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 전화가 유행처럼 극성을 부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크게 닮진 않았지만, 전화 목소리는 사람들이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한번은 고등학생 때 친구가 저희 집에 전화를 했는데, 저희 아버지께서 그 친구의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전화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친구: 상진아, 나다. 아버지: 누굴까?
친구: 나, 경훈이.
아버지: 응, 그래. 경훈이 잘 지냈냐? 아부지다.
(그랬는데, 친구는 제가 아버지 흉내를 내며 장난치는 줄로 알고..,)
친구: 응. 그래? ㅋㅋㅋ 그럼. 난 창식일세~~
(참고로, ‘창식’은 전화한 친구의 아버님 성함이십니다. 공교롭게도 저희 아버지는 그 친구의 아버지와 둘도 없는 절친한 친구 사이셨습니다. 순간 당황한 아버지는 정말로 아버님 친구분인줄 알고)
아버지: 아~~~?? 자넨가? 날세~~
(하며 응대하셨습니다. 제 친구는 계속 장난인줄 알고..,)
친구: 뭐하고 있는가?
(하며 한 동안 통화를 이어갔습니다. 아버지는 통화하시다가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셨는지 갑자기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자네 창식이 자네 맞는가? 아니 자네 아들하고 목소리가 같아서 말이야~ 허허...,
(그 말씀에 제 친구는 그제 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그리고 당황했던지 잠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친구는 떨리는 목소리로...,)
친구: 저..., 경훈인데.., 혹시.., 상진이 아버님이세요?........,
(그러자, 잠깐 동안 아버지와 제 친구의 대화는 아무런 말없이 적막이 흘렀습니다. 아버지 옆에 있던 저는 이거 뭔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아버지께서 입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고함을 쳤습니다.)
아버지: 에라 이 나쁜 놈! 장난을 칠 것 가지고 장난을 쳐야지. 이놈! 너, 당장 집으로 뛰어와.
(그날 제 친구 경훈이는 저희 아버지께 죽도록 한 바가지 욕을 얻어먹었습니다. 안 맞아 죽길 다행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그 친구 아버지께 곧 바로 전해졌고, 그날 밤 그 친구는 또 다시 죽을 고비를 넘겨야만 했습니다.)
장난 칠 내용이 아닌 것 가지고 장난을 치면 아무리 어른이라도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상식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요즘 상식에서 벗어난 교회들을 많이 봅니다. 많은 교인들은 돈 횡령, 교회세습, 기복(祈福)신앙, 이스라엘 대체신학, 초대형건물 교회건축 등과 같은 비상식적인 내용을 상식으로 받아들인 순간 순진한 그들은 모두 맥없이 조종당하고 맙니다. 그들은 의심이라는 것을 해보지도 않게 됩니다. 모순된 교리쯤이야 믿음으로 극복해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노예를 자처하기 까지 합니다. 돈까지 갖다 바치면서 말입니다. 그런 거짓 교리는 목마른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갈망하게 만드는 실체 없는 중독성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말이라도 다 같은 말이 아닙니다.
주님의 음성과 사탄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마지막 때 ‘믿음’, ‘소망’, ‘사랑’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분별력 없는 ‘믿음’, ‘소망’, ‘사랑’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사랑침례교회 성도님들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바른 말씀과 교리로 믿음, 소망, 사랑을 지켜갈 수 있다는 것과 혼의 자유를 통해 형제와 자매간의 아름다운 교제를 맘껏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아울러 하나님을 두려워하시는 목사님을 만났다는 것은 험악한 이 세상 가운데 무엇보다 누리기 힘든 큰 축복임과 동시에 베풀어주신 은총입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힌 눈처럼 말이지요. 어제 첫 눈이 내렸습니다.
하늘에서 내린 모든 눈은 육각의 형태를 띱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리는 수많은 눈의 생김새(육각형태)가 제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모두 다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섬세하고 재치가 있으시며, 낭만적이고 아름다우신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우리 인간이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 분을 감히 찬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게다가 그 분의 자녀이자 신부가 되었다는 사실은 또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한 일인지요. 이 번 겨울에 내리는 눈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랑침례교회에 부어주신 축복을 생각하게 된다면, 겨울 추위는 오히려 우리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전능자]여, 그분은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 오실 이시로다<계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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