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이름은 “예수”
시집간 딸아이가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했습니다. “아빠 할아버지가 되신 소감이 어떠셔~~”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 보니 임신을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내 집안에서 얻게 되는 첫 손자라서 매우 기쁜 중에 대뜸 생각나는 게 있었습니다. 이름을 무엇이라 짓나? 이러한 생각이 먼저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내 귀여운 손자가 가정에서, 교회에서 혹은 사회생활에서 가는 곳마다 봄볕처럼 따뜻하고 여름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살아가며 가을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는 그리고 불의에는 겨울에 부는 칼바람같이 냉정한, 그러나 생명력이 넘치는 그러한 아이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거기에 알맞은 이름이 뭐 없을까?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이름 중에 참 좋은 이름이 꼭 하나 있습니다. 그 이름은 어느 한 사람을 위한 이름이 아니고 세상 만민을 위한 이름입니다. 바로 “예수”라는 이름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자”라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 높은 하늘에서 이 세상을 내려다보신다면 이 세상은 온통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으로 보이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하는 모든 일들은 어느 것 하나라도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일이 아닌 것이 없으니 말입니다. 길을 가다가 보면 길게 꼬리를 물고 살겠다고 바글바글 기어가고 있는 개미들의 행렬하고 꼭 같아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라는 이름은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영원토록 살게 해 주신다는 뜻의 이름이니 이보다 더 좋은 이름이 어디 있겠습니까?
더구나 “예수”라는 이름에는 금강석 보다 더 굳은 약속까지 들어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희망 사항이 아닙니다. 지금 내 지갑 속에 들어 있는 신용카드가 희망사항이 아니고 지금이라도 은행에 있는 돈 기계에 들여 밀기만 하면 현찰이 쏟아져 나오는 이름이듯이 “예수”라는 이름도 확실히 세상 모든 사람들을 영원토록 살 수 있게 해 준다는 보증이 들어 있는 이름인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결정적으로 내가 이 이름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그림의 떡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맛있어 뵈는 떡이라도 그게 식탁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벽에 걸려있는 액자 속의 그림일 뿐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침만 꿀떡 더 넘어가 배만 더 고플 뿐이지요.
그런데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나 개인 앞으로 달아 주신 이름이니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구약 성경에 보면 야곱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자와 밤이 새도록 강가 모래밭에서 씨름을 하여 이겼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 발뒤꿈치라는 뜻을 가진 야곱이라는 이름을 하나님과 겨루어서 이겼다는 뜻인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게 되면 하나님이 그에게 새 이름을 지어 주시는데 그게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입니다.
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다름 아닌 나 개인 앞으로 달아 주신 “예수”라는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이란 말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라는 이름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 안에는 구원이 없나니 하늘 아래에서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사람들 가운데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장12절).
곧 예수라는 이름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세상에 왔다가 이름을 남기고 가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세상에 남기고 갈 자기 이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기독교인들은 세상에 왔다가 새로운 이름을 얻어 가지고 갑니다. 곧 “예수의 사람” 즉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입니다.
새로 태어날 내 외손자도 내가지어준 이름으로 살다가 나중에는 그리스도인 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꼭 그래야만 합니다.
고놈 어떻게 생겼을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2012년 9월 26일(수) 유 용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