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귀를 기울여 지혜로운 자의 말씀들을 들으며 네 마음을 내 지식에 쏟을지어다.
네가 만일 그것들을 네 속에 간직하면 그것은 즐거운 일이니 그것들이 어울려서 네 입술에 꼭 맞게 되리라.
내가 너로 하여금 {주}를 신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이 날 네게, 바로 네게 알려 주었느니라. (잠언22:17~19)
만일 사람을 짐승처럼 반으로 가른다고 가정할때, 그 속에서 나를 찾으려해도 거기에는 내가 보이지 않습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진 "나" , 곧 혼은 볼수가 없습니다.
속사람인 형상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진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나를 볼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는 말, 내 뱉는 숨과 함께 스스로의 귀에 또는 상대방의 귀에 들려짐으로서 내가 나타나며,
나를 볼수가 있습니다. 신기한것은 숨이 나가지않으면 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한번 해 보세요
창세기 2:7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
네샤마(Neshamah)는 숨을 뜻하는 히브리어 Neshimah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약에 750번 기록된 숨쉬는 존재, 혼을 뜻하는 네페쉬(Nefesh)는 원기를 회복하다, 숨쉬다, 휴식을 뜻하는 히브리어 나파쉬(Nafash)에서 온것이라고 합니다.
영(spirit)은 히브리어로 루아흐(rûah) , 그리스어로 프뉴마(pneuma)로 바람(요3:8), 호흡(숨)을 뜻한다는것을 모르는 성도는 없을겁니다.
구약에 730번 기록된 루아흐(rûah)는 대기, 특히 바람을 가리킵니다.
원어는 한 단어에 여러뜻이 있기 때문에 문맥에 맞게 사용하지 않으면 전혀 엉뚱한 해석이 나온다고 알고 있습니다.
단지, 위의 잠언 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요
에스겔 37:9 그때에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바람에게 대언하라. 바람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오 숨(breath)아, 네 바람으로부터 와서 이 죽임 당한 자들 위에 숨을 불어 그들이 살게 하라, 하라.
에스겔 37:14 또 내가 내 영(spirit)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게 하고 너희를 너희 땅에 두리니 나 {주}가 그것을 말하고 그것을 이행한 줄을 그때에 너희가 알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라.
출애굽기 14:21 모세가 바다 위로 자기 손을 내밀매 {주}께서 강한 동풍(wind)으로 밤새도록 바다를 뒤로 물러가게 하시고 바다를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물들을 나누시니
숨(breath)과 영(spirit)과 바람(wind)이 루아흐(rûah)로 쓰인 구절들입니다.
모든 사람에겐 숨이 있고 말이 있듯이, 우리에겐 영이 있고 혼이 있습니다.
숨이 곧 영이요 , 숨과 함께 하는 말이 곧 우리의 혼입니다.
우리는 말로서 생각을 나타내고, 글자로도 나타냅니다. 상대방의 감정과 나타나는 표정으로 그 혼을 볼수가 있습니다. 진실한 말과 행위로 우리의 인격체, 속사람이 나타나는것입니다. 위선으로 감추면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사라의 속을 보듯이 감추어진것까지 다 보십니다.(창18:12~13)
막연히 하나님이니까 다 보신다 라고 말하면, 하늘에 해가 빛을 준다 라고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과 다를게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을 만드시고 광채들에게 빛이 되라는 명령을 주시고 낮과 밤을 다스리게 하신것은 ,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해가 스스로 빛을 내는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빛과 에너지를 담은 거대한 기체의 공처럼 만들어진 광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도구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창1:3절의 빛이 있으라 말씀하신 그 빛이 지금 저와 여러분안에, 또 눈으로 보고 있는 이 세상 안의 빛입니다. 날마다, 숨쉬는 동안 감사하는 이유중 하나입니다.
모든것을 새롭게 하시며 새하늘과 새땅을 만드실때까지(계21:23, 22:5) 단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빛을
잠시 맡아서 비춰주는, 자유의지가 없는 창조물의 참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복종하며, 6천년 넘게 묵묵히 행하고 있는,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배워야 할 순종입니다.
마찬가지로 막연히 하나님을 두려워 한다고 스스로를 속이면, 거짓 선물을 자랑하는 자처럼 비 없는 구름과 바람같은 사람들과 다를바가 없습니다.(잠25:14)
50년을 교회를 다녀도 여전히 다시 태어나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 한번의 설교 말씀을 듣고 마음속으로 믿어 영원한 구원에 이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본인이 다시 태어났는지 아닌지 모르겠다면,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에 시간이 멈추는, 스스로의 죽음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셔서, 집중해서 자기 자신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밖에 있었을때는 깜깜한 어둠이요,(마6:23) 끝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과 고통이었지만,(요일4:18) 예수님 안으로 들어온 지금은 어렵게나마 주님 앞에 서 있는 자기를 보게 될것입니다.
혹 캄캄한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다면 자신의 믿음을 꼭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 앞으로 나를 데려가는것은 다름아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고후13:5)입니다.
스스로 큰 믿음이라고 생각했지만, 너무나 실낱같은 믿음이 보일지라도 절대 실망하지 마십시요. 예수님께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말씀하신것과 같이(마17:20) 그 믿음으로 우리가 육신에서 들려져 순식간에 주님께 옮겨 질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가 가지고 있는 소망이요, 우리 믿음의 결국 입니다(벧전1:9)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the spirit)이며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들은 곧 영(spirit)이요 생명이니라.
성경에서 보여 주는 두려움에는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망의 두려움이요, 다른 하나는 생명의 두려움입니다. 사망의 두려움은 어둠과 고통이지만, 생명의 두려움은 권능과 사랑과 평안입니다. 생명은 두려움이 깨끗하여 영원토록 지속되고(시19:9), 사망은 두려움이 극한의 고통으로 영원토록 지속되지만 두려움이 없고, 두려움을 모릅니다(욥41:33).
땅 위에는 그처럼 생긴 것이 없나니 그는 두려움 없는 존재로 만들어졌느니라.(욥41:33)
이 세상에도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거 같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우리를 살리는 영이시요, 생명이시며, 우리 안에 호흡하고 있는 숨 입니다
우리의 숨은 잠깐이지만, 하나님의 숨 은 영원하며, 우리의 숨은 사망속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숨 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꿔주셨습니다.
the spirit께서 spirit 에게 말씀이 되어 오신것입니다(요1:14).
바람을 창조하신(암4:13) 창조주 루아흐(Spirit)께서 바람같은 우리에게 생명의 숨 을 주셨습니다.
말씀이신 영(the spirit) 께서 살리시는 숨 이 되어 우리 안에 하나의 숨(고전6:17 one spirit)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주]와 결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But he that is joined unto the Lord is one spirit.(고전6:17)
하나님의 숨 이신 말씀이 우리 마음판에 보석처럼 알알이 대못처럼 박혀
우리와 하나의 숨 으로 어울려서 우리 입술에 꼭 맞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으로 호흡하고 숨을 쉬며, 저주를 내기도 하고, 마음 속으로 미워하기도 하며, 시기하고,
화가 나는대로 독을 품어 냅니다. 했던 말이 없어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무엇을 하던, 우리의 영에 다 쌓이게 되어 있으니까요(잠16:2).
하나님의 말씀이 헛되이 하나님께로 되돌아 가지않고 반드시 그 말이 이루려 하는 일을 이루시는(사55::11)것처럼, 하나님과 한 영과 한 숨 이 되어 있는 우리의 입의 말도 무슨 말을 하던(마12:36-37), 무슨 생각을 품던 하나도, 한 단어도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심판 날에 주님 앞에 벌거벗은듯이 드러날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에 제 자신은 마음이 찢어질듯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낫다고 생각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다녔던 교회에서의 안일한 믿음생활에 빠져, 구하고 찾지않아서(마7:7),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가르침 안에 있지 못했던 제가 미워지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다 많은 것에서 실족하나니 만일 어떤 사람이 말에서 실족하지 아니하면 바로 그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요 능히 온 몸도 제어하는 사람이라.(약3:2)
마 12:36 오직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들이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그것에 대하여 회계 보고를 하리라.
37 네 말들로 네가 의롭게 되며 네 말들로 네가 정죄 받으리라, 하시니라.
위 마태복음 말씀은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우리의 배움과 올바른 행위를 위하여 인용하였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질것 같아 이만 줄이며 결론을 말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속성, 그리고 두려움은 대 자연과 하늘의 군대들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빛은 직선으로 나아가며(겔10:11), 파동과 입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간접적으로 알순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바로 알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속 사람은 그 사람의 말이나 행위로 알수 있는것과 같이, 파동은 1과1이 만나면 간섭을 일으켜 0이 되거나 수가 많아 질수 있고, 입자는1과1이 만나면 항상 2가 되어 운동량과 에너지가 보존 됩니다. 하나님의 빛 이신 말씀을 파동으로 받으면, 무너지고 혼란만 생기지만,하나님의 빛 이신 말씀을 입자로 받아 우리안에 보존하면,
이 세상 그 어떤 다른것이 간섭할수 없는 충만함이 생겨나는것을 스스로 느끼듯이
빛은 받는 사람에 따라, 사망과 생명이 됩니다.
그리고, 바람은 앞에 어떤 물체가 없는 한 99%가 수평으로 움직이며, 1%만 수직 방향으로 흐릅니다.
요 3:8 바람(프뉴마pneuma)이 마음대로 불매 네가 그것의 소리는 들어도 그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에게서 난 사람도 다 이러하니라, 하시니라.
바람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어졌고, 하나님의 숨 이신 영(Spirit)께서 세상에 충만하고,충만하지만 깨달아 다시 태어나는 바람(spirit)은 1%로도 안되는 안타까움에, 하나님의 눈물이 밤낮으로 쉼 없이 흘러내리신다는것을( 렘14:17)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될것입니다.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을, 우리가 광채가 되어 나타내고 바람이 되어 온 지면에 전달이 되는
성도라는 이름을 부끄럽지 않게 하여야 할것입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것, 바다와 땅에 경계를 두시고, 낮과 밤을 나누셔서 빛과 어둠에 경계를 두시며,씨가 있는 열매 맺는 나무를 두신것은, 우리가 보고 배우게 하기 위한, 사람을 향한 사랑과 두려움과 놀라우신 거룩함이 나타나져 있고, 깨달아 알수 있게 해 놓으셨습니다.(롬1:20)
이 모든것이 영원을 위한, 하나님의 속성이신 영원을 위해,우리 성도의 영원을 향해 만들어져 있다는것을 변명할수 없고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기쁨이 됩니다.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세상의 창조 이후로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롬1:20)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으며 그분께로 돌아가나니 영광이 그분께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롬11:36)
왜 하나님을 두려워 하십니까, 왜 화창하고 좋은 날에 놀러가지 않고 예배를 드리러 모이십니까,
왜 모든 어려움과 고통중에 기도하십니까,
왜 믿음을 지키려 몸부림치고,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통곡하며 그 분께 매달리십니까,
우리의 모든 솜털 하나까지도 그 분을 두려워하고, 이 세상 모든 사랑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이유는, 우리는 오직
그분안에 있고, 그 분안에서 숨(one spirit)을 쉬며, 그 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지으신 모든 것보다 더 확실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유입니다.
고전 8:6 우리에게는 오직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나니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분 안에 있노라. 또 한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나니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느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