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께서 그들 모두에게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라.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원하려 하는 자는 그것을 잃되 누구든지 나로 인해 자기 생명을 잃으려 하는 자 곧 그는 그것을 구원하리라.(눅9:23-24)"
여러분의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러분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하나님은 여러분을 아셨고 여러분의 삶에 뜻을 두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육신의 생명을 주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적 생명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지으셨고 여러분을 구원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육적인 생명과 영적인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 생명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는 갈라디아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갈2:20)"고 말했습니다. 그의 생명은 자신을 위해 간수해야 할 보화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바쳐 투자해야 할 보화였습니다. 여러분도 저도 삶은 딱 한 번입니다. 삶이 끝나면 더 이상 그리스도께 귀한 것으로 그 삶을 드릴 기회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의 소망은 남들의 길이 아닌 자기 길을 마치는 것이었습니다. 경주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경주에 승리하여 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자신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주보다 오늘 좀 더 전진했는가? 아니면 더 뒤떨어지고 영적으로 패배했는가? 다른 그리스도인을 기준으로 여러분을 측정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여러분에게 주시려는 그분의 상이 측정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경주하는 선수가 범할 수 있는 최악의 과오 하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릴보서 3장에서 "뒤에 있는 그것들은 잊어버리고"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늘 목표점에 두십시오. 다른 선수들은 주님께 맡기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베드로에게 하신 것과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요21:22)"
사도바울은 기쁨으로 완주하기 원했고 그렇게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7절에 그 고백이 나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은즉"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뵙고 의의 관이 예비된 날을 사모했습니다.
하나님께 어떤 사명을 받았든 궁극적으로 그분의 은혜를 드러내는 일임을 잊지 마십시오. 노력으로 천국에 갈 수 있고 선행과 종교 활동으로 하나님 마음에 들 수 있다는 것이 대다수 세상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믿기만 하면 하나님이 구원을 주신다는 복음 - 기쁜소식 - 알려 주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자 책임입니다. 행위 구원은 나쁜 소식입니다. 아무도 해 낼수 없기 때문입니다. 은혜 구원은 기쁜 소식입니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내 생명, 나의 길, 내 사명, 매일 아침 이 세 문구를 되새겨보면 좋을 것입니다.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나는 내 생명을 내 것으로 아끼고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께 바치며 살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길을 달리고 있는가? 나는 그분께 받은 사명을 다하고 있는가?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문제가 무엇이든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십시오. 여러분의 삶을 그분께 드리면 그분이 여러분 안에 - 여러분의 생명, 여러분의 길, 여러분의 사명 안에 - 그분의 완전한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고난의 삶에 소망을 말하다(워렌 위어스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