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침례교회의 부담
2009년 08월 30일
얼마나 더 언제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그러면 무엇이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치레로 하든지 진실로 하든지 모든 방법으로 그리스도께서 선포되시나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 참으로 기뻐하리라. (빌립보서 1:18)
종종 어린 아이들이 치과에 옵니다. 충치가 너무 깊어져서 염증으로 얼굴이 퉁퉁 부어서 옵니다. 밤새 온 식구를 한잠도 못자게 괴롭힌 아이는 무서운 치과를 겨우 엄마 손에 이끌려 옵니다. 첫째 아이는 돈이 안됩니다. 둘째 아이는 행동조절이 안되어서 달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예약하신 분들도 화를 내시게 됩니다. 셋째 아이는 울며 소리쳐서 병원이 시끄러워지고 소란스러워집니다. 그럼 어찌해야 할까요?
엄마는 치료 잘 받으면 무엇을 사주고 무엇을 해준다는 갖가지 보상을 내세웁니다. 심지어 아빠가 전화로 100만원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아이도 봤습니다.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떻게든 치료를 받도록 얼르고 달랩니다. 아무리 긴 시간을 보채며 울어도 열심으로 치료를 받게 하려고 애를 쓰십니다. 반면, 저나 직원들은 한참을 실갱이하면 지쳐갑니다. 입을 조개처럼 꼭 다물고서 사람을 몇 번을 오라고 했다가 가라고 했다를 반복하면 슬슬 화가 납니다. 스트레스가 점점 올라가서 치료 안받을꺼면 빨리 집에 갔으면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간신히 실랑이 끝에 치료가 끝나고 나면 “고생하셨어요!”라는 간단한 인사 말고는 별로 떡고물도 없습니다. 아마도 치료를 잘(?) 받은 아이들은 맛난 간식도 먹고, 어쩌면 약속받은 백만원의 현금보상도 받겠지요. 그래서 종종 낙심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아버지하나님의 마음이 어린 아이 환자를 스트레스 받으며 바라보는 제 마음과는 너무도 달라서 저 어린아이의 부모님 마음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매일 아침 직장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엔 성경교리문답 80번을 함께 나눴습니다. 두세달에 한번 정도는 진지하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지 질문을 해봅니다. 그날이 오늘이었습니다. 진지하게 복음을 받아 들였는지 질문을 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사실 관심이 없고, 그렇다고 진화론을 믿는 것도 아니다.라는 직원도 있습니다. 원숭이가 사람과 비슷하잖아요. 그래서 진화론은 믿을 수 있을 것 같답니다. 죽음 뒤의 일은 죽고 나서 생각해 보겠답니다. 지금은 돈 벌면서 먹고 사는 일로 너무 바뻐서 그런 것 생각할 여유가 없답니다. 지난 몇달간 함께 성경공부하며 보냈던 시간이 수포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내일 또 아침에 시간이 되면 성경책을 펴놓고서 기다릴 직원들. 마지 못해서 그렇게 성경책을 펴놓고서 기다려주는 직원들과의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받아 들이겠지하며 또 한번 더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런 기도가 나옵니다. 하나님. 이 정도 했는데도 안 받아들이면 이제 그만 전해도 되는 것 아닌가요? 얼마나 더 언제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성남에서 치과를 하시는 지인이 토요일에 심근경색이 왔습니다. 응급실로 실려갔습니다. 심장전문의가 도착할때까지 4시간여를 환자위에 걸치고 앉아서 심장을 힘차게 눌러주면서 땀을 뻘뻘 흘려준 인턴이 없었다면 그 사람은 죽었습니다. 살아도 뇌사일꺼라고 모든 동료의사들의 믿음을 깨트리고 멀쩡하게 살아났습니다. 지금은 열심히 산악자전거를 타고 있습니다. 얼마나 더 언제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얼마전 생신을 맞으셔서 외식하시며 식당에서 밝게 웃으시며 찍은 사진이 카스에 올라왔고 댓글이 달렸습니다. “오래오래 사세요!” 저는 이 댓글을 보면서 내심 화가 났습니다. 생각이 있는건가? 정말 이제 살면 몇 년이나 사실 수 있다고 “오래오래 사세요!“ 이런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건지. 정말 생각이 있는건지 화가 났습니다. 이제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어요. 이제 돌아가시기 전에 늙으신 부모님께 몇 번이나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지력이 총명하셔도 듣고 깨닫지 못하시던 부모님이 이제 귀와 눈이 어두워지시고, 지력이 쇄하여 지실텐데.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는데. 복음을 전해도 듣지 않으시며 명심보감의 글귀로 방어하시는 아버지. 얼마나 더 언제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늘 마음에 몇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 간절함으로 애를 씁니다. 아내에게 허락도 안받고 조카를 불러다가 6개월동안 집에 불러들여서 기숙과외를 핑계로 복음을 전해보려고 했지만 실패를 했습니다. 시간은 정말 빨리 지나갔습니다. 아픔으로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얼마나 더 언제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많은 분들이 사랑하는 남편에게, 아들에게, 아내에게, 부모님께, 친구에게, 동료에게 복음을 전해보려는 간절함으로 병원의 응급실을 찾은 심정으로 제발 내 남편, 내 아내, 내 아들, 내 부모님, 내 친구, 내 동료에게 구원의 복음을 제발 좀 전해 주세요.하는 간절함으로 이끌고 오신 분도 계시고, 스스로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하고 찾아 오신분들도 계시겠지요. 응급실 당직의사들과 스텝들이 누가 왔는지 관심도 없고, 왜 자꾸 오늘은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오는거야? 정말 힘들어 죽겠구만. 아 피곤해. 여기요~! 제발이요~! 누구 없어요~? 얼마나 더 언제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연기가 자욱한 대구지하철 참사때 한사람이라도 더 구해보려고 연기속으로 뛰어 들어갔던 소방관이 자신이 그 연기속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한치앞도 안보이는 연기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심정을 느껴보려하지만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도데체 무슨 생각으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구해보겠다고 자욱한 연기 속으로 뛰어 들어갔을까요? 이제 그만 하게. 연기가 너무 자욱하고 산소통에 산소도 얼마 남지 않았네. 할만큼 하지 않았는가? 그만 하게. 자네가 위험해 질 수 있네. 이런 만류를 들으면서도 연기속으로 왜 걸어 들어가야 했을까요? 왜? 얼마나 더 언제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지난 겨울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서 4월21일 눈물을 흘리면서 말씀을 들었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렇게 보배로운 교회를 찾게 하시려고 그렇게 길고 긴 시간을 연단하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보배로운 교회에 최근 작은 소용돌이가 생긴 것을 느낍니다. 목사님께서 “여기서 풀리지 않은 일들은 반드시 하늘에서 풀리리라는 소망을 굳게 가지고서...”라고 하신 말씀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빌립보서 1장 27 오직 너희 행실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에 대한 일들 곧 내가 가서 너희를 보든지 떠나 있든지 너희가 한 영 안에 굳게 서서 복음에 속한 믿음을 위하여 한마음으로 함께 싸우며
추운 겨울날 프랜카드를 노상에서 나란히 들고 서서 그렇게 복음을 바른 성경과 바른 교회와 바른 복음을 전해 보시겠다고 마음을 함께 하셨던 분들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그 겨울 그렇게 뜨거웠던 열정과 사랑이 더욱 하나님의 위로와 만지심으로 새롭게 더욱 더 뜨거워지셔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물밀듯 교회를 찾아와도 힘들어 하지 마시고, 그 사랑 끝까지 인내로 지키셔서 하나님 앞에서 풍성한 의의 열매를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자랑하시길 소망합니다.
누가복음 15: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잃어버렸다가 찾았으니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