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정역 – 나의 한글최종권위로 수용하는 논리(후반부)와 간증(전반부) > 지난번 간증 때에 흠정역 성경을 알기까지의 과정을 나누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 이 글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1> 현대 개신교회들의 문제와 그 근본원인들을 글로 정리해보고자 인터넷 자료들을 찾던 중에 어떤 형제(나중에 알고보니 형제교회 목양자)들이 올려놓은 자료들을 통하여 제가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다른 교회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천주교에 속한 적이 없는, 개신교회와는 뿌리가 다른 무리들이 항상 있어왔으며 그들의 믿는바(근본주의 교리들)가 긴 글들로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천주교는 주님의 교회일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 생각을 체계적으로 지지해주는 이 글들을 밤늦게까지 읽으면서, 성경대로만 믿는 무리가 늘 있어 왔다는 사실 자체에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지난 12월에 다시 침례를 받은 것은 제 신앙의 전통적 뿌리를 개신교에서 성경대로 믿는 이들 성경신자 그룹으로 바꾼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2010년 저희가족이 미국에서 6개월 동안 생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영어도 배울 겸해서) 두 분의 미국인 목사님과 저희 가족이 매주 2회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지금 구체적인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복음서를 읽어가던 중에 제가 평소 의문이 있던 내용을 질문했는데 목사님께서 서재로 들어가 낡은 책(KJV) 한 권을 가져오시더니 원래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는데 바뀌면서 모순이 되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날부터 KJV가 어떤 성경인지를 인터넷에서 이 잡듯이 뒤져본 결과 보존된 유일한 성경(KJV)이라는 논란이 존재하는 유일한 역본이며, 다른 수많은 현대역본들과 2대별하여 피 터지는 싸움이 벌어져 왔다는 것, 또 이것이 진정한 교회사라는 것, 그리고 자필원본의 기록부터 보존과정, 정경, 번역상의 이슈들과 천주교의 음모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성경이슈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2010년 당시 KJV 한글 진영들 간에 있었던 주장과 논박내용도 밤을 새어가면서 거의 다 읽어보았습니다. 서점에는 3종류의 한글 역본이 있어 비교해보니 장단점이 있었기 때문에 선택이 어려워 다시 인터넷 자료들과 씨름하며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20년 넘게 읽고 연구하던 한영대역 개역성경(성서공회)을 다른 성경책으로 바꾼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손때가 타서 쉽게 찾을 수 있고, 그 안에는 많은 메모가 들어있으며, 무엇보다 개역성경의 말투가 익숙해져서 성경을 바꾸면 암송하는 속도나 인용할 때의 심리적 자신감을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성경을 읽고 암송하다보면 성경의 말투를 닮아가기 때문에 나중에는 의미만 암송해도 문구를 틀리지 않으며, 힘들이지 않고 떠올려 말해도 성경을 거의 정확하게 인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랬던 기존 개역성경을 킹제임스 성경으로 바꾸기로 한 이유는 개역성경의 완전성에 대한 저의 믿음이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성경단어의 완전성에 대한 믿음은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에 영향을 주고 그 결과 교리체계의 차이를 가져오며 결국은 믿음의 사조(진영)가 결정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성경이 완전하지 않다면 그중의 어느 부분이 문제이고 어느 부분이 문제없는 것인지 알수 없기 때문에 문제의 성경기록에 제 실제 삶을 걸 수가 없으므로 (좋은 인생지침서는 될 수 있지만) 더 이상 하나님의 권위를 담고있는 성경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확성을 최고의 우선순위로 3가지 한글 KJV역본을 다시 살펴본 결과, 번역이 영어KJV에 가장 충실하고 근본주의 교리들에도 부합하는 흠정역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한영대역 4권을 구입하여 가족들과 함께 읽으며 정목사님의 개역성경 강해와 책자들을 통해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성경이슈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말씀사에서 7권씩 몇번 구입하여 직장에서 함께 공부하는 형제자매들에게 주고 성경이슈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더니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이런 식으로 성경을 전하는 일을 전도하듯이 하다보니 30권 넘게 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책상서랍과 자동차에 두고서, 믿는 사람은 하루에 5장씩 읽기로 약속하는 조건으로, 불신자는 전도를 하여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나누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2> 끝으로 성경의 완전성과 최종 권위에 대한 저의 이해는 이렇습니다. 자필원본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 사본은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그 사본들 중 일부에 어쩌다가 사람의 실수가 가미되었다 하더라도, (5500개나 되는 사본(신약)들이 동일한 부분에 동일한 오류를 동시에 담고 있지 않는 이상), 다른 많은 사본들과 비교하여 쉽게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 다수 사본에서 만들어진 본문은 보존된 성경이라고 결론지어도 논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됩니다. (사본 자체에 손을 대거나 본문작성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손댄 것은 논할 가치도 없고) 번역본도 이것과 동일한 논리를 적용해보면, 올바른 본문에서 번역된 타 언어 역본들이 많으므로, 비록 번역상 약간의 미흡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영어역본 등과 대조하거나 그 성경자체의 내부 상호규명에 의하여 얼마든지 쉽게 온전히 보완될 수 있기 때문에 그 보존성과 완전성이 훼손되지 않았다고 판단됩니다. 예를 들면, 문법이 그 나라 표준문법과 일치하는 정도차이, 또는 어순과 단어의 토속성 차이에서 오는 어감차이(그리스어 ‘코이네’와 한글의 ‘되’ / 존댓말 여부등)같은 원초적 한계 뿐만 아니라, 번역자의 능력부족으로 인한 실수가 포함되어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영어역본 등과의 대조나, 그 성경자체의 내부 상호규명 등에 의하여 얼마든지 쉽게 보완할 수 있고, 또 판권자가 (교리가 같아) 보완․정정할 의사가 있기 때문에 보존성과 전체적인 완전성이 훼손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에 말한 정도의 미흡함이 포함되어 있는 그대로도 그 언어권에서 최종권위로 인정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문(번역대상) 자체가 다르다든지, 본문은 같지만 성경전체를 흐르는 교리와 다른, 자신들의 교리를 뒷받침하기 위한 의도가 개입된 역본은 누군가 위와 같은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판권자의 영이 달라) 정정할 의사가 없기 때문에 보존 자체가 훼손된 것이며, 이것은 그 언어권의 최종권위로 수용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창조론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창세기1장의 replenish를 ‘다시 채우다’로 해석하는 것이 그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기본교리들(삼위일체, 영혼불멸, 대신속죄, 은혜와 믿음구원, 칭의와 성화, 휴거와 재림, 전천년 믿음, 성령의 내주와 사역, 하늘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 차이 등)을 모두 이해하고, 그 견고한 교리적 기초위에서, 보다 근원적인 질문들의 성경적 대답을 찾다보면 성경전체를 흐르는 더 큰 주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는 왜 하필 대신속죄라는 방법으로 죄 용서하시기를 원하셨는가?” (달리 정하실 수도 있었음, 죄는 피(생명)로만 속한다는 것 자체도 하나님께서 목적을 갖고 그렇게 정하신 것임) 또는 “법규들을 주심으로써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시고, 메시야를 보내 구원하시는 일련의 모든 일들(그 자체가 최종목적은 아님)을 통하여 결국 무엇을 하고자 하시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성경의 대답을 정리하다보면 하나님의 보다 궁극적인 차원의 계획과 의도를 이해하게 되는데, 이 흐름에 비추어 볼 때 재창조론 발상 자체가 매우 우스꽝스러운 것입니다.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다음번에는 기회가 되는대로 이런 문제들을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좋은 의견이나 정리된 글이 있으시면 weldu37@nate.com으로 보내주시면 고맙게 참고하겠습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