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립스틱 짙게 바르고
예전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대중가요 중에 어느 여 가수가 불렀던 “립스틱 짙게 바르고”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내일이면 잊으리, 곧 잊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 ”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를 버리고 가는 님 에게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잊어 주겠다는 뜻입니다. 그냥 잊으면 될 일을 왜 립스틱까지 짙게 바르고 잊어준다는 것일까요?
여성들이 립스틱을 짙게 바르겠다는 것에는 그 어떤 분명한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생애 최상최고의 화장을 확실히 하겠다는 뜻일 것입니다.
모든 여성에게는 일생에 꼭 한번 생애 최고의 화장을 하는 날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혼식 날입니다. 그런데 “립스틱 짙게 바르고”라는 노래의 가사 내용은 결혼식이 아닌 이별의 날에 바로 그 일생일대의 화장을 하고 보내 주겠다는 것입니다.
실로 엽기스러울 정도의 혁명(?)적인 발상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떠나가는 님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 사랑이라는 뜻이었을까요? 노래를 따라 부르는 동안의 감정만은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노래가 끝난 후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노래가 끝난 후의 현실이란 이런 겁니다. 립스틱은커녕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라도 나라는 거 아닙니까? 십리는커녕 오리도 못가서 자동차사고나 “쾅” 나버리라고 하는 것이 요즘 현대인이 아닌가요? 그래도 분이 안 풀려서 고소를 해도 열댓 번은 더 하고 그러고도 모자라서 상대를 향해 침을 뱉고 돌아서는 것이 현대인이 아니던가요?
결국 립스틱 짙게 바르고 라는 노래는 역설적으로 현대인들은 그들이 즐겨 부르는 대중가요만큼도 사랑을 할 줄 모른다는 증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면 눈치를 챌 수 있는 증거가 있습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사랑이니 그럴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이제 인류의 과학문명은 달나라를 지나 더 아득한 별들에까지 훌쩍 다녀 올 정도로 발달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사랑 법은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목이 터져라 따라 부를 만큼 엽기스러울 정도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가장 명백하고도 현실적인 증거가 바로 가공할만한 세계적인 가정폭발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의 가공할 위험은 핵 확산과 핵전쟁이 아닙니다. 가정폭발입니다. 분명 사탄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정은 인류의 솥단지이며 밥그릇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가정이라는 이름의 솥단지에서 끓여낸 사랑의 밥그릇을 받아먹지 않고는 생존이 불가능하도록 창조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가정폭발이라는 것은 인류의 생명줄인 솥단지를 걷어차고 밥그릇을 밟아 깨트리라는 사탄의 음모였던 것입니다.
인류에게 지금 당장에 필요한 것은 강력한 핵확산 금지 조약이 아니라 무너져 내리는 가정의 기둥뿌리를 버텨줄 제3의 사랑 법을 발견해 내는 일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섹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그동안 인류에게 사랑 법을 가르쳐왔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에 못지않은 “춘향전”으로 사랑 법을 배워 왔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사랑을 잘 할 줄 모르게 되자, 이난영은 “목포의 눈물”로, 이미자는 “동백 아가씨”로, 그리고 조용필은 “돌아 와요 부산항에”를 가지고, 또 태진아는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가지고 열심히 사랑 법을 가르쳐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더욱 더 사랑을 할 줄 모르게만 되어 갈 뿐이었습니다. 마침내 오늘날의 낯 선 세대 아이들은 “막판사랑노래”까지 부를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즘의 낯 선 세대 아이들이 TV에 나와서 말 타는 시늉을 하며 폴짝폴짝 뛰면서 목청껏 소리 지르며 부르고 있는 저 사랑노래! 그게 막판사랑노래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세상에 어느 나라 연애소설책에 오늘날의 저 아이들처럼 그녀의 창 밖에서 웃통까지 벗어 던지고 폴짝폴짝 뛰어서 장가들고 아이 낳고 믿음생활 잘하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단 말입니까?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현대의 막판사랑노래를 부르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우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새 명령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우리에게 새 명령?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그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였는데? 방금 무대 위에서 폴짝폴짝 뛰다 내려온 놈들이 눈 까뒤집고 헐떡거리며 따져 묻습니다.
“그놈의 성질머리하고는~ 차분히 들어보시게~
예수님의 사랑 법은 다시는 립스틱을 짙게 바를 필요가 없는 그런 사랑이야~ 다시는 망아지 널뛰듯 생난리까지 부릴 일도 없는 사랑이라는 말이지~ 왜냐하면 예수님의 사랑 법은 한번 사랑은 영원한 사랑법이기 때문에 그렇거든~ 즉 예수님의 사랑 법은 한번 사랑했다 하면 영원히 이별이 없는, 인류 역사상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조금 유식한 말로 하면 전무후무한 그래서 오직 하나 뿐인 특별하고도 완전한 사랑 법이거든~
왜 그런 줄 아시나? 예수님의 사랑의 맹세는 십자가에 쾅쾅 못을 박아서 세운 맹세이기 때문이야~ 세상에 사랑의 맹세를 십자가위에 그것도 종이쪽지에 쓴 글도 아닌 자신의 손과 발에 못을 박아서 세운 사랑의 맹세가 예수님의 사랑 말고 또 있었는가? 입이 있으면 대답해 보시게~~“
2013년 1월 14일
유 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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