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게는 한 가지 실제적 기도의 문제가 있다.
남편의 참된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데 과연 이렇게 복음에 완악하게 저항하는 남편이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절망적인 생각이 엄습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면서도 이루어질까 확신치 못한다는 점이다. 내 생각에는 참 불가능하게 보이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과연 기도란 무엇인가?
사실 기도는 내가 이루어지리라 기대하는 나의 믿음의 강도 이전에,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의 공의와 긍휼 그리고 약속하신 말씀에 신실하신 그분의 신실하심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많은 경우 이 사실을 망각한 채 마가복음 11장 23-24절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믿으면 그것은 이교도들의 믿음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마가복음의 이 말씀만 가지고 본다면 다짜고짜 될 줄로 믿는다는 믿음만 있으면 무엇이든 다 받을 수 있다는 백지수표를 우리가 가진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야고보서의 다른 말씀을 비춰 보면 다짜고짜 될 줄로 믿는다는 "센 기도"가 응답받는다고 하지 않고, 그런 정욕에 쓰려고 잘못 구하는 기도는 아무리 열심히 구하고 믿어도 결코 응답받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럼 다시 돌아가 나를 살펴본다.
"그분을 믿고 기도하라. 받은 줄로 믿으라."
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는데, 남편의 영혼이 주께로 돌아와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말씀의 뜻이 있으니 내 기도는 결코 정욕에 쓰고자 함이 아니요 주의 뜻에 합한 일이니 그 응답은 확실하다고 믿을 수 있겠다.
그런데 그 응답이 꼭 남편의 구원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응답이 꼭 남편의 구원이어야 한다는 한 가진 사실에만 집착하면 불안해진다. 구원은 남편이 주님의 권유를 받을 때 마음을 스스로 열어야 가능하기에, 내가 믿는 한 우리 주님은 마귀처럼 그 사람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하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내 기도의 "받은 줄로 믿으라"는 무엇을 믿는 것인가?
남편의 구원 여부는 그 나중 문제이고 나의 기도가 주님께 상달되었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주님께서 분명히 들으시고 어떤 조치를 취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져라 하는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낙심치 않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할 이유는 그의 생명의 남은 날이 일 년이 될지 혹은 10년이 될지 알지 못하나 내가 기도함으로 주께서 그에게 끊임없이 구원의 기회들을 제시하시고 이끌어주셔서 마침내 기쁨의 날을 주시리라 바라보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축구경기를 생각해 보면 확실히 프리킥의 찬스가 많이 주어지고 동료 선수의 정확한 패스가 많이 주어지다 보면 득점할 확률이 높아짐을 보게 된다. 바로 그와 같은 것이 기도가 아닐까?
내가 남편의 구원을 간절히 바란다고 해도 주님만큼 그렇게 간절히 바랄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나는 이제 내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 안에서 안식하며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