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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출어람(靑出於藍)조회수 : 8220
    • 작성자 : 김경민
    • 작성일 : 2013년 9월 8일 1시 8분 59초
  •  오늘은 절기상으로 아침저녁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입니다. 그래서 인지 여름 내 열어두고 자던 창문을 굳게 닫고 자야 할 만큼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 이제는 정말 가을로 들어선 듯 합니다.
     
     어제 오늘은 친정아버지의 생신을 축하 해 드리려고 아이 둘을 데리고 바쁜 남편을 대신해 KTX에 몸을 싣고 시골에 다녀왔습니다. 개구장이 두 아들녀석도 저도 모처럼의 기차여행이 신이 나기는 마찬가지 인가 봅니다. 차창 밖의 시골 들녁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과 마음이 저절로 정화 되는 듯, 상쾌하기 이를데 없고 이것 저것 가차 안에서의 군것질도 꿀맛입니다. 기차에서 내릴 쯤 되고 보니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느리게 가는 무궁화호를 탈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기차역으로 손주들 마중을 나오신 친정아버지의 환한 미소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제가 나고 자란 시골은 대둔산 자락에 자리잡은 논산평야입니다. 대둔산 계곡에서 흘러나온 물이 인내천을 따라 탑정저수지에 머물러 일년 내내 농사에 풍성한 수량을 제공하는 비옥한 땅입니다. 얼마 전 <한국기행>이라는 프로에도 제 고향이 소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그 곳이 늘 제 마음의 모토입니다.
     멀리 대둔산을 품고 유유히 흐르는 인내천의 풍경은 언제 봐도 아름답습니다.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란 하늘 빛이 그리워......' 정지용의 시 <향수>를 연상케 하는 그곳이 바로 제 고향인 것 같습니다. 
     
     유난히 물이 맑고 깨끗하기로 소문난 인내천의 푸른 물빛을 보고 있노라면 쪽빛깔이 연상됩니다. 파랗게도 보이고 초록빛깔 아니 옥빛으로도 보이는 푸른 빛깔, 그 속에는 오염되지 않은 수많은 생명체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여름방학에 아이들과 그 곳에서 신나게 고기도 잡고 뗏목도 타고, 물놀이하던 기억도 다시 떠오릅니다.
    지난 여름의 추억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문득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단어가 생각나 사전을 찾아보니 '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이더군요. 저도 쪽이라는 염료를 사용해 본 적이 있어 알지만 정말 풀에서 뽑아낸 염료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파랗습니다. 그냥 파란 물감과는 또다른 묘한 매력을 지닌 빛깔입니다.
     
     사람도 이와같이 자기 자식이나 제자가 나보다 더 뛰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 똑같으리라 여겨집니다.
    저도 아이 둘을 키우고 있지만 늘 저의 부족함 보다는 좋은 모습만을 닮기를 바라며 나보다 더 낫기를 바라는 욕심이 있습니다. 또 비록 저는 목회자는 아니지만 만약 제가 목회자라면 우리 성도들이 그러기를 바랄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 해 보니 예전에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기억을 거슬러 봐도 그렇고 제 아이를 키워봐도 그렇고 될 녀석은 정말 뭐가 달라도 다른 것 같습니다. 우선 학습이나 공과공부에 임하는 태도부터가 다릅니다.
     
     정말 무언가 뛰어난 녀석들은 우선 눈빛부터가 다릅니다. 대부분 수업시간에 졸고 있는 녀석들은 제 경험상 수업에 관심이 없거나 이미 전의를 상실한 녀석들일 확률이 높습니다. 반대로 수업태도가 좋고 학업성적이 우수한 녀석들은 눈빛이 반짝반짝 하겠지요. 저역시 만약 제가 좋아하고 흥미를 느끼는 수업을 들을 때에는 선생님의 말씀을 눈과 귀로 부지런히 따라가게 되고 손도  자연 열심히 메모를 하게 됩니다.
    목사님의 설교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그 날 설교말씀이 은혜가 되고 관심이 집중이 될 때에는 말씀하신 내용 중 어느 책에서 인용하셨다거나 어디를 가 보셨다거나 하는 하나하나 까지 기억하거나 메모 해 두었다가 꼭 사서 보거나 가 보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심화과정은 관련된 다른 정보를 스스로 찾아보고 나름 정리 해 보는 것이겠지요.
     
    조금은 우스운 이야기 이지만 청년시절에 한창 기도에 심취한 적이 있었는데 새벽기도회에 거의 날마다 참석해서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기도하거나 금요철야예배에 끝까지 남아 기도하다보면 어느 때에는 목사님 보다도 더 늦게 남아 예배실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질 때의 묘한 쾌감을 느끼던 적이 있었습니다. 기도는 노동이고 기도 시간은 믿음과 비례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시절, 비록 방법은 잘 못되었지만 어찌되었거나 그런 열심과 열정이 가끔은 그립기도 합니다.
     
    훌륭한 학생은 선생님이 제시하는 과제나 질문에 흥미를 가지고 즉각적이고 진지하게 고민하며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사고의 폭과 교양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스승의 한계를 초월 할 수도 있겠지요.
     
     요즘 고3 입시지도에 몸도 맘도 바빠진 남편에게 제가 "아니 이렇게 고생하고 바쁘게 일하는데 수당이라도 더 받고 일하는 거에요?"라고 물어보자 그런 말을 하더군요. "아니, 이건 스승으로서의 자부심이지. 제자가 잘 되는게 보람이자 상급이지." 그 말을 듣고 제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오늘도 두서없이 여러 말을 하긴 했지만 말씀을 믿고 주님을 따라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자세가 늘 배움에 성실히 임하는 제자들로서 매 순간 열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삶의 연속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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