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짓궂은 장난을 한 적이 있다. 화단이나 길가를 살펴보면 개미들이 줄을 지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주변에는 어김없이 소복한 봉우리가 있는 개미집이 있다. 발로 뭉개보기도 하고, 물을 한바가지 퍼부은 적도 있다. 개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청천 하늘에 날벼락이다. 우왕좌왕 개미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갈 길을 갔다. 몇일이 지나 궁금한 생각에 내가 저질렀던(?) 그 자리를 가보았다. 말짱하게 복구되었다. 성경기록을 보면 개미에게 지혜를 배우라고 한다. (잠6:6-8절) 하나님께서 개미에게 지혜를 심어 놓으셨다. 부지런함과 인도자 없이도 겨울을 위한 양식을 준비한다.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고 극복해 나간다. 사람은 고통없이 행복하기를 원한다. 현실은 평상심을 흔들어 놓는 크고 작은 고통을 받고 산다. 그러다가 예기치 않은 큰 충격을 받을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수도 있고, 교통사고일 수도 있고, 부도나 파산의 경험일 수도 있고, 시험에 낙방하거나 퇴직의 경험일 수도 있다. 욥과 같은 경우 순식간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잃고, 전 재산이 송두리 채 날아가 버리고,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서 성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처참한 신세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은 인생의 큰 위기에 해당한다. 나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이런 일을 닥쳐보지 않은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무도 예견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을 했을 때 그 충격이 평균적으로 3개월 정도 간다고 한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가면 마음을 추스르게 되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않느냐? 하면서 다시금 일어선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낙담과 좌절로 인해 삶을 포기하는 사례도 생겨난다. 개미는 인도자가 없어도 위기를 극복한다. 사람에게는 인도자가 필요하다. 위기의 순간 일수록 그 손을 잡아 줄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헤쳐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 사람이 필요하고,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위기를 겪었고 극복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유능한 인도자가 된다. 이런 면에서 그리스도인은 유능한 인도자가 될 자질을 갖고 있다. 영원한 멸망의 형벌에서 구출받은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큰 위기를 벗어난 경험이 있는 사람은 경미한 위기는 쉽게 극복할 내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위기를 겪은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다고 본다. 위기의 상황에서 주저앉는 사람은 아무에게도 유익을 주지 못한다. 위기를 극복한 사람은 본인에게도 유익이 되고 또한 동일한 위기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 현재의 위기는 더 이상 위기가 아니다. 미래의 발판이 되고 큰 유익을 제공해 준다. 개미를 보자. 개미는 참 부지런하다. 어려움도 잘 극복해 나간다. 아무리 더운 여름날에도 열심히 일한다. 집이 무너지면 즉각 보수에 들어간다. 소나기가 지나간 뒤 개미들은 그 어느 때 보다 활발히 움직인다. 겨울의 양식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당장의 겨울도 아니고, 이 땅의 풍요로운 삶뿐이 아니다. 영원한 삶의 기초가 되는 것이 이 땅의 삶이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보자. 살전5:18절에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모든 일을 감사하라고 하지 않고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에게 닥친 모든 일을 감사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일에서 감사할 수 있다. 비록 우리 앞에 안좋은 일들을 당할지라도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이다. 어려운 일을 당할지라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신실함과 주 예수님의 죽으심을 바라보고 감사할 수 있다. 영원을 계획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때 감사할 수 있다. 온실 속에서 고통이 없는 주관적인 삶뿐이었던 사람은 무미건조한 영원이 기다릴 것이다. 개미와 같이 살았던 사람은 풍요로운 영원을 만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며 긴 릴레이를 펼치는 개미를 보자. (비오는 날 오후 시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