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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어떤 독립침례교인이 일어나 그분을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으리이까? 하매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킹제임스 성경에 무어라 기록되어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느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하매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옳게 대답하였도다. 이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살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그가 자기를 의롭게 만들려고 예수님께 이르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하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서울에서 인천으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나매 그들이 그의 옷을 벗기고 그에게 상처를 입혀 그를 반쯤 죽이고 떠나갔느니라.
마침 어떤 목사가 그 길로 내려오다가 그를 보고는 다른 쪽으로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신학생도 그가 그곳에 있을 때에 와서 그를 바라보고는 다른 쪽으로 지나가되 어떤 신천지 추수꾼이 여행을 하다가 그가 있던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그에게 가서 기름과 포도즙을 붓고 그의 상처를 싸매며 그를 자기 차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아주고 이튿날 떠날 때에 이십만 원을 꺼내 주인에게 주며 그에게 이르되, 그를 돌보아 주라. 당신이 얼마를 더 쓰든지 내가 다시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느니라. 이제 너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라고 생각하느냐? 하시니
그가 이르되, 그에게 긍휼을 베푼 자니이다, 하매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서 너도 그와 같이하라, 하시니라. 요즘에는 신천지에 관한 뉴스가 많이 나오는데요. 지난 주일에는 잠실 주경기장을 빌려 전국적인 행사를 열고 위세를 과시했다고 합니다. 평소 신천지 추수꾼으로 의심을 받는 사람이 지난 주일에 아무 이유 없이 교회에 빠졌다면 정말로 그 사람이 신천지일 가능성이 높다는 웃지 못할 신종 신천지 판별법까지 등장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가 아니면 말씀을 하지 않으신 게 아니라 비유가 없이는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신천지는 잘못 쓰인 성경을 잘못된 방법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명백한 사이비 종교를 믿는 사람들로 직통계시자라는 교주가 괴상한 방법으로 개역성경의 비유와 상징을 자신의 상상대로 해석을 하여 전국의 기독교인들에게 개천지라는 말을 들으면서 멸시와 경멸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유대에서도 이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잡종 혼혈인데다가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며, 예루살렘으로 예배를 드리러 오지도 않고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는 잘못된 이단교리를 가졌으며, 사사건건 유대인들을 방해하여 순수한 혈통을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개 취급 수준의 경멸과 멸시를 당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이었습니다. 비유이긴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런 사람을 경건한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보다 더 선하게 보이도록 묘사하셨으니 이걸 듣는 유대인이 얼마나 큰 충격과 당혹감을 느꼈을까요. 물론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유대인 사람들보다 특별하게 더 사랑하시거나 그들의 이단적인 교리를 옹호하시려고 이러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복음서를 읽다 보면 예수님께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욕을 먹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위선자
지옥 자식 눈먼 자들 어리석은 자 회칠한 돌무덤 독사들의 세대 그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왜 그분께서 이들에게 이렇게 크게 분노하시고 그토록 모질게 말씀하셨을까요. 이 사람들은 유대 사회 어디에서나 인정을 받는 정통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 호된 꾸지람을 듣는 장면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우리는 그들을 그저 주인공을 괴롭히는 나쁜 악당들로만 인식하지만 사실 바리새인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2 그들이 처음 역사에 등장한 시기는 유대인들이 고레스의 칙령으로 바빌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세 차례에 걸쳐서 자기들의 땅으로 돌아온 이 후입니다.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난 다음 분열된 그리스 제국에서 이집트 지역을 차지한 프톨레미 왕조 아래 편입되어 백여 년 간을 비교적 평화롭게 지내던 유대민족은, 주전 2세기경에 시리아 지방의 셀루커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3세가 자신을 알렉산더의 후계자로 내세우며 정복전쟁을 재개하자 재빠르게 셀루커스 왕조 쪽으로 붙어서 평화를 계속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안티오쿠스 3세는 로마에 패배하고 시리아로 망명한 카르타고 출신의 유명한 장군 한니발과 힘을 합쳐 로마와 전쟁을 벌였지만, 군사력이 강한 로마와의 전투에서 연달아 지게 되면서 엄청난 배상금을 물게 되었는데 걷히는 세금만으로는 도저히 갚을 방도가 없자 그는 예루살렘 성전을 포함한 자기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신전의 재산을 압류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이 조치가 나라 곳곳의 반발을 사게 되어 결국 암살을 당하고, 뒤를 이은 셀루커스 4세 역시 혼란 중에 죽게 됩니다.
다음 왕인 그의 동생 안티오쿠스 4세는 프톨레미 왕조가 다스리는 이집트를 정복하려 했지만, 프톨레미 왕조는 로마에 도움을 청하여 화를 면하게 되었고 대신 안티오쿠스 4세는 만만한 유대에 그 화풀이를 하며 예루살렘을 습격하고 본격적으로 유대인들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그가 유대인들을 계속해서 학살하고 율법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금지하며 성전 안에 제우스의 제단을 쌓고 성전을 더럽히자, 마침내 반발하여 일어난 마카비 가문과 힘을 합쳐 시리아 군대를 유대 땅에서 몰아낸 경건한 유대인들인 하시딤이 바리새인의 기원입니다. 셀루커스 왕조의 세력을 몰아낸 이후에도 주변국들을 침공하여 사마리아와 에돔 지역을 회복하고, 독립국가를 세운 하스몬 왕조를 일으켜 유대의 정치적 지배층이 된 사람들과는 달리, 오직 종교의 자유만을 위해 일어났던 그들은 더 이상의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그들과 분리하고 갈라져서 각 지방에 율법을 연구하기 위한 회당을 세우고 대중들에게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이후 사두개인들과 대립하며 정치에 참여하게 되지만, 그들은 세상 권력을 쥔 세속적인 인본주의자들과 기록으로 보존된 성경을 전부 인정하지 않으며 메시아를 기다리지도 않는 자유주의자들과 맞서서 구별되고 근본적인 믿음을 지키며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완벽하게 보존된 바르고 권위 있는 성경을 손에 들고 항상 읽으며 외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그들은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곳마다 회당을 세우고 전통 맛소라 히브리어 본문으로 쓰인 성경을 비치해 놓고 읽었습니다. 그들이 보던 성경은 부실한 칠십인 역이 아니었고 단 한 글자의 오류도 없음이란 구절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갈릴리의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서를 읽으시며 그들의 성경기록의 정확성을 증명해주셨습니다.
그들은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를 믿으며 연구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르시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너희에게 지키라고 명하는 모든 것은 지키고 행하되...(마23:2-3a)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가르치는 것들에 틀린 것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그들의 행위는 별로 본받을 게 없었지만, 예수님에서는 무엇이든지 그들이 가르치는 모든 것을 지키고 행하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바른 율법 해석과 가르침에 대한 권위를 인정해주셨습니다. 오늘날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 중에 예수님께 이 정도로 인정받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예수님께서 그들을 그렇게 책망하셨던 이유는 그들이 진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가 아니라 진리에 가장 가까이 앉아 있으면서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금 예수님께서 저를 책망하신다면 완전한 킹제임스 성경을 갖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읽지 않고 제대로 지키지도 않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3 저는 기억도 안 나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을 따라 교회 주일학교에 가서 우리나라의 역사보다 이스라엘 왕들의 이름을 먼저 들었습니다. 나중에 정말로 예수님을 알기 전까지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예정되어 선택받은 사람이고, 유아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줄로 착각하며 살았었습니다. 그 후 십자가의 보혈만을 의지하여 구원을 받은 다음에도 롤러코스터와 같이 기복이 심한 기복신앙을 갖고 있다가 결국 흐지부지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우연히 킹제임스 성경을 알게 되어 바른 교리를 배우게 되었지만 머리 속의 지식 수준에만 머물러 있던 차에, 몇 년 전에 어떤 계기가 있어서 인터넷을 통해 목사님의 설교를 찾아 들으면서 조금 정신을 차리게 되어 작년 여름에 처음 사랑침례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 첫 예배의 감격은 다들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마치 첫사랑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그동안 일요일 아침마다 예쁜 넥타이를 매고 나와 앉아 바른 자세로 예배를 드리고, 침례를 받고 올바른 말씀과 중요한 교리를 공부하며 책들을 읽기도 하고, 흠정역 성경을 좀 알려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또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친다며 무언가를 하면서 그렇게 일 년을 보낸 것 같습니다.
물론 그전의 삶들과 지난 일 년의 삶의 모습에는 변화가 있고 가끔은 사람들에게 과분한 칭찬을 받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과연 예수님께서 저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일 것입니다. 혹시 나의 마음속의 동기와 속 중심 안에 은밀하게 스스로 자기 의를 세우고 그것을 의지하려는 마음이 싹트고 있는 건 아닌지, 어떻게 행동하면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어떤 일을 하면 손가락질을 받게 되는지 속으로 셈을 하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일에만 신경을 쓰고 아무도 몰라주는 일은 슬며시 외면하며 사람들의 눈과 귀와 카메라를 주시하면서 남을 속이고 나 자신도 몰래 속이는 그런 종교 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건 아닌지, 바른 교리라는 든든한 울타리로 자신을 포장하여 가두고 바른 성경을 손에 들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할례를 받고 스스로 만족하여 평안함이 아닌 편안함을 느끼며 안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영적인 분별을 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의 단점들을 찾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을 일삼고 있는 건 아닌지.
요즘 한 가지 확실한 고민은 제 마음속에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지도 않고 남의 처지를 내 일처럼 돌아보지도 않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제의 안타까움에 대해 귀 기울여 듣지도 못하고 정말로 절실하게 기도한 적도 없습니다. 저야말로 머릿속의 성경지식과 실제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며 분명하고 기본원칙과 우선순위를 망각하고 있는 눈먼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입니다. 만약 이렇게 그대로 올라가게 된다면 아마도 그들이 예수님께 들었던 무서운 책망을 똑같이 그대로 제 귀로 들으면서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아는 그분은 제대로 모르고 알지 못해서 드러내고 짓는 죄보다는 배워서 알면서도 지키기를 원치 않아 몰래 짓는 죄를 더 무섭게 책망하셨던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4 예수님께서 어떤 교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와 또 네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함을 아노니 스스로 사도라고 말하나 사도가 아닌 자들을 네가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하는 자들임을 알아내었으며 또 참고 인내하며 내 이름을 위해 수고하고 낙심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조금 있나니
이는 네가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네가 어디로부터 떨어졌는지 기억하고 회개하며 처음 행위를 하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네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속히 네게 가서 네 등잔대를 그것의 자리에서 옮기리라. 그러나 네게 이것이 있으니 곧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그것을 미워하노라. (계2:1-6) 이 교회는 사도 바울이 세우고 디모데가 감독으로 있었으며 사도 요한이 말년을 보냈던 교회입니다.
어느 교회보다도 훌륭한 목사님들에게 바른 말씀과 교리를 정확히 배우는 교회입니다. 바른 행위들을 하고 여러모로 수고하며 참고 인내하면서도 낙심하지 않는 교회입니다. 신사도운동이나 오순절 은사주의자들의 악한 거짓말을 잘 분별할 수 있는 교회입니다. 성도들을 손에 쥐고 꼼짝 못하게하며 군림하는 독재자 목사를 미워하는 교회입니다. 훗날에 이 교회가 몰락하게 된다면 공부가 부족하여 신천지의 추수꾼 포교 전략에 넘어갔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그건 아마도 이들이 처음처럼 뜨겁게 하나님을 추구하지 않고, 더 이상 서로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에게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라. (요일4: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