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아침 6시도 불을 켜야만 책을 읽을 수가 있는 것이 겨울이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주님께만 마음을 두고 말씀으로 위로와 감사로 찬양으로 살아가려하지만 항상 말씀에 화답하지는 않습니다. 저의 상태에 따라서 다른 것 같아요. 어떤 때는 한 단어가, 어떤 때는 한 구절이 마음을 끌어당길 때가 있지요. 그런 날은 그 말씀이나 단어를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로마서를 찬찬히 읽어 나가면서 구원 받았기에 흘려 읽었던 말씀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저의 모습을 돌이켜 보았지요. 주님 앞에 갔을 때 낱낱이 녹화된 나의 모습을 이렇게 보지 않을까 생각하니 너무 이기적이고 몰인정하고 지각이 없는 내가 너무 싫습니다. 주님의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부어주신 - 첫 사랑을 되찾아야 하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개인 기도제목 이기도 하고요.
저의 경우는 찬양이 늘 힘을 주고 마음을 주님께로 향하게 하고 즐겁게 합니다. 때로 피아노를 치면서 찬양하다가 마음이 뭉클뭉클 눈물이 왈칵 나기도하지요. 말씀에 집중이 안 될 때는 간증서적들을 읽으며 주님의 다양하심을 간접경험으로 눈물로 화답하기도 하고, 읽고 나서 좋은 책들은 지인들에게 권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기들이 보는 책도 휘-딱 읽기도 하고. 한 번에 5권씩 대출가능하기에 읽고 또 반납하고 도서관 오가는 길도 너무 좋습니다. 10분 거리를 꽃과 나무들을 마냥 보느라고 흥얼거리며 시간이 고무줄이 될 때가 많지요. 새로운 책이 별로 없고 신앙서적은 비중이 작기에 제한이 있지만요. 집 앞에 작은 도서관이 있고 걸어서 10분 거리에 큰 도서관이 두 군데 있거든요. 구리시는 큰 도서관이 3군데나 있고 곳곳에 작은 도서관도 많아서 너무 좋아요. 예전에는 정기적으로 기독교 서점에 가서 책을 사와 읽곤 했어요. 지금은 여유가 없기도 하지만 <성경지킴이> 사이트에 무궁무진한 올바른 정보가 있기에 필요를 별로 못 느끼기도 하고 목사님이 권하는 책도 읽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63빌딩만치 높지만 들으려는 사람 찾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은 많아도... 시디를 주어놓고 조용히 지켜보고 있지요. 시디를 듣기만 해도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텐데.. 각 교회들이 이단 강좌를 열어서 자기들과 다른 것들에 대한 경각심이 너무 높아요...
남편이 현재 61세, 내년이면 62세가 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아요. ‘자녀들이 부모를 위해 모아 두지 아니하고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 하느니라‘ 는 말씀이 떠올라 남편이 보기에 참으로 철없는 저는 ‘자녀의 일은 부모가 걱정하는 것 아닌가?’ 한마디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뒤돌아보기만 해도 동행하시는 주님의 긍휼과 은혜가 분명했기에 앞으로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60년간 한국말을 사용하지만도 짧은 말밖에 안하는 그러나 가장으로서 성실한 남편 덕분에 집에서 편하게 지내는 여유를 누리고 있어 감사하지요. 제가 몸이 건강치 못한 것도 있지만요.
직장에 다니느라 바쁘고 집안일도 하며 힘들게 지내시는 자매님들 참 대단해 보여요! 성도들 한 분 한 분 생각해 보면 모두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이 들지요. 모두가 보석인데 보석인 줄 알아주는 분은 주님뿐이시니 세상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서 우리는 주일을 기다리고 사는 것 아닌가 싶어요.
“주님께서 언제 오실까? 40년 뒤?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하다. 그치?” 남편이 짧게 대답합니다. “10-20년 사이엔 오시겠지” “왜 그렇게 생각해 ?” “말세 중 가장 끝이야.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조금 위로가 됩니다. 10년을 살든지 1년을 살든지 그날그날을 충실하게 살아야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