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전에 왕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그분을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나 그분의 권능과 그분의 진노는 그분을 버리는 모든 자를 향하나이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원수를 막고 우리를 도와줄 병사와 기병의 무리를 왕에게 요청하기를 내가 부끄러워하였기 때문이라.(에스라8:22)"
예루살렘을 향해 일행들과 함께 멀고 험한 길을 떠나는 에스라로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호위병이 함께 따라가 준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거룩한 부끄러움 때문에 단 한 명의 호위병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혹시라도 이방국의 왕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보호해 주시지도 않는 분이라고 생각할까봐 조심스러웠던 것입니다. 에스라는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일인데,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인간의 도움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일행은 사람들의 어떤 보호도 받지 않은 채,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해서 그분의 보호를 받으며 담대히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에스라처럼 하나님을 위해 이런 거룩한 부끄러움과 조심스러움을 느끼는 성도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해 우리는 반성해야 합니다. 꽤 신앙이 좋다는 사람들조차도 사람의 도움을 너무 의지하다가 자신의 간증에 먹칠을 하곤 합니다.
가이사의 도움을 청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주님을 부끄럽게 만드는 셈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교회를 위해 주정부에서 기금을 받아 내려고 그렇게 애쓰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실 수 없는 분인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 인간적인 후원자는 없어도 전능하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는 것만큼 복된 일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도우심만 의지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래도 그렇게 급히 친구나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달려가시겠습니까?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그렇지만 우리는 인간적인 수단도 사용해야 합니다." 라고요? 물론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람의 수단을 충분히 사용하지 않아서 일이 잘못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도 인간적인 방법을 너무 많이 의지해서 일이 잘못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인간적인 수단을 다 포기하고 주님만 의지하면 그 믿음의 분량대로 주님께서 응답하십니다. 2천년 교회의 역사 속에서는 그런 간증이 아주 많습니다.
스펄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