니다. 곧 자기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하기와 쓰기는 곧 나와 남(?)이 공유 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똑 같은 생각을 하더라도 그 표현의 방법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사람의 느낌이 각양각색으로 달라지게 되지요. 격언에 "침묵은 금이고 연설은 은이다." 이런 말 도 있는데 이것은 말할 때 그 만큼 생각을 많이 하여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한 편의 설교를 하기 위해서 수많은 생각과 문헌과 말씀을 참조 하시지요. 특별히 저희 목사님은 여러 가지 일 들을 병행 하시니 더욱 시간을 많이 쓰십니다. 하하, 이건 아부 성 발언이 아닙니다. 성도님들 오해 마시기를...제가 어떤 계기로 약간의 설교를 준비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고충을 압니다. 다른 분들의 설교를 듣고 그대로 읽어 보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의도와는 또 다른 뉘앙스로 발전을 하게 되고 말더군요.
쓰기에 있어서는 더욱 어렵습니다. 눈에 보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글쓰기에 어려움을 느끼신다는 분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합니다. 형식이 없이 자유롭게 자기만의 글 들은 일기 또는 낙서를 통해서 많이들 써 보셨겠지만, 또 특별히 직업상, 연구 논문 등 써야 되는 당위성을 가진 것 외에 어떤 지면에 공개? 한다는 것은 나의 겉모습뿐 아니라 속마음도 드러내어야 된다는 불편한 심기? 가 있게 마련이지요. 차라리 "안 쓰면 아무 일도 안 일어 날 것을 내가 무어라고" 내가 안 써도 누군가 쓰겠지? 이런 생각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써버릇 해야 합니다. 조금은 다른 내용이지만 <안네의 일기>를 쓴 안네 프랑크라는 소녀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종이가 사람보다 오래 참는다’ 내용상 사람에 대한 배신감에서 한 말 같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기록에 대한 중요성을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오늘날은 쓰는 곳이 종이보다는 전자판 이라는 문명의 이기로 바뀌기는 하였지만 쓰여진 것이 곧 기록이고 표현이고 역사입니다. 잘은 몰라도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말씀과 역사는 전부 쓰여진 것들로 인하여 마련된 혜택이라 할 수 있지요. 쓰기를 주저했다면 우리에겐 역사가 없었을 겁니다. 조형제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쓰기는 거창한 문학 작품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고 성도님들의 예수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에 대한 진솔한 사연? 또는 체험 또는 감상 등 이런류의 글들도 바람직하다 하는 것 같으시네요. 모두모두 참여 하여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