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6·25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그후 산업화 초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그당시에 그러했겠지만 지금 어린시절을 생각해 보면 부모님과 형제들이 단칸방에서 새우잠을 잤던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가 콩나물 죽을 자주 해 주셨는데 지금에야 생각해 보니 쌀은 한정되어 있고 밥의 양을 부풀리기 위해 그렇게 했을 겁니다. 너무 없이 지내던 때이다 보니 조그만 일에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전철 요금이 2원, 라면값이 20원 하던 때였으므로 도시락에 계란 후라이 하나가 올려있으면 그야말로 그날은 기분이 날라갈듯 합니다. 일년에 한두번 통닭이라도 한번 먹을라치면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공평하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제가 첫째다 보니 닭다리 차지는 도맡아 했지만 식구중에 누구하나 빼놓는 일은 없이 골고루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때는 잘사나 못사나 빈부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질이 궁핍했던 어린시절이었지만 그때만큼 행복한 시절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5060세대들은 부모들이 일정시대와 6·25 전쟁을 겪고 힘겹게 살아온터라 특별히 물려 받은 것 없이 그저 자력으로 앞길을 개척해 나왔습니다. 어느덧 중년이 된 지금 위로는 부모세대를 모셔야 하고 , 밑으로 자녀들을 부양해야 하는 샌드위치 세대가 되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편리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전에 누리지 못했던 것들, 갖고 싶은 것들 형편이 안되어서 문제이지 형편만 된다면 웬만한 것들은 크게 어려움없이 손에 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손에 쥔 것만큼 손에서 사라진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못가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많이 가지고 많이 누리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채워지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요즘 믿는 사람이든 믿지않는 사람이든 공통적인 현상은 감사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현대화의 병폐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웬만한 것 가지고는 놀라지도 않고 감동하지도 않고 또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불신앙의 가장 큰 특징이 감사치 않는 마음입니다. 현대사회가 제공하는 과학과 문화의 혜택을 마다하고 과거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행복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창조신앙의 회복 곧 감사의 회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감사할 것들이 넘쳐 납니다. 나의 존재함이 감사하고, 나를 존재케 해주신 분들로 감사하고, 나를 둘러 싸고 있는 환경들이 감사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 감사하고, 주 예수님의 크신 은혜가 또한 감사합니다.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8절)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찬양의 희생을 [하나님]께 드리자. 그것은 곧 그분의 이름에 감사를 드리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 (히13:5절) "오 [주] [하나님] [전능자]여,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앞으로 오실 주께 우리가 감사를 드림은 주께서 친히 주의 큰 권능을 취하시고 통치하셨기 때문이니이다." (계11:17절)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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