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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발에 얽힌 추억조회수 : 7581
    • 작성자 : 유용수
    • 작성일 : 2015년 9월 27일 23시 43분 52초
  •  

    # 신발에 얽힌 추억

     

    누구나 “자린고비의 선비”이야기는 다 아실 것입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자린고비의 선비가 살고 있었는데 그 선비는 외출할 때마다

    신발을 신지 않고 들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외출할 때마다 신발을 들고 가다가 저 만치 앞에서 사람이 오는 것을 보게 되면

    그 자리에서 급히 신발을 신고 움직이지도 않고 서 있다가

    그 사람이 지나가면 다시 벗어들고 버선발로 유유히 사라졌다는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이것은 신발이 닳는 것까지 아까워했다는 없이 살던 그 시대에 지어낸

    웃자고 한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제가 어렸을 때도 어머니가 새 신발을 사주시면

    그 신발이 아까워서 선반 위에 올려놓기도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신발을 신고 다니지도 않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 만큼 귀히 여겼다는 뜻이지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옛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동네 아이들과 달리기 시합을 할 때,

    신을 벗어놓고 맨발로 달리기를 했었던 기억!

    그러다가 새끼발가락을 다쳐 피까지 흘려야했던 기억에

    지금도 그 발가락이 아프게 느껴집니다.

     

    그때는 운동화보다 고무신을 더 많이 신었었습니다.

    운동화는 학교에 갈 때나 외출을 할 때 주로 신었지만

    고무신은 집에서 놀 때나 보통의 일상생활에서는 이 하얀 고무신을 주로 많이 신었습니다.

    그 당시, 고무신은 쓰임새가 다양한 우리들의 놀이기구이기도 했습니다.

    냇가에 놀러갔다가 송사리를 잡으면 신고 있었던 고무신에 담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그랬으니 그 고무신은 어항의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또 모래 백사장에서는 고무신에 모래를 가득 담아 퍼 나르는 놀이도 했었습니다.

    그랬으니 고무신은 장난감 트럭이 되기도 했던 셈이죠.

    인왕산 어느 골목길에서는 신고 있던 고무신을 던져 살구를 따먹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랬으니 고무신은 먹이를 구하는 도구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또 다른 기억이 떠오릅니다.

    어머니가 심부름을 시키면 투덜투덜 투정을 부릴 때 사용하기도 했었습니다.

    한번은 가기 싫었던 심부름에 투정으로 툭툭거리며 발을 내 지르다가

    신고 있던 내 고무신이 옆집 지붕위로 날아올라 내려오질 않자

    덜컹 겁을 먹고 놀랜 적도 있었습니다.

    또 넓은 운동장에서는 신고 있던 고무신을 발로 힘차게 차올려

    누가 더 멀리 신발을 보내는가 하는 놀이도 했었습니다.

    그러다 그만 신발을 잊어버려 그것을 찾느라 한참 헤매며 고생했었던 기억도 납니다.

     

    또 이런 기억도 생각나는군요.

    장마철 황톳물 흐르는 도랑을 건너다 벗겨진 고무신이 둥둥 떠내려가자

    발만 동동거리다가 기어코 눈물 콧물 울음까지 터뜨렸던 기억에 헛웃음이 나옵니다.

    그때 그 고무신 한 짝이 지금쯤은 서해바다 어느 깊은 바다 속에 가라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계절 전천후 신발이었던 고무신은

    바닥이 종잇장처럼 얇아져 찢어지거나 구멍이 나도 절대 바로 버리지 않았습니다.

    찢어진 곳이나 그 구멍을 때워서 신었기 때문이죠.

    우리 동네 시장입구 한쪽 구석에 고무신 때우는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지금기억으로는 "빵꾸전문, 기술본위, 신용보증"이러한 문구로

    유리창 문에 써 붙여놓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아저씨의 다른 기술은 몰라도 때우는 기술만큼은 최고였었습니다.

    어른들은 감쪽같이 때웠다고 감탄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구멍 때운 고무신을 신고 다니면 어찌 그리도 창피했었는지,,,,,,,

    특히 여자아이들이 내 신발만 보는 것 같았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하얀 고무신을 떠올리면 내 어린 시절이 눈물 나도록 그리워지는 것은

    아마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잃어버린 한 시대였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이렇게 하얀 고무신을 떠올리다보니

    수년전에 신어야만 했고 신을 수밖에 없었던 하얀 고무신이 떠오릅니다.

    20여 일간을 꼼짝없이 붙잡혀 있어야 했던 학익동의 어느 장소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도 어김없이 이 하얀 고무신을 신어야만 했었습니다.

    그곳에서의 하얀 고무신에 대한 경험들은 흐르는 강물에 그냥 흘려보내고 싶습니다.

     

    다시 옛날로 되돌아가렵니다.

    새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가던 날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새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가면 잃어버리기 십상이니

    당분간 집에서만 신고 다니라던 어머니의 말씀을 못들은 체,

    새로 산 검은 운동화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간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종례를 마치고 우르르 몰려나와 신발장을 보니 내 신발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혹시 내가 잘못 놓았을까 싶어 아이들이 다 나간 뒤에 다시 확인해 봐도

    짝이 다른 헌 운동화 한 켤레만 남아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짝짝이 신발을 끌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두 발의 무게는 천근만근이나 무거웠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답답하고 슬프기만 했습니다.

     

    동네 입구 공터에 걸터앉아 하릴없이 풀을 쥐어뜯다가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에야 집으로 향했지만

    꾸중을 들을까봐 집 문 앞에서 서성거리기를 한참,,,,,,,,

    구정물을 버리러 나온 어머니가 보이자 그만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었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얼굴이 왜 그다지도 서러웠던지,,,,,,,

    지금은 그 기억이 새롭기만 합니다.

    아주 오래된 일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기억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애절한 추억의 한 토막들입니다.

     

    운동화나 고무신과 같은 신발에 관한 이야기는

    누구나 실타래 하나를 다 풀어도 끝이 없을 만큼

    즐겁고 애달프고 아기자기한 기억들이 참으로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아이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이야기쯤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석연휴라 그런지 케이블 TV방송에서는 "모세"라는 영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껏 수차례 보았던 영화이기는 하지만 또다시 보고 있으니 재미가 쏠쏠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뵙기 위해 [하나님]의 산, 곧 호렙에 오릅니다.

    나뭇가지에 불이 활활 타는데도 나무는 멀쩡히 그대로인 것을 보기도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명령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이르시되, 여기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시고” (출 3장 5절)

     

    이제껏 많이 보아왔고 또 성경에서도 수 없이 읽어왔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 동안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느낌이 있어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습니다.

    모세의 몸과 거룩한 곳을 가르고 있는 것이 신발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벗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거룩한 땅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거룩하게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내 몸과 거룩한 곳을 가르고 있는 것은 없을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혹,

    지금도 나에게 거룩한 곳을 가르고 있는 것을 벗으라고 명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

     

    머리끝에서부터 전율이 온 몸을 타고 흐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찾아 벗어 버려야 할 텐데~~

     

    2015년 9월 27일

    유 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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