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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조회수 : 8526
    • 작성자 : 김경민
    • 작성일 : 2016년 1월 19일 17시 42분 50초
  •  몇 해 전 EBS에서 자녀교육법의 새 장을 열었다고 극찬을 했던 <아이의 사생활>이라는 프로가 있었다. 여기서 새롭게 조명을 받은 것이 자아 존중감혹은 줄여서 자존감이라는 말이었다. 이때부터 앞 다투어 매스컴과 서점가는 연일 새로운 패러다임 자존감을 주제로 한 책과 프로그램을 쏟아냈고 한동안 지금까지도 유행어가 되었다.

    나 역시 그 때 아이들의 교육에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를 찾으며 <아이의 자존감>이라는 책을 사서 보게 되었다.

     

    이 책의 핵심은 21세기가 요구하는 리더십의 가장 큰 덕목이 바로 자존감인데 자녀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부모의 양육태도에 대해 설명하며, 반기문 UN 사무총장, 안철수, 빌 게이츠, 성주그룹 김성주 회장, 스티브 잡스, 작가 한비야 등을 성공적인 롤 모델로 이야기한다.

     

    참고로 교육부가 2015년 개정교육과정에서 발표한 초. . 고 교육의 목표는 창의·융합형인재사회 변화에 따른 교육패러다임 전환을 교육개정의 이유로 들고 있다.

    창의·융합형 인재 : 인문학적 상상력,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추고 바른 인성을 겸비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다양한 지식을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람

    미래사회에 필요한 핵심 역량을 6가지(자기관리 역량, 지식정보처리 역량, 창의융합사고 역량, 심미적 감성 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로 제시하고 학생 참여 중심의 수업을 통해 이를 함양할 수 있도록 함. <2015개정교육과정 총론 시안 자료집 15>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보자면 결국 교육부의 교육개정 방향은 대학입시를 반영하는 기준이고 이러한 현실을 우선 먼저 생각하게 되면서 위에서 요구하는 인재로 키우기란 상당히 어려움이 따를 것 같다는 우려가 앞서게 된다. 솔직히 위의 6가지 역량을 고루 갖춘 인재는 아마도 사람이기 보다는 신에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위에서 말한 창의·융합형 인재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예로 드는 인물이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다. 20세기가 낳은 가장 성공한 인물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자존감을 설명할 때 꼭 예로 드는 인물이기도 하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자존감의 정의를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심리학자들이 자존감을 인간을 성공으로 이끄는 중요한 마음의 힘이라고 정의한바 있다. 자존감은 말 그대로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의 힘으로,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이고, 인생의 버팀목이고, 나를 나답게 살 수 있도록 이끄는 힘이며, 자기비판을 넘어서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수용하도록 만드는 마음의 힘이라고 이야기한다.

    또 인생의 성공과 자녀를 행복한 어른으로 키우는 성공열쇠가 바로 자존감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어찌 보면 구구절절 좋은 이야기이고 육아에 있어서 도움이 될 만한 실질적인 조언들도 나름 유익한 면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최근까지 나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이다. 때때로 이것을 정의하고 인본주의적 관점에서의 자존감과의 차이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면서 어느새 나의 신앙의 모습, 혹은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었다.

     

    언뜻 보면 자존감의 정의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행복한 인간, 쓸모 있는 인간을 만들고자 하는 홍익인간의 요건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원동력이 된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가 추구하는 창의·융합형 인재도 결국은 소통과 화합, 창의적 사고, 과학과 예술영역을 아울러 인간 세상을 좀 더 안정되고 풍요롭게 만드는 리더를 키우자는 취지가 주된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21세기의 목표는 기독교의 목표와 일치하는가?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전혀 길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흑백 논리로 이야기해서 마치 기독교는 독단적, 배타적, 극단적 성향을 가졌다는 것을 다시금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독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현 세상에 초점을 두는 것인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늘 왕국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우선 인식해야 한다.

    물론 성경은 현 세상에서의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 어떤 처세술보다 더 현실적이고 엄격하며 근본적인 기준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궁극적인 삶의 목적은 믿음이 없이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영에 속한 새로운 방식이다. 우리의 사고가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신본주의적 관점으로 전환될 때에만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본주의는 현 세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기독교는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왕국과 그 안에 들어갈 천국시민의 자격요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어지는 자존감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여야 성경적으로 올바른 자존감을 갖고 살 수 있을까?

    우선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가를 살펴보자.

    다음 성경구절에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의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2:20)

     

    그리스도인이란 한마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을 말한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나의 참된 가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부터 바뀌게 되는데 세상을 사는 동안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처하는 문제해결 능력이 나 자신에게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을 의지하는 힘으로 해결해나가는 것이고, 나 자신에 대한 신념은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낮고 겸손한 마음을 갖는 데서부터 기인한다고 본다.

     

    성경의 인물들 가운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존감이 가장 높았던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물론 대부분이 다 그렇겠지만 특별히 다니엘을 꼽고 싶다. 그가 유다 자손이라고만 알려져 있지 누구로부터 올바른 신앙교육을 받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린 나이에 바빌론의 포로로 붙잡혀 간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삶의 매 순간을 뜨겁게 하나님을 추구하며 믿음으로 살았던 인물이다.

     

    그럼 자녀교육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을 새롭게 정의 내린다면,

    대부분의 크리스천 부모들이 겪는 갈등은 성경적인 양육과 훈육이 세상적인 교육과 매우 상치되는데서 생기는데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결국 부모의 일관된 신념, 일관 된 양육태도에서 시작되며 이를 성공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부모세대로부터 받았던 기존의 유교적 교육관이나 현대 교육철학인 실존주의 사상을 기초로 한 인간존중의 교육의 한계를 바로 알고 이것에서 벗어나 우리의 본성과 지성을 최대한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재정립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우리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부족한 삶의 매순간을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루하루 반복 실천하는 것이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성경적인 자녀양육에 대한 남편과 아내간의 합의, 교회와 부모간의 합의, 내지는 교사와 부모간의 합의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이란, 우리가 누구인가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는데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또한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 분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녀의 신분을 허락하셨으므로, 그 은혜에 감사하여 온전한 순종과 맑은 정신으로 이 땅에 사는 동안 성화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이며 올바른 존재감을 갖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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