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알고 지내는 지인에게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알게 모르게 신호를 보낸 지 수년이
지나고 있던 즈음 근처에 있는 교회를 다니긴 해야겠다고 여기 저기 참석했다지요.
갔다 와서는 꼭 보고?를 해요.
“언니, 거기는 목사가 너무 이상해서 중간에 나왔어요.”
“왜?”
“그 목사 목소리가 약장수 같이 떠드는데 왜 말을 보통말을 안써요?”“보통말?”
“왜 그 목에 힘주고 짜는 듯한 목소리에 -씨옵고 -할렐루야-뭐 그런 말 있잖아요?”
“ㅎ ㅎ, 그래 나도 그런 꾸미는 목소리 너무 싫어!”
“다신 거기 안갈거에요. 다른 교회 찾아 봐야지.”
“언니, 그 교회는 수퍼 앞에서 차 나눠줄 때 보니 사람들이 수수하고 화장도 많이 안하고 우리 애들 또래도 있어서 좋은 것 같아서 갔는데요, 잠자리채를 돌려요.
내가 봉투 준비해 갔는데 우리 애 앞에서 안가고 서 있는거에요!
내가 냈다고 말했더니 가더라고요. 기분 나빠서 거긴 안갈거에요.
돈 없는 사람은 교회 못 다니겠더라고요“
“언니, 그 교회는 대형교회라 평판도 괜찮고 해서 갔거든요.
그런데 내 동창들이 메이커로 쫙 차려입고 권사라나 뭐래나- 앞에서 설쳐대서
좀 그래요. 학교 다닐 때는 명함도 못내밀던 애들인데....“
“목사님 설교는 어떤데?”
“이 목사는 좀 괜찮은 것 같아요. 그런데 동창들 패션 쑈를 해서 존심 상해요”
“교회가 설교 듣는 게 우선 이니 거기 나가보면 어때?”
그래서 다음에도 그 교회를 출석했대요.
동창들이 자기들 집에 초대도 해서 가 봤다고. 너무들 잘 꾸며 놓고 살더랍니다.
자기 집에도 이사 가면 초대하기로 해놓고 왔다고 했지요.
한참이 지난 후에 이사한 아파트 구경하러 갔어요.
넓은 거실에 가죽소파와 카우치, 대리석 식탁, 등등 달라진 것이 많이 눈에 들어왔어요.
나중에 고백한 말은 동창들을 초대하기로 했는데 자존심도 있고 비교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그래서 무리해서 거실을 채우고 평소 갖고 싶었던 대리석 식탁도 들여 놨다고.
남편이 건축 사업을 하는데 겨울이라 일이 없어서 노니까 재정적인 압박이 생겼지요.
일 년도 못 되어 작은 아파트로 옮겨가면서 자리를 차지하는 가죽 소파 셋트와
무거운 대리석 식탁이 처치곤란하게 된 거지요.
결국 헐값에 처리를 해버리고는
“언니, 솔직히 내가 자존심 때문에, 비교하는 마음 때문에 손해를 많이 봤어.
애 아빠한테도 미안하구.....“
“교회는?”
“동창들 때문에 안 나가....”
“.......”
지인을 통해서 느끼는 것 중에서 한 가지는
비교하는 마음이 불행의 시작이라는 것이었어요.
제 경우는 실제적인 것에 더 중점을 두기 때문에 유행이나 메이커에 현혹되는 일은
없기에-그리스도인은 가치관이 하늘에 있기 때문에 흔들리는 일은 없지요.
사람들이 대부분 자기보다 높아 보이고, 좋아 보이는 것과 비교를 하지요.
집이 크다 작다, 입성이 메이커다 외국산이다, 차가 어떻다, 출신 학교가 등등....
우리는 지족(知足)할 줄 아는 것과, 자족(自足)할 줄 아는 것이 감사의 근본임을 알지요.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잠시 여행하는 과정인 것을 알기에,
주님이 홀연히 불러주시길 기다리면서 사는 우리는 이세상의 가치와는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으니 나보다 남이 넉넉하면 그래서 감사가 되고,
나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면서 감사하며 살지요.
장차 주님나라에서 어떤 모습일지가 관건이 되잖아요?
목사님도 성도들이 이 땅에서도 누리고 살면 좋겠다고 하셨지요.
그러나 누리는 성도도, 누리지 못하는 성도도, 가진 것의 많고 적음에 대해
서로 비교하여 자존심 상해하거나, 불행해지는 일을 자초하지는 않았으면 싶어요.
여행 중 나그네가 최고급 호텔에서 머물기도 하고, 여관에서 머물기도 하고,
민박도 할 수 있지 않나요?
비교하는 마음대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게 곧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